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2017년 영화계 성평등 환경조성을 위한 성폭력,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토론회에서 배우 문소리씨(왼쪽 두 번째)가 의견을 밝히고 있다.[사진 : 뉴시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부터 마치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미투(me too)가 문화예술계를 거쳐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이른바 386세대의 대표주자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던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을 깊은 자괴감과 충격에 빠뜨렸다. 

서 검사의 폭로는 우리사회 지도층에 있는 여성조차 성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취업준비생,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정규직을 앞둔 인턴 등 권력의 주변부에서 성희롱과 성폭력을 겪으면서도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수많은 여성들을 보게 해주었다.

‘어떻게 안 지사가 그럴 수 있어’라는 외침과 더불어 진보 대표주자에 대한 기대와 이미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에서 자란 많은 남성들은 누구나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고은 시인, 이윤택 연극연출가 등 각 분야에서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남성일수록 위계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결론적으로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의 성별 권력관계와 성차별적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뿌리 뽑을 수 없다. 

- 여성들은 투쟁을 멈춘 적이 없다 

“여성이 단두대에서 처형당할 수 있다면 의정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올랭프 드 구즈*(아래 주)의 마지막 외침이다. 근대사회로의 역사적 전환을 가져온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의 정신,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그 ’인간‘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봉건체제의 붕괴를 가져온 베르사이유 행진에는 당시 가장 억압받았던 여성들이 투쟁의 최선두에 섰다. 하지만 혁명은 여성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한 것은 10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서구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이 물결칠 때 여성들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테제를 걸고 저항했다. 여성에게 일어나는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이라는 개인적인 문제는 거대한 구조에서 기인하는 문제라는 여성들의 문제제기에 남성혁명가들은 주목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에서 보조적인 존재, 무가치한 존재로 취급되며 도구화되고 배제되고 차별받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여성들은 투쟁을 멈춘 적이 없다. 지금의 미투운동 또한 그 투쟁의 연장선이다. ‘여성의 정치적 권리’와 참정권 획득을 위해 살해와 고문,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던 여성들로부터 ‘위안부’ 피해자의 참상을 알리고 전세계적인 페미사이드 종식을 위해 싸워온 수많은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배제와 질시속에서도 강인하게 싸워온 여성운동 투쟁의 결과물인 것이다.

- 대한민국 미투운동에는 촛불을 들었던 ‘여성’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에게 ‘성폭력 피해자’라는 것은 입밖에 내어서는 안 되는 수치이고 집안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었으며 피해자는 곧 사회적 낙인이었다.

우리사회 강력범죄 피해자의 약 90%가 여성이라는데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은 살면서 거의 대부분 크고 작은 성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서지현 검사도 말했듯이 여성들은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아닐까’라는 자책에서부터 ‘차마 부끄러워서 입밖에 낼 수 없다’는 수치심, ‘더 큰 가해’에 대한 공포감으로 침묵을 강요당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다수의 피해 여성들이 어둡고 긴 동굴 속에서 헤매며 혼자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미투운동이 보여주는 것처럼 침묵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광우병소고기를 반대했던 소녀들에서부터 세월호에서 친구를 잃었던 소녀들은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2년여 전 강남역 사건으로 ‘나는 다행히 살아남았다’는 안도는 미안함으로 바뀌었고, ‘그녀(피해자)가 곧 나일 수도 있었다’는 공포는 ‘함께 바꾸자!’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박근혜 탄핵의 촛불광장에서 여성들은 스스로 항쟁의 주체임을 보여주었고 개인적인 것의 정치화를 선언했다. 

이제 여성들은 여성을 옭아매온 질기고도 깊은 억압에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  평등세상으로 가는 혁명적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 1748 ~1793). 그는 프랑스 대혁명기에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Woman and the Female Citizen)'을 발표했다.

여성들이 분연히 일어났다. 곪고 곪았던 상처들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올라 마침내 터지고 있다.

법과 제도의 개선을 의탁해왔던 여성들이 단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과 폭력을 재생산하는 매커니즘을 해체하고자 직접정치의 선봉장이 되어 저항하고 있다.

여성운동의 테제인 ‘개인적인 것의 정치화’는 마침내 이곳 대한민국에서 커다란 역사적 해일로 일어나고 있다. 

미투(me too)가 ‘미투혁명’이 되고 있는 이 혁명적 시기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미투혁명’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 폭력이 없는 근본적 사회대변혁이다. 촛불항쟁에서 전 국민이 요구했듯이 우리사회의 가장 뿌리 깊은 적폐인 여성억압을 청산하고 근본적인 사회대변혁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사회가 더 평등해지는 것이고 더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미투운동이 여성들만의 운동일 수 없는 이유이다. 

남성들 또한 봉건적인 남성체제를 타파하는 길에 분연히 떨쳐 일어서야 한다. 지난날의 반성문을 통해 낡고 닳은 남성성을 벗어던지고 곁의 여성들과 함께 일상속 성차별을 개혁하는 일에 함께해야 한다. 음모론과 공작정치 운운하며 진영논리에 빠져 피해자를 의심하고 성폭력 사건을 소비하는 문화 앞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당리당략과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는 이 불의에 분노로 맞설 때 우리는 세상을 조금씩 바꿔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미투혁명을 통해 소수자의 권익실현과 사회적 약자들이 평등한 사회, 참된 민주사회로 한 단계 전진해나갈 것이다.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 1748~1793)는 프랑스 최초의 페미니스트이자 여성 문인, 여성참정권 옹호론자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말하는 보편인권에 발맞춰 여성인권을 주창했으나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을 기뻐하며 옹호했으나 혁명이 내건 자유와 평등이 남성에게만 해당되자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보충하여 <여성권선언문>을 발표했다. 당시 프랑스 헌법은 권리를 오직 남성들에게만 부여하고 있었다. 또한 결혼에 있어서 법적인 평등 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배우자로부터 폭력을 당한 여성이 이혼을 선택할 권리나 위자료 등의 재산권, 양육권에 대한 것도 다루고 있지 않았다. 올랭프 드 구주는 1791년의 헌법에서 누락된 영역을 담은 별도의 문서를 작성해, 여성들이 마땅히 보장받아야할 평등할 권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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