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정치인이 노동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해결책은 제각각이다. 

촛불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기대로 현장이 들썩인다. 그러나 늘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만 하다. 왜일까? 

노동자의 힘 없이는 제대로 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힘 없이는 촛불 정부의 노동개혁도 힘을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종훈이 ‘현장’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현대중공업 2400명 희망퇴직 발표 

지난 몇 년간 조선산업이 위치한 지역은 어느 때보다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 조선 경기가 나빠지면서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만 해도 지난 3년간 3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선소를 떠나야 했다. 어제는 아는 형님이 희망퇴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늘은 앞집 청년이 일하던 조선 협력업체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여나 내일은 내 차례가 아닐까 조선소에 일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에겐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들이다.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지역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상가에는 한 집 걸러 한 집 점포임대가 붙었고 원룸이 줄지어 선 골목은 텅 비었다. 장사하시는 분들이라도 만나면 힘들다는 하소연에 괜스레 미안하기만 했다. 

그렇게 3년을 버텼다. 이제 올 연말이면 조선 경기가 조금씩 살아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노동자들도, 울산 동구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때 현대중공업이 2400명 희망퇴직을 추가로 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노동자들과 주민들의 마음에는 배신감이 일만 했다. 지난 수십 년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며 일으켜 세운 기업이 몇 년 어렵다고 절반의 사람들을 내쫓은 터다.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살지 않겠냐며 희망퇴직을 강요하고 협력업체에는 중간정산금을 깎았다. 회사도 할만큼 했고 노동자들도 참을 만큼 참았다. 조선산업도 이제 좀 나아지고 있다고 하고 회사도 지난 2년 3조3000억 원이 넘는 흑자라는데 또다시 희망퇴직을 시작한 것이다. 

현장 사람들은 희망퇴직이 무슨 의미인지 다 알고 있다.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개인 면담, 대상자들에 대한 업무와 무관한 교육, 인사발령을 통해서 진행되는 희망퇴직은 사실상 희망이 아니라 강제퇴직이다.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부당노동행위임에도 고용노동부 등 정부에서는 노동조합의 이런 문제제기를 모른 척 해왔다. 

희망퇴직 발표가 나자마자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박근태 지부장은 삭발하고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임단협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조건에서 회사가 다시금 희망퇴직을 들고나온 것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었다. 노동조합으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화가 많이 났다. 마음도 아팠다. 이대로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부당한 희망퇴직을 막기 위한 호소 

4월4일 희망퇴직이 발표된 그날 바로 울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잡았다. 조선 경기가 회복 중이고 현대중공업의 수주현황이 나아지고 있는 상황과 지난 2년간 현대중공업의 이익잉여금은 2016년 134조4300억에서 2017년 16조2400억 원으로 증가하고 당기순이익도 2년간 3조3000억 원을 기록한 것을 근거로 현대중공업의 희망퇴직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현대중공업이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 노동자들을 찾았다. 노동자들이 나서지 않는 이상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마이크를 잡고 조선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조건에서 이미 3만여 명을 길거리로 내몬 회사가 추가로 희망퇴직 2400명을 받겠다고 한다 것은 상식이 있는 회사가 할 일이냐며 노동자들에게 강제 희망퇴직에 절대로 응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출근 시간 내내 마이크를 잡고 떠들었다. 함께 회사에 맞서 싸우자고 호소했다. 

출근 선전에서 한 발언 때문이었는지 공장 안 박근태 지회장의 단식농성장을 방문하기로 한 10분 전 현대중공업 측은 정치인의 회사 출입을 금지한다는 통보를 해왔다. 노동조합도 방문할 수 없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회사가 반응을 보이는 게 우리 행동이 효과를 내는 듯했다. 

그날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전화했다. 울산 동구에서 지난 3년간 피고용자 숫자가 2만 명 이상 줄었고, 지역 고용문제가 심각하다는 상황을 공유했다. 현대중공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에서도 신경을 써달라는 당부를 했다. 또한 희망퇴직이 사실상 현장에서는 위법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니 불법적으로 시행되는 강제 희망퇴직에 대해서는 살펴봐달라고 부탁했다. 장관도 기업의 무분별한 구조조정은 문제가 있다는 데 공감하고, 희망퇴직 남용에 대해서도 지청을 통해 살펴보겠다는 답변했다. 

5일 정부는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보고서에서도 조선 경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선산업에 일정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적시하고 있어 현대중공업의 희망퇴직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되었다. 

9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자원통상중소벤처위원회 회의에서는 백운규 산자부 장관에게 조선산업 발전전략과 현대중공업의 희망퇴직 발표에 대해 질의를 하며 ‘조선산업 살아나고 있는데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이 부당하다. 조선산업 발전전략이라는 것이 노동자들을 잘라내는 구조조정을 하라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며 따졌다. 따로 장관을 만나 산자부에서도 현대중공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날 오후에는 조선노연 노동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자의 고용문제가 빠진 정부의 조선산업 발전전략안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승패는 노동자의 단결된 힘

숨 가쁜 일주일이 지나갔다. 서울을 오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을 만났다. 출근길 퇴근길에서 마이크를 잡고, 팻말을 들고 외쳤다. 포기하지 말고 회사에 맞서 싸우자,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해서 싸우자고 호소했다. 

노동조합의 투쟁과 지역정치권의 호소가 맞물리면서 다행히도 여론은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형성되었다. 고용노동부와 총리실에서도 이런저런 발언들이 나와서인지 회사측에서도 과거와 같이 노골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소문도 들렸다. 대신 현장의 노동자들은 자신감을 얻은 모습이다. 출퇴근 선전전을 하고 있으면,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영상의 긴박한 사유가 아니면 정리해고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은 희망퇴직, 조기퇴직 등 여러 방법으로 사실상의 정리해고를 시행하고 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개인 면담, 전공과 무관한 교육, 인사발령, 임금삭감 등의 방법으로 퇴직을 강요한다면 견딜 수 있는 노동자는 많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기업의 희망퇴직 남용을 막겠다는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투쟁에서 느끼지만, 정부와 관료는 여전히 개별기업의 문제라며 먼저 깊숙이 관여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회사가 정한 희망퇴직 시한은 4월 말까지이지만 목표량을 못 채운다고 회사측이 슬그머니 희망퇴직을 접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대의원대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쟁의를 결의했고, 다음주에는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돌입 찬반투표에 들어간다. 

최선을 다하지만,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늘 그랬듯이 최선을 다해 도와줄 것이다. 사실상 승패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단결하고 싸우는가에 있다. 회사 정문에 농성장을 차렸다. 노동조합은 안에서, 우리는 밖에서 지역 여론을 만들면서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을 막아내고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킬 것이다. 

이번 싸움이 사회적으로 무분별한 희망퇴직에 경종을 울리기를 바란다. 무분별한 희망퇴직을 제한하고, 현장에서 불법적으로 행해지는 불법 희망퇴직 강요에 대해서도 법적, 제도적으로 금지할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해 윤종오 전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무분별한 희망퇴직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희망퇴직 제한법이 공론화되고 빨리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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