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지엠 사태 해법

▲ 사진 : 뉴시스

지엠이 군산공장 폐쇄를 선언하고 한국정부의 자금 지원이 없다면 나머지 공장도 철수할 수 있다며 우리를 협박하고 있다.

글로벌 지엠의 세계 전략에 따라 한국공장의 생산 물량이 지속적으로 축소됐고, 이전가격 조작 및 본사 차입금에 대한 고금리, 본사 연구개발비 지불 등의 방식으로, 한국지엠은 적자를 보고 미국 본사는 실적이 향상돼 주가가 올라갔다.

이와 같은 지엠의 해적 행위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지엠사태에 대한 대안모색에 집중하고자 한다.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지엠이 그동안 어떻게 한국지엠을 경영해서 자본잠식에 이르렀는지 원인이 규명돼야 한다. 또한 2002년, 2010년 산업은행과 지엠의 협약서 내용이 무엇이었고 이것이 준수되었는지 등 책임소재를 규명해야 재발방지 및 경영정상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산업은행은 지엠과 장기발전 기본협약서를 체결했다. 김영기 당시 산은 부행장은 “한국지엠이 독자 생존할 수 있도록 생산, 수출, 라이선싱(기술권) 등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라며 “해마다 살피고 이 협약을 점검해 장기경영계획 목표 미달 시 치유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은은 이 협약을 맺으면서 지엠의 유상증자를 사실상 허용했다. 민유성 당시 산업은행장은 협상과정에서 “소형차, 전기차, 하이브리드카 등 경쟁력을 갖춘 차종의 핵심 생산기지로 육성하겠다는 보장을 해줘야 한다”고 지엠에 주문했고, 협약 전까지 산은은 수 조원에 달하는 한국지엠의 국내 금융권 여신을 이용해 한국지엠을 파산시켜 법정관리하겠다는 내부방침을 수립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2017년 비토권은 만료됐지만, 장기발전협약에 따라 장기계획 목표 달성을 위한 지엠의 지원, 한국지엠 기술권 보장 등의 권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엠이 철수하더라도 시설물과 기술을 그대로 남겨 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와 산업은행이 비토권 만료이후를 대비한 독자생존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지엠의 현금 인출을 방치한 것을 보면, 장기발전 협약서상 지엠이 불리한 점을 회피하는 것을 방조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제기된다. 한국일보(2018.2.19.)는 지엠이 2010년 협약 이후부터 △한국지엠 수출량 급감 △한국지엠의 독자 개발 신차 출시 급감 △연구개발 비용 본사 송금 증가 △스파크EV 등 미래차 생산중단 등 한국지엠의 독자 생존 능력을 고사시키는 조치를 잇달아 시행했다. 지엠이 지난 7년간 한국지엠의 국내 금융권 여신을 없앤 것도, 협약의 맹점을 이용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지엠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에게 협약서의 내용을 빨리 공유하고,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나리오 1은 경영정상화 조건으로 ‘지엠 본사 차입금의 탕감 또는 출자전환’, ‘전기차를 포함한 신모델 투입’, ‘투명한 경영정보 제공’ 등을 보장하고, 정부가 지엠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처리방식은, 부실기업 처리에 있어서 주주와 채권단의 책임을 묻는 것이 자본주의 경영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것이다. 주주는 의결권을 가지고 경영에 참여하며 이익배당에서도 우선권을 갖는다. 따라서 회사가 잘못됐을 때는 그만큼의 책임도 져야 한다. 현재 한국지엠의 대주주이자 채권단은 GM 본사다.

한국지엠의 기형적인 부채를 정부가 대신 갚는 방식의 지원은 결코 안 되며, 정부 지원은 최소한 차입(반환조건) 또는 지분(주식보유 확대)으로 처리해야 한다.

또한 정상적 경영을 위해 산업은행과 노동조합의 개입력을 높이고 경영관련 정보제공 의무 등을 명확히 확보해야 한다. 경영이 정상화 되면 한국지엠의 독자적 개발 역량과 특허권 등을 보장하며 장기 전략을 세워나가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인 정부의 한국지엠 지원을 거부하고 독자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시나리오 2는 충분히 가능한 독자생존 방안이다.

2010년 장기발전 기본협약서 내용에 따라 독자생존의 폭이 달라질 수 있다. 산은 발표처럼 현재 생산차량의 기술사용권이 한국지엠에 있다면, 정부의 경영권 인수로 독자생존이 가능하다. 한국지엠 연구소는 전기차 볼트(Bolt)를 개발했고 엘지전자가 인천 청라에서 핵심 부품을 조달하고 있다. 한국지엠 연구소는 내연기관차 개발 능력이 충분하며, 미래차 개발도 국내 기업들간 협력과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시간과 자금이 투입된다면 가능할 수 있다.

시나리오 3은 어렵지만 시도해야 할 독자생존 방안이다.

