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겉과속 - 2018년 2월28일

1. 케네디가 고용한 특별한 보좌관들

백악관에 들어가지 전에도 이런 저런 성 추문들이 따라 다녔던 미합중국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재임기간 1993.1~2001.1)은 1995년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추문이 폭로되어 혼이 난 적이 있었다.

특별검사까지 임명되어 파헤치게 된 이 사건은 지퍼 게이트(Zippergate)라는 웃기는 이름까지 붙기도 했다. 특별검사스타가 발표한 보고서(THE STAR REPORT)에는 19금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클린턴이 백악관 집무실 등에서 벌인 낯뜨겁고 역겨운 장면으로 가득하였다. 하지만 빌 클린턴은 ‘성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고 부적절한 관계였을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으로 클린턴은 탄핵까지 거론되었다. 하지만 르윈스키와 그런 짓을 한 때문은 아니었다. ‘르윈스키와의 추문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위증을 교사했다.’ ‘사법기관의 조사를 방해했다’는 것이 탄핵을 추진한 측이 내건 근거였다.

세상을 꽤나 시끄럽게 했던 이 사건은 결국 흐지부지되었고 클린턴은 이 와중에도 재선에 성공하고 8년의 임기를 다 채웠다. 힐러리 클린턴과의 혼인관계도 유지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이런 상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 미국 35대 대통령을 지냈던 존 F 케네디는 아예 몇 명의 여성들을 백악관에 채용하여 특별한 업무에 종사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런 나라에서 부동산투기꾼 출신인 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각종 추문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다.

미국은 성이 개방된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성 개방’은 자유연애가 방만한 상태에 이른 것을 말하는 것인데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사이에 애정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르윈스키는 한때 그렇게 착각하기도 했다는데 그것도 따져보면 미합중국 대통령과 백악관 임시직원간의 엄청난 신분과 직위 차이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했다. 지퍼 게이트는 미국의 정치계, 상류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도덕적 파탄에 이르러 있는가를 보여준 사건일뿐이었다. 그리고 그 도덕적 파탄과 문란 상태는 권력과 돈의 힘에 의해 자행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2. 성추행자들을 밝혀내고 처벌하는 것도 적폐청산이다

연극계의 유력인사였던 이모씨의 추행사건 폭로로 시작된 거센 파도가 문화계를 넘어서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사태가 적폐청산의 사회적 동력을 분산시킨다고 걱정하는데 그것은 짧은 생각이다.

추행사태의 첫 등장인물이었던 이모는 사과기자회견이란 데서 ‘남성중심의 문화가 빗어낸 일’이라고 하였다. 자기가 살아보자고 애매한 남자들을 다 끌고 들어가겠다는 유치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 사태의 뿌리가 모든 남성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수와 진보의 구분없이 마구 발생하는 일도 아니다. 이런 일이 버젓이 오랫동안 저질러질 수 있었던 것은 권력, 돈과 결탁된 낡은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구보수 인물과 진보적 인사를 가리지 않고 가해자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해당 업계에서 권력 또는 상당한 영향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이었고 그것으로 피해자들을 억압하고 강요했다. 그러므로 직위와 권력을 이용해 성추행을 일삼은 자들을 밝혀내고 처벌하는 것 또한 적폐청산의 중요한 부분이다. 아직 여파가 미치지 않고 있지만 낡은 정치인들이 과연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 지난 2011년 3월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고 장자연씨 사건 재수사와 가해자 처벌을 촉구하는 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 : 뉴시스]

3. 진정한 여성해방의 첫 문을 열어야 한다

장자연…. 몇 년이 지났지만 이 이름은 아직 구천을 떠돌고 있다. 당시 사건의 진상이 꽤나 밝혀졌지만 적지 않는 사람들은 진실에 고개를 돌렸다. 권력의 주구들과 재벌이 던져주는 부스러기를 먹고 사는 자들은 사건을 호도하고 무마하는데 있는 힘을 다하였다.

장자연사건의 진상이 남김없이 밝혀지고 관련자들이 엄중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성추행과 폭행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은 이 사회의 어느 곳에건 또 있게 될 것이다. 성추행폭로행진이 장자연사건을 해결하는데 이르지 못하고 멈춘다면 여성이 억압된 삶에서 해방되는 날은 다시 아득한 미래의 꿈으로 밀려날 것이다.

성추행폭로로 인해 모든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을 어찌 억울하다고만 할 것인가. 최소한 방관자로 살았던 지난날에 대한 쓰라린 대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과거보다 더 열악해지고 더 억압적으로 된 면도 없지 않다. 지금 몰아치고 있는 거센 힘이 양성의 산술적 평등을 넘어서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타파하는, 진정한 여성해방의 길을 열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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