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의 노조와해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삼성전자서비스 지사와 관계자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한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용인 흥덕 삼성전자서비스 경원지사에서 검찰 관계자가 압수품 상자를 옮기고 있다.[사진 : 뉴시스]

재벌적폐의 상징 삼성을 개혁할 때가 됐다. 삼성의 불법 비리가 폭로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요즘처럼 그 불법성, 폭력성, 사기성이 한꺼번에 전방위적으로 폭로된 경우는 처음이다. 쌓이고 쌓인 적폐가 고름처럼 여기저기 마구 흘러나오는 모양새다. 이재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사건에서부터 이명박의 미국 내 다스 소송비 대납, 6000건에 달하는 노조파괴 문건, 그리고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발행과 유통사건 등은 삼성이 국내 1위 기업이란 미명 뒤에 얼마나 못되고 가증스러운 짓을 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단적인 사례들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답게 사회대개혁이란 관점에서 삼성 문제를 다뤄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증권 등 개별 기업 차원의 비리 해결이 아니라 그간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만들어 놓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적폐를 청산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몇몇 임직원에 대한 꼬리자르기식 처벌이 아니라 수십 년간 이들이 쳐놓은 정경유착 고리와 언론, 관료, 법조계 등과의 유착그물망을 개혁해야 한다. 또한 여전히 팽배한 전근대적, 반인권적 노사관계를 평등하고 자주적인 노사관계로 바꾸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재벌적폐 청산은 한국 사회의 근간을 바꾸는 사회대개혁의 핵심이다.

이번에 확보된 6000건에 이르는 삼성의 노조와해 문건이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 관련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이것은 삼성이 그룹차원에서 노조파괴를 지휘했음을 말한다. 검찰이 압수 사실을 공개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은 확실히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태도다. 그러나 지난 2월에 압수한 문건들의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공개하지 않는 것은 검찰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의심케 한다. 검찰은 지난 2013년 폭로된 ‘에스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따른 이건희 회장 부당노동행위 고발 사건을 결국 무혐의 처리해 국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그러나 이 문건은 대법원에서 삼성이 작성한 것으로 판결났다. 검찰이 진정 삼성의 불법적인 노조파괴공작을 엄단할 의지가 있다면 문건 내용을 전면 공개하고 국민적 지지에 의거해 적극 수사해야 한다. 그것이 삼성과 검찰의 오랜 유착의혹을 불식시키고, 삼성의 무노조 황제경영을 끝내는 길이다.

사실 지금까지 드러난 노조와해문건만 봐도 삼성이 얼마나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노조파괴를 진행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른바 단계별 대응지침을 담은 ‘마스터플랜’과 실행조직인 ‘티에프(TF)’에 의해 ‘표적감사’, ‘단체교섭 지연’, ‘반대시위 기획’ 등이 진행되고, 노조원과 그 가족에 대한 불법적인 도감청, 미행, 협박과 회유, 그리고 노조원 시신 탈취 등 온갖 불법과 폭력이 검찰과 노동부, 상당수 언론의 감싸기로 덮어져 왔던 것이다. 이런 조치가 비단 삼성전자서비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5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배척하는 위헌적인 것으로 폐기돼야 한다”고 하고, “(에스그룹 노사전략)문건의 존재 여부가 대법원에서 판단됐으므로 위법·탈법 행위에 대한 재수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제 정부와 검찰은 삼성그룹 전반의 전근대적 황제경영을 가능케 한 반헌법적, 반인권적 무노조 전략을 근절하는 방향에서 이 사안을 다뤄야 한다. 아울러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문제돼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돼있는 만큼 민주노총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총력 대응해 차제에 반드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폐기시켜야 한다.

더불어 이번 삼성증권의 허위유가증권 발행과 유통은 한국 금융질서의 근간을 뒤흔든 사건이란 점에서 충격적이다. 삼성증권이 발행한 총주식수는 8930만주였고, 최고 발행한도는 1억2000만주인데 28억주가 배당으로 나간 것이다. 그리고 22명의 직원들이 이를 바로 팔거나 팔려고 시도해 501만주나 유통됐다. 어떻게 이런 사태가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흔히 이 사건을 (비차입)공매도 문제와 연관시켜 청와대에 공매도 중단청원이 쏟아지지만 사실 이 사건은 공매도보다 더 심각한 범죄행위이자 질서문란행위이다. 공매도는 차입이든 비차입이든 이미 발행된 주식에 의거하지만 삼성증권의 이번 사건은 없는 주식을 즉석에서 발행해 유통시키고 또 이것이 실제 거래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금융질서 전반을 뒤흔든 대형 사기사건이라 할만하다. 또한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정부기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상당수 언론은 이를 판매한 직원(애널리스트)들의 도덕불감증에 초점을 맞추지만 바로 드러날 범죄행위를 단순한 돈 욕심에 실행할 바보는 드물 것이다. 이 사건은 어쩌면 선물거래 등 외부와 연계돼 통상적으로 자행된 작전일지도 모른다. 실제 사건 당일(6일) 삼성증권 주식 선물거래가 전날에 비해 40배가량 폭증한 42만1875계약, 1609억5300만원어치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이런 의혹을 더욱 짙게 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허위거래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전산시스템이다. 삼성증권 같은 한국의 대표적 증권사가 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상당수 다른 증권사는 이미 현금배당과 주식거래가 분리된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지만 유독 삼성증권을 비롯한 몇몇 증권사만이 이런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사실 세간엔 그동안 자사 발행주식수보다 많은 주식들이 쏟아져 나와 주가를 폭락시켰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를 공매도 문제로 치부했지만, 어쩌면 작전설이 사실일수도 있다는 의심을 키우기에 충분한 시스템을 삼성 등이 운영해 온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일반투자자들의 심대한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증권은 마땅히 금융질서 교란과 불법 사기혐의로 민형사상 책임과 영업정지 이상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렇듯 삼성은 이재용 뇌물, 이학수 뇌물 사건에서 보듯 정경유착의 표준을 만들고, 그도 모자라 언론, 검찰, 법조, 정당 내에 자기들의 그물망을 만들어 가히 ‘삼성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오게 했다. 이를 배경으로 80여 년간 노동자를 탄압하고 전근대적인 무노조 경영을 강압적으로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경제 전반에서 삼성증권 사건 외에도 수많은 특혜와 초법적 이권 추구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한국경제를 대표한다는 1위 기업의 민낯이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사퇴파동이 그의 강경한 재벌개혁 입장 때문이고 배후엔 삼성이 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제 삼성을 비롯한 재벌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재벌을 보호해 이른바 ‘낙수효과’를 보자는 주장이 허위임은 현실의 극단화된 양극화 사회가 증명하고 있다. 재벌적폐의 청산은 비단 정부여당의 몫만은 아니다. 그로 인한 피해를 보는 국민 모두의 과제다. 특히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민주노총, 한국노총은 삼성 개혁이 곧 노동자 전체의 삶과 권리 실현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맨앞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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