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의 아들_나의 선택
지은이 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옮긴이 노승영/ 출판사 문학동네/ 정가 12,000원
평범한 아빠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언제나 재미있고 다정하고 따뜻한 아빠였다.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트와 회전목마를 함께 타고 축구를 하며 놀아주고 신발 끈 묶는 법을 가르쳐주던 아빠니까. 낭만적인 남편이기도 했다. 첫 결혼의 실패로 상처를 입은, 딸 하나를 혹처럼 달고 있는 이혼녀에게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반지로 청혼했는가 하면, 그녀를 ‘여왕’이자 ‘나의 심장’이라 부르며 살 정도로.
이집트 출신 무슬림이었던 아빠는 맨하튼 법원 청사의 냉난방기를 수리하는 일을 한다. 미국인 어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첫 결혼의 파국과 함께 신앙과도 결별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슬람에 관한 책을 보다가 호기심이 생겨 지역 모스크(mosque_이슬람 사원)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아빠를 만났다. 열흘 만에 결혼했다. 둘 사이에 이 책의 지은이면서 화자인 잭이, 1년 뒤엔 남동생이 태어났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정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잭이 일곱 살 되던 해였다. 엄마가 “큰일났어”라는 말과 함께 침대에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으로 첫 장면이 시작된다. 아빠는 뉴욕 메리엇 호텔 연회장에서 연설을 마친 호전적 랍비이자 유대방위연맹 창립자인 메이르 카하네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길거리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큰 부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1990년 11월5일에 일어난 일로 미국 땅에서 이슬람 지하드주의자가 알카에다의 지원을 받고 벌인 최초의 살인이었다.
아버지의 완강한 범행부인으로 살인혐의는 무죄를 받았지만 그날 이후, “우리는 살해협박을 받으며 살아야 했고, 늘 이사 다니며 끊임없이 가난에 시달려야 했고, 수없이 ‘새로 시작’해야 했고, 그때마다 상황이 나빠졌다. 아버지의 악명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으며 우리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일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1993년 2월26일, 폭발물을 가득 실은 노란색 밴 하나가 세계무역센터 지하주차장으로 돌진했다. 4개 층을 뚫은 대폭발로 무고한 시민 여섯 명이 죽고 천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뜻밖에도 이 일을 모의하고 전략을 짠 사람은 감방에 있던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기징역에 15년간 가석방 금지를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왕따, 폭력, 지독한 가난_남은 자들의 고통
신분을 숨기며 스무 차례에 걸쳐 이사를 다녔다. 땅딸막하고 말이 없고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숱한 학교 폭력을 당했다. 수신자부담으로 걸려오는 아버지의 전화를 돈이 없어서 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엄마의 머리쓰개와 베일만 보고도 손가락질을 하고 벌레 보듯 대했다. 그러나 가족 중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살인자라고 대놓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아버지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점점 커졌다.
“나는 카하네가 죽은 뒤에 아버지가 살인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과, 적어도 2012년에는 자유로운 몸이 되어 집에 돌아오리라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았었다. 하지만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음모에 가담함으로써 아버지는 잔인무도한 만행에 동참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다시 한 가족이 되리라는 희망을 영영 짓밟았다. 아버지의 운명은 그가 스스로 선택했다.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 대신 테러를 선택했으며 사랑 대신 증오를 선택했다.”
남은 가족의 선택은 아버지와의 결별이었다. 전화기 속의 아버지는 언제나 “기도하고 있니? 엄마한테 착하게 굴고 있니?” 라며 안부를 물었지만, 거기에 대고 “아빠는 엄마에게 착하게 굴고 계세요? 엄마가 빈털터리에다 만날 울고 있다는 건 아시나요?”라고 소리치고 싶었다는 대목은 아직도 짠한 울림이 있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났지만 그것이 곧 평범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의 재혼으로 새로 만난 아버지는 옹졸하고 편집증적이고 복수심이 강한데다가 폭력적이었다.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처럼 살인자는 아니었지만 가족에게는 ‘뼛속까지 테러리스트’였다. 결국 새아버지와도 헤어졌다.
“우리는 더는 그의 자식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평생을 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야했던 저자다. 테러리스트인 아버지, 사회와 학교로부터 당한 무자비한 왕따와 폭력, 힘으로 가족을 통제하려 했던 새아버지…. 그 역시 다른 아이들을 괴롭혀보기도 했다. 전학 온 아시아계 아이를 들볶으며 싸움을 걸기도 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의 가방을 빼앗아 쓰레기통에 처박기도 했다. 만족감이 밀려들었고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당한 아이의 얼굴을 보고는 안쓰러워졌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내가 당한 짓을 남들에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평화, 공감, 비폭력 주의자가 되었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폭력과 차별, 권리 박탈의 피해를 직접 경험했고, 그래서 더 이상 피해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스스로의 ‘결정’ 때문이다. 그는 지금 증오보다 공감을 퍼뜨리는 강연을 하러 다닌다. 이 책 역시 TED(짧고 강력한 강연과 책, 동영상, 라디오 방송, 이벤트 등의 형태로 감동과 색다른 발상을 전파하는 비영리단체) 강연을 모태로 출간되었다.
우리가 참으로 궁금하게 여기던 질문, 테러리스트의 가족이나 아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저자는 이 책의 맨 끝에 붙였다. 이것은 실제로 200여 명의 FBI 연방 요원들 앞에서 강연을 끝내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아버지의 사건을 다룬 여자 요원에게서 들은 얘기이기도 했다. 그의 답은 단호하다. “우리는 더는 그의 자식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쓰는 동안, 시리아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하고 미국 올랜도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듣는다. 또 다른 잭 이브라힘들과 그들이 겪을 고통도 떠오른다. 그들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할까 라는 궁금증도 함께.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비폭력을 시도하고는, 이게 통하지 않으면 폭력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폭력은 수세기 동안 통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역사가 시오도어 로젝의 말을 인용했다. 평화와 공감, 비폭력의 당위성이야 말해 무엇할까마는, 저자 잭 이브라힘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경험과 결정에 무슨 토를 달까마는, 다음엔 아버지 테러리스트의 목소리도 듣고 싶다는 게 이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그도 왜 할 말이 없을까.
잭 이브라힘 Zak Ebrahim
1983년 3월24일에 펜실베니아 피치버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집트 출신의 산업기사, 어머니는 미국인 교사였다. 이브라힘이 일곱 살이었을 때 그의 아버지 엘사이드 노사이르가 유대방위연맹 창립자인 랍비 메이르 카하네를 총으로 살해했다. 엘사이드 노이사르는 수감 중인 교도소에서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를 모의했다.
이브라힘은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고 어린 시절 내내 이 도시 저 도시를 전전했다. 지금은 테러에 반대하는 강연을 하고 평화와 비폭력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이 노승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한다. 옮긴 책으로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 <통증연대기>, <촘스키, 희망을 묻다 전망을 답하다>, <이단의 경제학> 등이 있다.
이규동 청소년 인문교양 매거진 ‘유레카’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