산은 발표와 달리 한국지엠에 기술사용권이 없다면 고통스럽지 만 역시 자력갱생의 길을 가야 한다. 이 경우 먼저 이명박, 박근혜 시절 산업은행 관계자의 무능과 부실 방조 등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산은이 장기발전 협약서 내용을 거짓 발표했거나, 아니면 지엠이 협약을 회피하는 행위를 방조했을 개연성이 높다. 이는 과거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 국부유출을 방조한 금융위원회 관료의 매국적 행위와 유사하므로 적폐청산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지엠의 모델을 사용할 수 없다면, 우리가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해 생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약 3년간의 기간이 소요되며 생산차량의 판로도 마련돼야 한다. 이 경우 일시적인 국영화를 포함한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자동차 관련 기업들(엘지, 삼성, SK, 부품사, 완성사 등)의 노하우를 모아서 새로운 회사 설립을 모색할 수 있다. 한국은 자동차 생산 세계 5위로 풍부한 노하우가 있고 세계 최고의 전기차배터리 생산능력이 있다. 정부는 독점구조를 방지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국내자동차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업들과 이해당사자 간의 조정과 협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자동차산업은 한국의 기간산업이다. 한국지엠 규모의 대책은 땜빵식 단기대응으로 접근할 수 없다. 3년은 어려운 기간이 되겠지만 이해당사자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극복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30년, 100년을 보고 자동차산업 발전과 고용안전을 위한 튼튼한 기반을 세워야 한다.

외환은행 먹튀 론스타펀드를 비롯해서 쌍용자동차, 한국지엠 사태를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기간산업의 해외매각에 대해 경제주권 차원의 감시와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

지엠 그룹이 하나의 회사이므로 글로벌 차원에서 어느 공장에 흑자를 내고 어느 공장에 적자를 내는 것은 자유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지만, 다국적기업의 이전가격 조작에 의한 현지공장의 ‘소득이전과 조세회피’에 대해 이미 OECD 차원에서도 불공정 행위로 합의돼 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프로젝트 등을 통해서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state aid rule 재해석과 구글세 제정 등으로 2016년 애플에 16조원 반납 명령을 내렸고, 구글에는 3조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영국과 프랑스도 구글에 수천억에서 수조원의 체납세를 부과했다.

또한 주요 국가들은 외국인 적정성 심사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 공공질서, 환경보전에 중대한 위해를 초래하는 경우’, ‘고용안정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에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민중당의 김종훈 의원이 금속노조 등 6개 산별노조와 함께 ‘제조발전특별법’을 발의했는데, ‘단기투자이익을 위한 무리한 구조조정과 고율배당, 유상감자 등으로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둔화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기업의 경영안정성을 저해하는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기술유출, 생산물량 축소, 연구개발기능 해외 이전, 공장폐쇄 또는 대규모 정리해고 등으로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저해하고 노동기본권 실현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경우’, 외국인 투자에 대한 지원을 제한하거나 지원한 내용에 대해 전부 또는 일부를 환수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국부유출과 고용불안을 초래한 쌍용자동차, 하이디스, 한국산연, 아사이글라스, 한국지엠 등 먹튀자본을 규제하자는 것이다.

중국은 기간산업의 외자 진출 시 50%의 경영권만 주어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다. 합작경영이므로 외국자본은 회계조작, 정보 비공개, 자본철수, 정리해고 등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또한 자국 철도산업 보호를 위해 외국기업 진출 시 70%이상의 현지부품 사용 및 중국기업과 공동응찰을 의무화하고 있다.

주요 국가들도 자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에 대해 황금주 등으로 인수합병이나 중대한 문제에 관해서는 지속적인 비토권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히다치, 가와사끼 등 7개 철도차량제작사가 협업과 공동생산을 통해 세계철도시장에 진출해, 1국가 7개사이지만 한 개의 브랜드를 사용한다. 자국 철도산업 보호를 위해 철저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일본국가규정(JIS) 인증 및 사후관리체계를 요구해 타 국가의 철도제작사 진입을 철저히 통제한다.

기간산업에 진출한 외국자본이 철수하는 경우, 국민경제 차원에서 정부가 개입해 정상화하는 경우가 많다.

호주는 12년간 1조 7천억 원을 지원했으나 2013년 12월 지엠이 철수하자, GM의 남호주 엘리자베스 공장을 영국 철강회사 리버티하우스를 주축으로 구성된 GFG얼라이언스가 인수했다. GFG는 이 공장을 전기차 공장으로 전환하기로 했고, 호주 정부는 전기차 산업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자동차회사 르노가 경영위기에 처했을 때 일시적인 국영화를 통해 정상화한 후 민영화한 바 있다.

경제주권 차원에서 외국자본의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론스타 사태, 지엠 사태가 언제든지 발생할 것이고, 더 많은 기간산업들이 해외매각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규제완화와 무조건적인 외자유치를 선호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재고해 한국이 외국자본의 현금인출기, ‘글로벌 호구’가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경제주권의 관점을 가질 때, 우리는 ‘퍼스트 아메리카’를 외치는 트럼프와 ‘탐욕한 자본’ 지엠에 끌려 다니지 않고 30년, 100년의 장기전망 속에서 외자기업에 대응할 수 있다. “너희가 경영 정상화 의지가 없다면 철수해라, 우리가 인수해서 경영하겠다”는 대안 속에서 당당한 협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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