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등 반발… 부산·창원, 다음달 1일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예정

▲ 사진 : 함형재 담쟁이기자

부산시민 6500여명이 3개월만에 1억5000만 원을 모금했다. 다음달 1일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옆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해서다. 그런데 난데없이 걸림돌이 생겼다. 다름 아닌 대한민국 외교부다. 

외교부는 지난 16일 외교부장관 명의의 공문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부산시, 부산 동구청, 경찰청 등에 보냈다. “일본영사관 앞에 노동자상을 세우는 건 외교공관의 보호 및 관행상 적절하지 않다”는 것. 즉 다른 곳에 설치하라는 내용이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를 비롯해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을 추진해 온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부산운동본부)’ 단체들과 부산시민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지난해 9월18일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을 선포한 후 230여 노동자와 시민이 릴레이 1인시위를 벌였고, 220여개 단체, 1만 시민들이 참가해 석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1억 원이 훌쩍 넘는 돈을 모금했던 차였다. 소녀상 옆에 세울 노동자상도 이미 만들어 놓은 상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24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외교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외교부의 입장을 규탄하곤 “5월1일 일본영사관 앞에 노동자상을 반드시 세우겠다”고 밝혔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부가 나서서 강제징용노동자를 기억해도 모자를 판에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노동자상을 세우고자 하는 부산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공언했던 ‘새로운 한일관계의 역사를 쓰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이 전국에 노동자상을 건립하고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투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김재하 부산운동본부 상임대표(민주노총 부산본부장)는 “800만 명이 징용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살았지만 일본은 단 한 번도 사죄하지 않았다”면서 “그럼에도 자국민의 신변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고, 이 나라의 깃발을 들고 외교를 한다는 ‘외교부’가 나서서 일본영사관 앞은 안 된다며 관할구청과 경찰서에 전방위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분노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에 따르면 외교부가 공문을 발송한 뒤 일본영사관 소녀상 옆엔 부산역에서 가져온 대형 화분이 설치됐으며, 경비·감시 인력도 확대된 상태다. 

대학에서 강제징용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정철우 서울대 학생겨레하나 대표도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일본으로부터 강제징용에 대한 사과를 하루 빨리 받아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고 말하며 “외교부가 나서 노동자상 설치를 방해하는 것은 일본의 전쟁범죄와 강제징용 범죄를 용인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규탄했다. 

최진미 6.15여성본부 상임대표는 “국민의 힘을 믿고 일본 앞에 당당한 외교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상임대표는 “중국 심양에 ‘반일기념관’이라는 역사관이 있다. 일제 만행을 후대에게 고스란히 알려주기 위한 국가의 노력이 부러웠다”면서 “외교부가 일본군‘위안부’, 강제징용 등 일본 범죄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 동상을 세우는 일에 당당히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연희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과 최병현 주권자전국회의 기획위원장이 100여개의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해 회견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한 부산시민들의 모금은 강제동원 역사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며, 친일역사 청산과 일본의 진정어린 사죄·배상에 대한 요구를 담은 것”이라며 “부지에 대한 선택권은 부산지역 시민들의 몫”임을 밝히는 한편, 외교부를 향해 “일본 정부 눈치보기를 중단하고 주권국가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강제징용노동자상은 2016년 8월 일제 식민지 강제징용 노동현장인 일본 단바망간 광산에 처음 세워졌으며, 지난해에는 서울 용산역, 인천 부평공원, 제주 제주항에 세워졌다. 다음달 1일엔 창원시에도 노동자상이 세워진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를 비롯해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 경남건립추진위원회’는 오는 5월1일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정우상가 앞 인도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할 예정이다.

▲ 회견 참가자들이 ‘일본은 전쟁범죄 사죄하라’는 대형현수막으로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사진 : 함형재 담쟁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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