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여명의 눈동자(31)

1. 예상되는 세기의 담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급진전이다. 평창올림픽에서 시작된 남북, 북미 완화흐름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추진되리라 예상치 못했다. 4월 남북정상회담 조기합의도 놀라운데 5월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서 열리게 되어, 이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는 새로운 질서와 운명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분단과 전쟁상태를 종결하고 새로운 남북, 북미 평화 실현의 길로 가는가, 아니면 북미담판이 실패해 다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아시아태평양 핵위기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빠지는가의 갈림길에 섰다. 다가오는 5월이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다.

5월 북미정상회담의 의제와 성격, 타결수준에 대해 다양한 예측이 나온다. 회담과 협상의 성격만도 예비적 탐색대화, 초기단계의 협상, 기만적 위장 협상, 포괄적 전격 담판 등으로 여럿이다. 미국이 진행한 지난 1994년 북미 제네바 협상, 이란 핵협상, 리비아 관계정상화 협상 등은 기만적 협상에 가깝고, 1972년 닉슨과 마오쩌둥의 중미정상회담, 1973년 베트남전쟁 파리평화협상이 전형적인 담판협상이다. 필자는 다가오는 5월 북미협상을 역사적인 포괄적 ‘담판협상’으로 예상한다. 또 담판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대부분 언론은 이런 북미 정상간 대화 흐름이 미국의 최대의 압박과 제재의 결과로 보고 있다. 북이 압박에 굴복한 결과라는 얘기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어도 그동안의 과정을 관심 있게 봐왔다면 흐름을 주도하는 승자와 ‘운전자’는 북한(조선)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된다. 과거 빌 클린턴 정부에서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낸 웬디 셔먼 전 미국 국무차관조차 김정은 로동당 위원장이 한반도 운명을 결정짓는 “운전석에 지금 앉아 있다”고 밝혀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이 글에서는 운전자석에서 강력한 평화공세를 펴는 북의 제안과 구상이 무엇이며, 5월 북미정상회담의 주요 내용과 결과를 전망하려한다.

2. 담판의 원칙, ‘관계정상화 + 비핵화’ 평화협상 

대부분 언론은 북미정상회담을 ‘비핵화 회담’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편향된 해석과 추정으로 보인다. 5월 북미정상회담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면 ‘북 비핵화’ 평화협상이 아니라 ‘관계정상화’ 평화협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더 명확히 설명하면, 이 회담의 본질은 비핵화 의제도 함께 논의해 해결하는 북미 관계정상화 담판이다. 회담의 강조점이 관계정상화에 있지 북 비핵화에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북이 과거 다양한 북미협상의 실패 원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지난 2009년 1월13일 북 외무성 성명을 참조하자. “우리가 9.19공동성명에 동의한 것은 비핵화를 통한 관계개선이 아니라 바로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라는 원칙적 입장에서 출발한 것이다”,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과 그로 인한 핵위협 때문에 조선반도 핵문제가 산생되였지 핵문제 때문에 적대관계가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핵무기를 먼저 내놓아야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은 거꾸로 된 론리이다.”

이 주장을 해석하면, 지난 시기 협상의 실패 원인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정말 전환할 의사를 전혀 갖지 않은 채 회담에 임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즉 미국이 회담 과정에서도 북의 선(先) 무장해제를 요구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정권붕괴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얘기다. 대표적인 게 미국의 리비아 협상 사례인데 미국이 북에게도 이런 기만적인 대화전술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다시 북미간에 열린 회담이 성공하려면, 미국이 진정으로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할 의사가 있어야하는 게 첫째 관건이란 의미이다. 즉 미국이 북한(조선)과 진정으로 공존을 추구하는 관계정상화를 할 의향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얘기다. 미국이 뒤로 다른 속셈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뜻이다. 만약 미국이 비핵화 협상에 이렇게 달라진 자세와 태도로 임한다면 해결의 길이 없지 않다는 의미이다. 즉 신뢰관계가 먼저 형성되면 상호 군사적 위협 수단을 제거하며 단계적이고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쌍방이 속셈을 따로 하고 미국이 일방적인 북 비핵화를 고집한다면 회담은 깨진다는 얘기다.

