“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잃어버린 11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라는 옥동녀가 탄생했다. 선언에서는 “양 정상은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열어나가며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아 역사의 땅 판문점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고 밝혔다.

판문점 선언은 10.4선언의 부활이자 그 이상이다. 양 선언은 탄생 배경과 주역, 그리고 핵심 목표에서 10.4선언을 연상시킨다. 그러기에 판문점 선언의 의미를 올바로 파악하려면 10.4선언의 탄생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은 2006년 10월9일 북핵실험 성공의 산물이었다. 북핵실험 성공으로 다급해진 부시는 한반도 종전선언을 추진했고, 2006년 하노이 아펙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회담에서 종전선언 추진을 합의했다. 그리고 이듬해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10.4선언>이 채택됐다. 10.4선언은 이번 판문점 선언과 많은 면에서 닮은 꼴이다. 전쟁반대, 불가침, 적대행위 중단, 군사적 긴장완화, 서해 평화지대와 공동어로구역 설정,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 추진,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노력 등 주된 의제가 한반도 평화였다.

10.4선언이 순조롭게 이행됐더라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시대는 지금쯤 훨씬 멀리 전진해 활짝 펼쳐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0.4선언은 탄생되자마자 유폐되고 말았고, 한반도는 핵문제를 둘러싼 대립과 대결이 격화되고 전쟁 일보직전의 상황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이렇게 된 데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이를 핑계로 한 미국의 대북 압박 일변도 정책 회귀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렇기에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잃어버린 11년을 언급했던 것이다. 11년 동안 남북관계는 거꾸로 뒷걸음쳤고, 평화가 아닌 전쟁의 그림자가 한반도를 엄습했다. 

판문점 선언은 유폐되어 있던 10.4선언을 다시 햇볕 속으로 되살려냈다. 하지만 10.4선언의 단순한 복사판이 아니다. 잃어버린 11년은 단순히 잃어버린 것만이 아니었다. 남과 북은 각각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향한 열정과 힘을 결집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북의 핵무력 완성으로 다급해진 미국은 북미정상회담을 받아들이고,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논의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노력들의 성과물이 바로 판문점 선언이다. 즉 판문점 선언은 촛불의 힘과 전략국가(핵무력 완성)의 힘이 결합된 민족 공조의 산물이다. 이런 새로운 힘으로 판문점 선언은 10.4선언보다 훨씬 앞으로 나갔다. 즉 그것은 종전선언을 뛰어넘어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당면 핵심 현안과제로 제기했다. 이제 미국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핵위협에서 벗어나려면 평화협정 체결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2007년에는 종전선언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이제는 평화협정 체결로서도 해결하기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속담처럼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지경이 됐다. 

새로운 평화시대의 출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역사는 간혹 좌절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그 어느 때와도 다르다. 남북 모두 각오와 결심이 남다르다. 그 어떤 장애물로도 평화와 화해 협력으로 나아가려는 남북의 의지를 가로막을 수 없다. 양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이 점을 엄숙히 선언했다. 그러기에 판문점 선언의 핵은 새로운 평화시대 개막의 엄숙한 선언이다. 그리고 선언을 추동해 나가는 힘은 촛불과 전략국가의 힘이다. 

판문점 선언에서는 평화시대를 열어갈 방도를 올바로 밝혀 놓았다.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방향성을 명확히 한 것이다.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없이는 한반도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협정이나 모두 공염불이다. 특히 이번 선언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올해 안에 추진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2007년에는 종전선언 추진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도약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평화역량 발전의 산물이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합의를 올바로 해석하는 문제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조항은 북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남북 모두에게 해당되며, 남북 모두에게 자기 책임과 역할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한미군 체제가 존재하는 한 핵 없는 한반도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워싱턴의 핵은 곧 평택의 핵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미군의 구조상 필연적이다. 미국은 판문점 선언에 이 조항을 삽입했다고 즐거워하겠지만 그것이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다. 또 하나는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의 구축 없는 기만적 평화협정 체결로는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할 수 없다는 점도 명백히 알아야 한다. 

새로운 평화시대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앞으로 많은 도전과 난관이 예상된다.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수용했지만, 근본적으로 일방적 북핵폐기 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한반도 전쟁구조의 근본적 해체 없이 기만적인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로 위기를 모면하고 북핵폐기만을 강제하려 할 것이 명백하다. 이런 의도를 차단하고 올바른 길로 나가려면 민족공조를 강화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기만적 평화협정이 아닌 주한미군 없는 평화협정 체결 범국민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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