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뉴시스

한반도 정세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연이은 개최 소식은 피맺힌 한반도 분단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새 봄이 오고 있음을 직감케 한다. 새해 들어 불과 석 달도 안 돼 일어난 놀라운 반전이다. 이것은 한반도 문제 해결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특히 실무회담 없이 바로 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정상간 큰 틀에서의 포괄적인 합의가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것임을 당사국 모두 인정한 결과다. 이른바 ‘정상회담 입구론’이다. 

정상회담을 먼저 한다는 것은 핵심 현안에 대한 큰 틀의 원칙적 합의를 먼저 하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일괄타결이다. 핵문제, 평화협정, 북미관계 정상화, 남북화해와 통일이라는 한반도 근본 문제에 대한 정상간 일괄타결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남북미는 4자든 6자든 여러 차례의 실무회담을 한 바 있다. 그 결과 9.19공동성명을 비롯한 양자, 다자간 합의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합의의 제한성, 절차의 복잡성, 반대세력의 방해 등으로 좌절된 바 있다. 실무합의가 가진 한계다. 이런 이유로 선(先) 정상회담은 정상간 포괄적, 전면적 일괄타결을 통해 다시는 그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국내외 수구보수세력은 정상회담의 이런 성격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보, 준비 부족 문제를 제기하고 심지어 그의 결정이 즉흥적 결단인 것처럼 비판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정상회담을, 그것도 오랜 적대국간 최초의 정상회담을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는 없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루트(지난해 12월 펠트먼 유엔사무차장 방북)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의사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맞다면 북미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제안한 것이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북과의 정상회담 의사를 밝혔고, 역대 정권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 역시 오랜 기간 정상회담 준비를 해왔음을 의미한다. 마이크 폼페오 CIA국장을 국무장관에 전격 임명한 것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그는 정보수장으로서 누구보다 북의 ‘핵무력’ 완성 정도를 잘 알고 있고, 또 회담 실패가 가져올 위험성에 대해서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북미정상회담은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이라며 “북한은 평화를 원하고 있고, 이제는 두 나라의 적대관계를 해소할 때가 됐다”고 선언했다. 북한(조선)과 미국은 일괄타결을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같은 “본질적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 사안이 타결되지 않으면 남북간 교류협력도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타당하다. 10.4선언에서 밝힌 3~4자간 종전선언 등을 충분히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는 남북이 힘을 합쳐 분단구조를 허물고 통일을 실현해 나가는 데서 완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정상이 보다 깊이 논의하고 합의할 사안은 6.15공동선언을 통해 밝힌 통일방안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다. 남북이 합의한 유일한 통일방안인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에 의거한 연합연방제(연방연합제) 통일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진전된 합의가 나와야 할 것이다. 상설적인 남북정상회담, 부처별 협의기구, 분과별 전문기구 같은 남북 공동의 통일을 위한 기구 건설 등이 제시돼야 한다.

강조할 점은 한반도 비핵화는 북만의 비핵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대부분의 언론과 정부기관들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의 비핵화라는 말을 마구 섞어 쓰는 경향이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곧 북의 비핵화란 식이다. 그러나 대북 특사단의 언론 발표문 제3항에서 밝혔듯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전제는 북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이다. 이와 관련해 북이 김정은 시대 들어 공식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입장을 밝힌 지난 2016년 7월의 ‘공화국 정부 대변인 성명’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남측에 배치된 핵무기 공개 ▲남측 내 배치된 핵무기와 그 기지 철폐와 검증 ▲미국이 수시로 전개하는 핵타격수단 중단 담보 ▲대북 핵 위협 중단과 핵 불사용 확약 ▲주한미군 철수 선포 등을 요구하였다. 한반도 핵 문제의 본질이 미국의 북에 대한 핵 공격 위협에서 비롯된 만큼 남측에 배치된 미국의 핵과 수시로 주변 지역에서 들어오는 핵 타격수단들, 그리고 이를 관할하는 주한미군 문제가 같이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요구가 실현되더라도 북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 괌, 미 본토에 있는 미국의 전략무기들은 언제든지 북을 향한 장거리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트럼프 정부가 직접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남북정상회담의 주된 의제라기보다 북미정상회담에서 타결돼야 할 사안이다. 그럼에도 남북정상이 논의한다면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원칙적 합의를 보고 그에 의거해 문재인 정부가 미국을 잘 설득해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대북 특사단이 발표한 언론 발표문 제4항에서 밝혔듯이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다. 주목할 대목은 북의 비핵화나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비핵화 문제’로 제시한 점이다. 이것은 북미간 주된 의제가 한반도 비핵화만이 아니라 핵 군축 문제를 포함한 비핵화와 양국 간 관계정상화 문제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북한(조선)은 지난 2009년 1월 외무성대변인 담화를 통해 “비핵화를 통한 관계개선이 아니라 바로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먼저 북미간 관계를 정상화하여 적대관계를 해소한 다음 상호 검증을 동반한 비핵화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마치 오랜 적대관계였던 중국과 미국이 중국의 핵개발과 베트남 전쟁 등으로 첨예해진 정세에서 정상회담을 통해 일거에 관계정상화에 합의하고 적대관계를 청산한 방식을 연상케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남북,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세계사적 대전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확한 판단이다. 이제 일괄타결을 통해 남북이 통일의 구체적 전도를 열고, 북미가 관계정상화에 합의한다면 비핵화 문제도 자연스레 풀려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북,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는 물론, 세계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분수령이 될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강조했듯이 "북한과 남한을 위해, 또 세계를 위해, 이 나라(미국)를 위해서도 위대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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