3. ‘관계정상화’ 평화협상 추진의 여건과 조짐들 

‘관계정상화’ 평화협상의 핵심은 대화 상대를 공존할 상대로 진심으로 인정한 바탕에서 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이 이런 협상을 추진하려해도 미국이 과거처럼 나온다면 진척될 수 없다. 따라서 협상은 미국이 응할 ‘충분한 여건’이 성숙되어야한다. 북은 지금 여건이 성숙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과연 그 여건은 무엇인가?

적대하는 국가관계에서 협상과 대화의 진정한 여건은 대화 조건이나 기술이 아니라 힘의 관계 변화이다. 여기서 힘이란 적대한 세력이 가진 군사, 정치, 경제, 사상 분야 등의 역량을 합친 총체이다. 그 중에서도 군사력의 역학관계와 현대전의 절대무기인 핵·미사일 등 전략무력의 위력이 핵심이다. 지난해 북의 핵·미사일 시위와 국가 핵무력 완성으로, 북 핵을 제거하고 정권을 붕괴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완전히 파산, 실패했다. 미국이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이제부터는 북한(조선)이라는 ‘전략국가’에 의한 자국 본토의 안보위기와 세계 핵전쟁 위기를 반복적으로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지난해 북미대결의 결과인 역학관계 변화와 지난 경험에서 얻게 된 교훈이다.

미국이 대결이 아니라 현상타개를 위해 가능한 대화와 협상을 먼저 모색하려 했다는 것은 오바마 정부 말기부터 언론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미국이 비밀접촉, 반관반민 회의 등 다양한 외교경로로 북에 협상 의사를 계속 타진한 것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북은 이런 미국의 협상 제안을 일관되게 거부했는데 이유는 미국이 ‘비핵화 문제’를 의제로 올렸기 때문이다. 북이 비핵화 협상 자체를 거부한 이유는, 과거 미국이 적대정책을 유지한 채 지루하게 진행해온 협상 형태를 더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핵 문제와 관련해 북은 대등한 핵보유국끼리의 군축협상이 아니면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런 북의 완강한 입장 때문에 미국은 틸러슨 전 국무장관, 펜스 부통령의 발언을 통해 확인되듯 “전제조건 없는 대화”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북과의 협상에서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후퇴신호인 셈이다. 미국이 북의 핵 증산을 막기 위해, 비핵화가 아니라 먼저 ‘핵동결’이란 현실적 목표부터 접근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4. 북의 과감하고 파격적인 포괄 제안

미국이 대북제재를 공공연히 강변하면서도, 뒤로는 북에 협상을 타진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북이 예고한 다음번 대미공세의 수준 때문이다. 언론들이 북의 핵무력이 미완성이라고 ‘가짜뉴스’를 쏟아내도, 북이 리용호 외무상의 발언을 통해 공개 예고한 태평양상의 수소폭탄 시험과 전략잠수함 등의 미국 근접 미사일 시험발사를 실행하면, 미국의 안보위기는 쿠바미사일 위기를 능가해 트럼프 정부의 정권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올 11월 미국은 중간선거를 앞둬 지지율이 낮은 트럼프 정부에게는 위기 요인이다.

미국이 겉으로 더욱 강한 경제제재와 코피전략 가능성을 흘리며 전쟁 광기를 부리면서도 속으로 전전긍긍하며 비공식 경로로 북에 후퇴한 협상의사를 타진할 즈음 북은 뜻밖의 구상을 하고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평창올림픽 참가와 평화공세이다. 북이 대결에서 대화로 과감히 선회한 것이다. 북의 이른바 ‘준비된 대화전략’이 개시됐다. 이 대화전략은 북미 탐색전과 남북관계 개선 정도가 목적이 아닌, 남측과 미국을 포괄하는 일괄 단번 담판전략으로 보인다. 그럼 어떻게 이런 포괄적 평화담판전략이 가능할까?

북은 이미 미래에 있을 수 있는 군사대결전략과 대화전략을 모두 공개했다. 핵보유국 지위에 기반한 대결과 대화전략이다.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북이 핵무력을 증강할 경우 미국에게 다자간 핵군축 협상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북의 핵능력이 중국, 영국, 프랑스 등의 핵억제력 수준을 능가한다면 일방적인 비핵화 주장은 공염불이 될 뿐이다. 게다가 가까운 미래 북핵문제는 필연적으로 세계 비핵화와 연동해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도로 간다. 이는 단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북이 남측 정의용 특사를 통해 남측과 미국 모두에게 예상 밖의 파격적인 ‘협상안’을 내놓은 것이다.

