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겉과속 - 2018년 3월5일

1. 깨져버린 80년 봄의 흥취

‘웃기는 것들, 누가 자기들한데 정권을 준대나?’

당시 한국군을 장악하고 있던 군부 실세들이 모여앉아 술잔을 찧으며 하였다는 말이다.

18년 독재를 누려오던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절명한 그 이듬해 1980년이 되자 한국 사회에는 민간정부가 들어서리라는 희망이 넘실거렸다. 김영삼과 김대중 전대통령 등이 차기 대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던 이른바 ‘서울의 봄’이라고 일컬어진 때였다. 아직 세상물정을 다 알 수 없었던 필자도 나름대로 이 봄의 흥취에 젖어있었다.

하지만 은밀하게 전해진 이 소식은 봄날의 기분을 다 깨어버렸고, 대신 어둠이 몰려오는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그 어둠은 그해 5월 광주에서 그들이 자행한 유혈참극으로 현실이 되었다.

입만 열면 천박한 말을 내뱉는데서 세계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대통령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망언올림픽을 열면 단연 금메달감이다. 전국체전에서 이 종목을 채택한다면 메달은 홍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무리들이 쓸어갈 것이다.

그렇다고 현 정부에서 메달을 노려볼 만한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막말행진에서 결코 이들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과시하고 있는 송영무 국방장관이 있다.

군인이라기엔 너무 경박하고, 한 나라의 국무위원이기에는 지나치게 천박한 송영무가 국방장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때문이 아니다. 국방장관에 걸맞는 군경력을 가진 사람중에서 촛불정부를 자칭하는 정부의 국방장관에 앉힐 만한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국방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법 있지만 ‘대안부재’라는 방패를 가진 송영무의 자리는 당분간 끄떡없을 것이다.

물론 송장관과 같은 캐릭터는 정권이 바뀌면 십중팔구 화려하게 변신하여 충성을 다하기 마련이다. 그의 전임자 중의 한 사람인 김모는 그 전형을 적나라하게 실천한 사람이다.

장교였던 신한국당(자유한국당의 전신)정권시절 군의 요직을 두루 섭렵한 그는 김대중정부에서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노무현정부가 들어서자 자주국방과 국방개혁의 전도사로 행세하여 군의 최고직위에 올랐다.

그런데 그는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한나라당(신한국당의 후신, 자유한국당의 전신)이 다시 집권하자 미국추종, 대북대결의 화신으로 재빠르게 변신했다. 이런 뛰어난 줄타기 능력을 가진 덕분에 그는 국방장관을 역임하였고 박근혜정권에서는 대미정책과 대북정책을 주무르는 청와대의 실세중의 실세가 되었다.

정치에 눈을 팔고 있는 정치군인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군사에 무능하다는 것이다. 서해에서 남북간의 충돌과 교전이 발생하던 2000년대 초, 당시 한국군 지휘부는 이런 사태에 대응하는 군사조치의 지휘체계가 어떻게 되어있으며 명령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조차 몰랐으며, 동원 가능한 무기의 종류와 제원에 대해서도 제대로 아는 자가 드물었다. 우왕좌왕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김모와 같은 정치군인들이 상층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군대의 자랑스럽지 못한 자화상이었다.

99주년 3.1절이던 지난 1일 육군사관학교는 독립군 관련자 5명의 동상 제막식을 열었다. 육군사관학교는 김좌진, 홍범도, 이범석, 지청천, 이회영을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독립군의 영웅’이라고 하며 벌인 동상제막이 ‘육군사관학교가 의병, 독립군, 광복군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뜻’이라고 홍보하였다. 때맞춰 국방부는 ‘독립군을 국군의 뿌리로,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를 육사의 모체로 삼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구호와 주장만 바꾼다고, 색칠만 새로 한다고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생각과 가치관은 그대로이고 말로만 하는 변신은 정권이 바뀌면 의례하는 줄바꾸기, 저열한 생존수법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육군사관학교와 국방부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도 엄연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군이 미군정에 의해 일제에 부역한 친일매국 군인들로 만들어졌다는 것, 그것을 뿌리로 하고 있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에는 한국군의 역사를 대표한다는 몇몇 군인들의 흉상이 있다. 그런데 군내외에서 신망이 높다는 그들조차 일제강점기를 지내지 않는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일제의 식민지배에 충성했던 사람들이다.

미군정은 광복군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한국군 구성에서 철저히 배제했다.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려는 광복군에게는 무장을 해제하고 개인자격으로 들어오는 것만 허용하였다. 미군정은 일본제국주의군대 출신들로 한국군 장교의 90%이상을 채웠고(장성은 100%), 그들에게 한국군의 계급장을 달아주기 위해 군사영어학교를 급조해서 운영했다.

