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이야기

위기의 현장, 동료들의 마음

23일 부평역 광장에는 지엠(GM) 노동자들의 “일방적 공장폐쇄 지엠자본 규탄 및 30만 노동자 생존권 사수 인천지역 결의대회”가 열렸다. 해가 지고 날씨가 점점 추워질 때, 한국지엠 군산지회 김재홍 지회장이 무대에 올랐다. 

마이크를 잡은 군산공장 김 지회장은 호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오늘 오전 농성장에 이름 모를 선배 한 분이 오셨다. 저에게 희망퇴직서를 내러 왔다고 하셨다. ‘늙은 내가 나가야 군산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자리가 생길 테니, 내가 나가는 게 맞다’면서, 용기를 가지고 싸우라며 이 봉투까지 주고 가셨다.” 

지회장은 우리가 선배들 쫓아내고 살아남아서 뭐하냐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라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사과의 말을 전했다. 

“군산공장이 어려워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먼저 쫓겨날 때 우리 정규직들은 모른척했다. ‘나라도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미안하다. 함께 싸워야했는데 미안하다.” 

지켜보는 이들이 숙연해진다. 해고를 앞둔 노동자들의 마음,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동료들의 마음이 어떤지 짐작이 되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 또 한편 이것을 막지 못한다면 결국 다음은 내 차례가 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비정규직, 정규직, 군산, 부평, 창원 공장이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이 절실해지는 순간이었다. 

GM 자본의 빨대경영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대우그룹 부도사태를 겪으며 부실화된 대우자동차는 2000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몇 차례의 매각시도 끝에 2002년 지엠사가 대우를 인수한다. 인수금액은 5000억원, 2009년 유상증자 5000억원을 더해도 지엠의 한국 투자금액은 1조 원에 그친다. 하지만 지엠은 한국공장을 인수한 이후 기업을 키우기보다는 현금을 빼가는 용도로만 운영해왔다. 현재 언론에 오르내리는 지엠 본사에서 회수한 돈만 2조원 이상이다. 

인수 당시 채권단이 15년간 저리의 이자로 미뤄준 1.2조원의 자산매각 대금을 지엠 본사에서 빌려와 연 5%대 고리의 이자를 내게 했다. 산업은행의 저리 이자를 미국 본사의 고리 부채로 전환해 회사를 부실화한 것이다. 
한국 지엠의 자동차 매출원가율이 93%로 80%인 다른 자동차회사에 비해 월등히 높은데, 이는 지엠 본사가 자동차 부품 등 중간재의 가격을 비싸게 받는 방식으로 돈을 빼냈다고 의심 받는 대목이다. 
이뿐 아니다. 연구개발비를 떠넘기는 방식, 자회사인 쉐보레유럽이 철수할 때 발생한 손실과 러시아법인 철수 비용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자본을 회수해갔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지엠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세계화 전략을 바꿔 중국과 북미 생산기지만을 남기고 나머지 공장들을 철수하고 있다. 2015년에는 러시아에서 공장을 철수했고, 지난해 10월에는 호주공장도 철수했다. 호주공장을 폐쇄하기 직전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다”라는 TV광고까지 내보내며 정부지원금을 요청해놓곤 호주 정부에게서 지원금을 받자마자 공장 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지금 지엠의 정부지원금 요구를 경계하는 것도 이런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4년 전부터 지엠의 한국공장 재무상황이 나빠지면서 철수설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지엠 자본의 철수설은 노동조합과 정부도 심증을 갖고 있었다. 노조는 산업은행의 비토권이 만료되던 지난해 10월 비토권 연장 등 대책이 필요하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정부 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엠 사태, 새 정부의 산업정책 가늠자

2002년 지엠의 대우자동차 인수 당시 채권단 대표로 출자에 참여한 산업은행은 10명의 사외이사 중 3명의 이사추천권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일자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주) 사후관리 현황자료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지난 15년간 산업은행이 지엠의 사업유지와 견제역할을 수행했지만, 소액주주여서 한계가 있었고 지엠의 협조가 없어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하지만 예견된 군산공장 폐쇄 등 지엠 자본의 사업 축소에 대해 정부가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사전에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엠과 같은 외투 자본의 횡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쌍용자동차, 하이디스 등 제조업에서 외투 자본의 ‘먹튀’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늘 사태가 터져야 대책을 수립하는 모습이다. 이번 사태는 외투 자본의 횡포와 제조업 분야의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가 어떤 태도와 입장을 보여줄지, 새 정부 산업정책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이번 지엠 사태에 대해 정부는 당정 협의를 통해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주주, 채권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장기적으로 생존 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이라는 3대 원칙을 정리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이고 책임 있는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미 주요 국가들은 외국자본의 투자과정에서 적정성을 심사하고 견제와 관리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외국자본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제조연대와 함께 발의한 제조업발전특별법안

지난해 양대노총 제조연대(민주노총 금속노조, 화학섬유연맹/ 한국노총 금속노련, 화학노련 등)와 함께 제조업발전특별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제조업 발전전략과 기본정책 수립을 위해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대규모 구조조정을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 협의기구 구성, 외국인 투자기업의 투기행태를 규제하기 위한 장치 마련 등을 담고 있다. 

특히나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쌍용자동차, 하이디스 등의 사례를 교훈 삼아 ‘단기투자이익을 위한 무리한 구조조정과 고율 배당, 유상증자 등으로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둔화시키는 경우’, ‘대규모 정리해고 등으로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에 중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 외투 자본에 대한 지원을 제한하거나 지원한 것을 환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경제주권을 지키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금융 중심의 성장전략이 한계를 드러내 제조산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한편 중국을 포함한 후발국의 진입과 4차 산업혁명으로 제조업 전체가 변화하는 시기다. 정부는 산업위기의 순간이 되면 외국 컨설팅회사에게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조언을 받고, 산업 논리가 아니라 금융의 논리로 생산능력의 축소, 인력 잘라내기에 급급했다. 제조업 발전을 외국 컨설팅회사와 재벌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노동자는 하나! 함께 힘 모아야 

일부 보수세력은 이번에도 귀족노조를 탓하고, 노동자 양보 등을 거론하지만, 지엠자본을 비난하고 경제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을 왜곡할 수는 없다. 계속되는 제조업 위기에 우리나라가 제조업 발전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근본적 해결책을 바라는 여론도 많다. 
 
국민여론이 있는 만큼 적당히 타협할 것이 아니라 지엠자본에 대한 책임을 묻고 지엠공장 정상화를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을 수립하는 계기로 만들어야한다. 이를 위해 경영실사 과정부터 대안 모색까지 노동자들의 참여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울산 동구의 고용위기를 겪으며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옆에서 지켜봤다. 고용위기에 처한 지역 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은 무거운 책임감이다. 무엇을 더 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맞서야 할까? 끊임없는 고민이다. 

다만 비정규직, 정규직, 군산, 창원, 부평 공장 노동자들 모두가 하나 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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