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 노동자들의 더불어민주당 농성해제를 바라보며

▲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에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STX노동자들.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을 점거농성해 온 창원진해 STX조선해양 노동자들이 4일 오후 농성을 해제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STX조선지회(지회장 고민철)는 500명 감원을 요구하는 자구계획안에 반발해 지난 3월 27일부터 진행해온 민주당 경남도당 점거농성을 벌인 바 있다. 
STX조선지회는 농성 해제 이유에 대해 6월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집권여당, 더불어 민주당에게 '기필코 사태해결을 담보할 수 있는 책임있는 역할'을 주문하는 선조치라는 입장을 밝혔다.
STX조선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에 돌입하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의 직접 면담과 민주당 차원의 대책기구를 구성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보고 및 산업은행 면담과 노사 교섭의 장이 열리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아직 산업은행의 지시를 받는 사측이 인적구조조정에 대한 근본적 태도 변화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농성해제라는 선조치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에게 사태해결을 담보할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해달라는 촉구로 해석된다.
STX조선지회는 점거농성은 해제하지만 전면파업은 유지하기로 했다. STX조선 사측이 생산직 600명 중 500명을 감원하겠다고 하자, STX조선지회는 지난달 22~23일 경고성 파업에 이어 26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이후 STX조선지회는 인적 구조조정을 철회시킬 때 까지 전면파업을 유지하고,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앞 노숙농성과 창원 도심 선전전과 집회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지난 2일부터 진행한 노사 교섭을 집중적으로 이어나갈 계획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의 역할을 기대하며 농성을 해제한 STX 노동자들의 선조치가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사실 촛불항쟁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하에서 노동자들이 집권여당 당사를 점거하는 일은 좀 의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더붊어민주당 경남도당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STX노동자들.

STX 노동자들은 여느 구조조정 사업장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일차적인 불만과 두려움은 “해고는 곧 살인”이라는 꽉 막힌 현실이었다. 이 나이에 회사에서 잘리면 누가 받아주냐는 거였다. 어디 가서 뭘 해 먹고 사냐는 거였다. 대한민국에서 회사에서 해고되면 어떠한 사회안전망도 없다. 이제 퇴직금으로 자영업 해먹던 시절도 끝났다. 
최근 한국 지엠, 금호타이어, 중형조선소 구조조정 문제로 노동자들이 벼랑끝으로 몰리고 있다. 2,3년 집중적으로 진행된 조선업종 구조조정은 울산, 경남 일대를 초토화한 후 호남으로 확대되고 있다. 금호타이어와 한국 지엠은 먹튀 자본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노동자들에게 강도 높은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폐쇄가 거의 기정사실화되고 있고, 부평, 창원 역시 아직 장담하기 힘들다.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은 해외매각에 대해 파업으로 저항했으나 결국 막지 못했다. 그리고 STX 조선 노동자들은 여당 점거농성을 강행한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구조조정과정에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재교육 전직 시스템을 연결하는 새로운 모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 경영실패를 설거지 하는 마인드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 않다.
 
STX 노동자를 비롯한 구조조정 사업장 노동자들의 또 하나의 불만은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왜 노동자들만 독박쓰냐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일만 해왔고 경영실패는 자본과 산업은행, 정부의 책임인데, 고통과 희생은 늘 노동자들만의 몫이라는 절규였다. 불행하게도 이런 구조조정방정식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투자할 때는 모두가 일등공신이지만 기업이 망할 때는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숙명론이 팽배해진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이런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자본과 정부, 산업은행 등이 노동자와 진지하게 대화에 나선 적은 거의 없다. 산업은행, 정부, 회사가 요구하는 방안을 받아들이거나 안 받아들이고 잘리거나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결국 그들은 파업이나 고공농성 등으로 저항하다 해고, 구속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촛불항쟁이 일어나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노동배제, 노동자 고통전담, 집단해고 메카니즘은 크게 바뀐 것이 없어 보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대화에 기반해서 진행되는  구조조정 모델이 새정부하에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고용정책, 산업정책, 금융정책에 대한 불신도 심각하다.
STX 노동자들은 외친다. 어찌되었든 15척 정도의 수주가 있고, 물량을 맞추려면 2,000명 이상의 신규고용이 필요한데, 굳이 500여명이나 되는 노동자를 감축하라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이다. 결국 고정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비정규직을 쓰겠다는 것인데, 양질의 일자리 정책은 어디갔냐는 하소연이다. 오직 공적자금 회수논리만 앞세워 일자리 공약, 지역경제회복 정책과 충돌하고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조선산업 전성기에 ‘사내하청 중심의 생산체제’를 구축하여 재벌을 살찌우고 다시 조선산업 구조조정기에 7만 조선노동자의 대학살을 낳는 생산시스템을 반복하자는 것인지 묻고 있다.
다가오는 조선산업회복기를 준비하는 산업정책은 뚜렷하지 않은 채 오직 인력감축 중심의 구조조정정책만 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박종식 금속노조 객원연구원은 한국의 중형조선업체들이 대거 사라지면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고사성어처럼 한국 조선산업의 산업생태계가 파괴되어, 중소형 → 기자재 → 대형의 순서로 차례대로 중국에 시장을 내주고, 한국에서 조선산업이 아예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히려 <대형 조선업체-중소형 조선업체-조선기자재 업체>를 연결하는 생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회생가능성이 매우 높은 STX와 같은 중형조선소에 선수금지급보증(RG)을 미끼로 가혹한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것 아닌가하는 항변이다.

언론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섭섭함도 커 보였다.
공적자금 4조 5천억 들어갔다고 하는데 정작 자재비, 급여 등 운영자금에 들어간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채무채권 이자 상환 등 금융비용이 대부분이고, 결국 채권회수에 집중한 것인데 왜 언론에는 노동자들이 다 혜택을 입은 것처럼 호도하느냐는 거였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노조와 직접 간담회를 요청하여 중형조선소를 살리겠다고 철석같이 다짐해놓고 이제 와서 이러면 안된다고 섭섭해했다.

노동자의 주장이 거칠 수 있고, 논리가 부족할 수 있다. 전체를 보는 시야가 부족하고 자기 일자리만 앞세울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큰 거짓말하고 남에게 사기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가장 정직하고 가장 성실하고 순수하게 일터와 나라를 지킨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항변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정치는 그들이 다 말 못하는 목소리를 알아서 대변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매일 매일 벌어지고 있는 구조조정사업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노동존중 사회로  갈 수 있다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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