5. 북의 제안, 김정은 메시지 추론

방북 특사단의 지난 6일 언론발표문이 파격인 것은 북이 과감히 양보해 비핵화 문제를 북미대화 의제로 삼은 것이다. 즉 기대 이상의 예상 밖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북이 말하는 비핵화 의제는 북한(조선) 일방의 선(先)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전역 비핵화’이다. 이의 구체적인 내용은 지난 2016년 7월 나온 북의 정부 대변인 성명(관련 기사)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동안 거부해 온 비핵화를 의제로 삼았다면, 북은 미국이 말하는 되돌릴 수 없는 완전 비핵화를 수용하겠다는 것일까? 이전에 표명한 상호 핵군축 전략을 포기하고, 이미 완성한 핵무력을 북미 평화협정, 북미수교와 교환하려는 걸까?

필자의 결론을 먼저 말하면, 북이 이미 개발한 과거 핵무력은 당장 일거에 제거될 수 없다. 북이 말하는 비핵화는 단계적이고 장기적이며 상호적인 개념이다. 당분간 현재진행 중인 핵 증강을 중지하는 ‘핵동결’이 현실적인 출발점이라고 판단한다. 만약 과거핵의 일부를 해체한다면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조처일 것으로 보인다. 즉 억제력 수준의 핵무력을 유지하면서 미래핵의 포기와 과거핵 일부의 해체를 단행할 의향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렇게만 해도 북은 대외적으로 핵정책을 대폭 양보하는 것이어서 협상의 최대 난관을 사실상 제거하게 된다. 북이 미래의 합법적 핵보유국 지위를 취하는 방향이 아니라, 현실적인 억제력 수준에서 비공식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겠다는 전향적인 태도인 셈이다. 또 국제적으로 여건이 되면 세계 비핵화에 합류해 나머지 과거핵마저도 폐기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전향적인 양보를 미국이 오판하고 욕심을 내 5월 북미정상회담에서 선(先) 관계정상화를 무시하고, 과거처럼 북 비핵화만 강변한다면 협상은 보나마나 결렬될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북미간 협상이 타결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은 비핵화가 아닌 관계정상화에 방점을 찍은 협상이어야 한다. 관계정상화를 앞세우면서 상호신뢰에 기반해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그럼 관계정상화 협상에서 중요한 게 뭘까? 적대정책을 중단하고 친선정책으로 상호 존중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또 상호 존중에서 중요한 건 각자 주권과 실체의 존중이다. 실체의 존중과 신뢰회복이란 상대방이 가진 무력의 전략적 지위를 일방적으로 제거하려는 무장해제 기도를 중지하는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한미합동군사훈련과 핵·미사일 시험을 상호 중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상호 적대정책과 무력을 실질적으로 후퇴, 제거하는 조처로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이번 협상이 성공하려면 강조점과 진행 순서가 과거와는 달라야한다. 정치적 신뢰를 앞세워 군사적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상호 신뢰에 기초해 관계정상화 선언을 포괄적으로 하고 평화협상을 진행해, 거기서 비핵화와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단계적으로 처리하는 수순이어야 한다. 따라서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과 북의 비핵화 선언을 동시에 언급하되 관계정상화, 즉 북미수교 착수 선언, 연락사무소(대사관) 설치 문제가 바로 나와야 한다. 이어 평화협정 추진 선언과 신뢰회복 조치인 경제제재 해제가 병행돼야 한다.

평화협상에서는 단계적 비핵화, 즉 핵동결과 연동해 미국의 전략자산 남한 반입중지와 당연히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중지되고 미국의 전략자산 반입이 중지되면 그 기능과 역할이 약화되고 사실상 무력화된다. 더구나 한미가 한국군으로 전시작전지휘권 조기 이양에 합의하고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면 대북 돌격대와 특수군 기능은 단계적으로 자연스럽게 축소 소멸된다. 선(先) 무력화, 후(後) 단계적 철수를 해도 큰 지장은 없다. 주한미군 철수 추진은 북미 관계정상화와 남·북·중·미 4자 정상의 종전선언과 연동해 정치적 환경이 바뀌면서 단계적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역대급 사항들을 일괄타결로 추진할 공간은 정상회담밖에 없다.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청와대]