육군사관학교는 11기 졸업때부터 초급장교를 배출하는 정규기관으로 자리잡았으나 이들의 혼은 군대를 장악한 친일군인들, 상전을 미국으로 바꿔 탄 그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오염된 뒤였다. 바로 그 육사 11기 졸업생들 중 유신독재에 부역한 정치군인들의 리더를 자처하던 자가 전두환이었으며 이들이 80년 봄에 ‘저것들에게 정권을 줄 수 없다’며 객기를 부렸던 장본인들이었다.

2. 세상의 비웃음을 사는 이벤트

국군기무사령부의 사령관을 포함한 기무사 간부들은 지난 1월25일 서울 동작구 서울현충원에서 ‘정치적 중립 다짐 선포식’이란 걸 하였다. 부하 장병들을 도열시켜 놓고 간부 몇몇이 세숫대야에 담아놓은 물에 손을 씻는 이벤트를 한 것이다. 기무사는 자신들이 정권이 하수인 노릇을 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결별하려 한다고 세상이 인정해주기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군 정보기관이 대통령선거에 개입한 것, 그것도 댓글이나 다는 짓을 한 것은 어디 내놓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일이다. 국정원이야 고문과 조작, 정치사찰을 본업으로 하는 집단이니 그렇다 할 수도 있으나, 과거로 볼때 국정원과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기무사는 그래도 명색이 군정보기관 아닌가.

기무사의 고위층들은 엄동설한에 찬물에 손을 담그는 것이 대단한 결의라고 생각했겠지만 세상의 평가는 사뭇 달랐다. ‘조폭들도 안하는 코미디’, ‘줄바꾸기를 해보려는 유치한 몸부림’… 대개 이런 거였다.

육사 교정에 독립군활동을 했다는 몇 명의 동상을 세운다고 출생의 비밀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역사적 평가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까지 섞어서 ‘항일무장투쟁의 영웅’이라고 추켜세웠으니 ‘뿌리바꾸기 이벤트’로서도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에서 주인공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할수 없는’ 서자출신의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가출’을 단행하고 새 세상을 꿈꾸는 길에 나섰다. 이처럼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꾸는 일도 간단치 않다. 하물며 나라의 군대가 100년가까이 자기를 얽어매고 있는 성격과 역할을 바꾸는 일이 한 두번의 모양좋은 이벤트로 이뤄질 리 없다.

한국군대의 상층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대매국의 역사와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정치군인들은 한마디로 말해 국민을 국민으로 섬기지 않는 기회주의자들이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 생각과 능력이 없는 똥별들이다. 동상 몇 개 만들고 손 씻는 수작을 벌인다고 변할 리 없으며, 세상이 그들을 믿어줄 리도 없다.

‘적장의 생각을 알기 위해 북측 군통수권자의 사진을 업무실에 걸어놓고 있다’는 되지도 않는 말까지 하던 김모는 뇌물을 받아먹은 의혹까지 드러나 다시 감옥에 가야 할 신세가 되었다. 정치보복이라고 항변하고 다닌다던데 어차피 정치로 출세한 인생인데 정치로 대가로 치르는 것이 왜 억울한지 알 길이 없다. 정치로 성공한 군인은 정치로 망하기 마련이다. 박정희가 그 교훈을 확인시켜 주었는데도 아직 그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군인들이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하기야 3.1절에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것도 양에 차지 않아, 일장기까지 들고 나오는 나라에서 무슨 짓인들 허물이 될 수 있겠는가. 사대매국에 혼을 잃은 자들은 3.1만세운동을 하다가 일제에 의해 희생된 선열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건, 하늘나라에서 피눈물을 흘리건 개의치 않는다. 이들에게 항일독립의 피어린 역사는 이벤트거리 이상이 될 수 없다. 이들은 일본이건 미국이건 상전을 잘 모시고, 권력을 가진 자가 원하면 무슨 짓이라도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자기 자리를 유지하고, 자기 몫을 챙기는 데 있다.

한국군의 상층 지휘부가 무능하고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나라의 군대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사대매국’이라는 골병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군대가 국민의 군대로, 촛불혁명을 떠받드는 군대로 거듭나려면 무엇보다먼저 사대매국의 과거, 그 썩어빠진 정신과 결별해야 한다.

출생증명서를 바꾸고 족보를 수정액으로 덧칠하는 것만으로 친일부역자, 매국노의 후예라는 신분은 바뀌지 않는다. 사대매국이 어찌할 수 없는 본성으로 되어 어제날에는 일본을, 오늘에는 미국을, 또 내일에는 어떤 다른 나라를 떠받드는 초라한 신세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군사에는 무능할대로 무능해도 정권에 아부하는 자들이 출세하는 군대, 비리가 끊이지 않는 군대의 운명도 변할 수 없다.

군대내에서 각종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한반도정세가 험악해지니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들의 마음이 더 힘들다. 게다가 군대 고급지휘관들, 군부 장성들이 멀쩡하지 못하니 그 근심은 끝이 없다. 한국군 똥별들이여, 제발 정신 좀 차리자. 그대들때문에 국민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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