6. 타고난 장사꾼 트럼프가 흥분한 이유

정의용 특사가 북한(조선)에게서 전달받은 내용을 보고받고 문재인 대통령도 놀라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놀랐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의 과감하고 파격적인 통일의지와 비핵화 구상에 놀랐을 것이고, 트럼프는 그동안 미국이 뒤로 제안한 내용을 북이 사실상 모두 수용해 공식 제안한데 매우 놀랐을 것이다. 북의 제안 내용대로라면 미국 내 네오콘 등 다양한 강온파의 알력과 이견도 충분히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북은 사실상 대결의 승자임에도 승자의 방식이 아니라 미국의 체면을 세우는 방식으로 제안한 것이다. 미국과 문 대통령에게 비핵화 명분과 성과를 주고 있다. 우선 트럼프는 역대 미국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 안보의 최대 난제를 해결하는 대통령으로 된다. 이는 트럼프에게 역사적인 업적이 될 수 있다. 북미 핵대결 해소로 트럼프는 세계 평화 위업을 달성하는 대통령이 된다. 그들이 좋아하는 노벨평화상감이다. 이는 연말 중간선거에 호재로 됨은 물론, 미국 대외정책 사상 큰 성과로 기록되고도 남는다. 사실상 북미대결에서의 패배를 미국의 대성공으로 포장할 명분과 기회를 얻는다.

북한(조선), 미국, 남한이 모두 일정한 성과를 갖고 승리하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뜻밖의 대담한 협상 제안이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비핵화 성공을 자화자찬하며 자기 공적이라고 선전하는 것을 넘어 실제 선(先) 북 비핵화를 무리하게 욕심낸다면 협상은 깨질 것이다. 장사꾼 트럼프가 북이 의도하는 바의 진의를 모를 리 없고, 이렇게 현실적인 동시에 환상적인 제안을 깰 이유는 거의 없어 보인다. 미국이 막다른 골목에서 완전히 파산한 대북정책을 수습하는 것을 넘어 성공으로 포장할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북미대결이 이렇게 굴복의 방식이 아니라, 협상을 통한 신뢰회복과 관계정상화 형태로 정리되면, 통일 코리아는 미국과 적대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동북아 지역에서 힘의 상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남북은 통일하면 중립외교노선을 표방할 것으로 보인다. 또 북미 협상이 성공하면 장차 미국은 세계가 탐내는 북의 석유와 희토류 광물 자원, 그리고 중국 3성과 러시아 극동 개발사업 등 경제교류 분야에서도 배제 없이 북과 협의할 수 있을 것이다.

7. 북의 태도와 미국의 다른 선택 가능성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북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하다. 미국과 남한 언론이 대대적으로 떠드는 것과 상반되게 별말이 없다. 로동신문은 관련 논평조차 없다. 미국에 일괄타결의 파격 제안을 했지만, 설사 미국이 이를 안 받아도 대화와 협상을 구걸하지 않고 이미 예고한 계획들을 완강히 밀고 나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외려 평양은 핵보유의 정당성과 반미교양을 강화 중이다. 그렇다고 북이 북미정상회담에 진짜 기대와 관심이 적다면 거짓일 것이다. 다만 트럼프가 다른 선택을 할 경우 실망은 하겠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의중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선택은 두 가지다. 이미 협상을 한다고 공표했으므로, 진짜 대타결 협상을 하거나 아니면 다시 시간끌기 협상을 할 가능성이다. 대화하는 동안에는 북이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한다고 했으니 나쁠 이유가 없다. 대화 시늉만 해도 제재는 풀지 않으니 미국에게 당장 손해될 일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궁색하고 전술적인 기만 대화를 북이 계속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런 대화를 한다면 북미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남북관계도 유지될 테지만 지속될 근거는 매우 약해 보인다. 그리고 머지않아 군사적 재격돌로 귀결될 것이다.

현 정세는 북한(조선)이 국가 핵무력 완성 이후 ‘전략국가’로서 주동적으로 북미 관계정상화와 (남)북(중)미 평화협정, (연합)연방통일을 동시에 전환적으로 추진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현 정세를 이끌어가는 방식의 특징은 6자 회담 등 주변 강대국의 간섭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저히 우리 민족이 중심이 돼 남북 주도로 외세를 다루는 방식이다. 북은 문재인 정부를 통일의 동반자로 존중하며, ‘한국 운전자론’도 무시하지 않고 되레 높여주고 입지를 넓혀주고 있다. 제안은 대담하고 방식은 유연하다. 분단 해체와 평화로 가는 운명의 담판, 역사적인 4월과 5월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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