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있다.[사진 ; 뉴시스]

1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일정에 올랐다. 평창올림픽이 가져온 최대의 성과다. 국민의 70%이상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이라며 찬성하였다. 지난 10년간 이어져온 남북간 대결과 반목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다. 불과 두 달도 안 돼 일어난 놀라운 변화다. 이처럼 남북은 그 본성상 화해하고 단합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대결과 불신은 외세와 그에 결탁한 소수의 무리가 만들어낸 인위적 장애일 뿐이다. 그런데 국내외 많은 언론과 정치권은 여전히 기대와 우려 속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미국이 북 비핵화 주장을 집요하게 내세우며 대북 적대정책에 아직 이렇다 할 변화 흐름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결정된 이후에도 3개의 항모전단을 한반도 인근 해역에 배치하고, 국내에는 특수전 병력의 증강 배치, 괌에는 본토의 B-2, B-52 핵 전략폭격기 전진 배치 등 긴장을 높였다. 또 언론에는 이른바 ‘코피작전(bloody nose)’이란 제한적 선제타격계획을 흘리는 등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는커녕 불시에 북을 공격할 것 같은 태세를 갖추었다. 펜스 부통령 역시 올림픽 방한기간 동안 대국다운 면모는 전혀 없이 북측 대표단을 피해 다니기에 급급하고, 오로지 북을 비난하고 압박하는 데 집중하였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북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들조차 미국의 “패권적이고 오만한 민낯”, “미국이 (북보다) 훨씬 더 호전적”이라고 혀를 차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언론과 전문가들은 올림픽 이후 북미간 긴장이 다시 고조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남북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돌아보면 지난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북미간의 화해흐름을 배경으로 하였다.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은, 1999년 5월 윌리엄 페리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 특사의 방북과 그해 9월의 북 미사일 시험 유예와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 및 식량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베를린 합의 등 북미간 뚜렷한 화해 흐름을 배경으로 하였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은 다시 북미간 고위급 대화의 동력이 되어 북한(조선) 조명록 차수의 방미와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 그리고 북미정상회담 합의로 급속히 발전하였던 것이다. 2007년 10월의 남북정상회담 역시 북을 핵 선제공격 대상으로 지목해 긴장을 높였던 부시 행정부가 북한(조선)의 연속적인 미사일, 핵 시험에 의해 입장이 바뀌고 그에 따른 6자회담 당사국간의 2.13합의 등이 배경이 되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북과 임기 내 수교의사를 밝히는 등 전향적 태도로 돌아서고, 2.13합의는 9.19공동성명 실행방안으로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어진 남북정상회담은 이듬해 미국이 북을 테러지원국, 적성국 제재법에서 해제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렇듯 역사는 북미간 긴장완화가 남북화해로 이어지고, 남북화해는 다시 한 차원 높은 북미화해로 나아갔던 경험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미간 긴장완화 흐름이 분명하지 않은 조건에서 먼저 제안됐다는 점에서 이전의 정상회담과 구별된다. 북한(조선)은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미국이 더 이상 북에 대한 무력공격이나 한반도 긴장고조를 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 아래 북미간 긴장완화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이념을 북과 남의 당국이 힘을 합쳐 대담하게 실천할 수 있는 주객관적 조건들이 성숙되였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남북화해를 배경으로 북미평화협상의 길을 열려는 의지와 남북대화가 발전하는 것을 과거처럼 미국이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도 포함되어 있을 법하다.

실제로 미국은 얼마든지 유엔 대북제재 결의나 독자 대북제재 조항을 들어 북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방해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당 부위원장)의 방남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을 위한 북측 갈마비행장으로의 국내 여객기 운항 ▲북측 대표단 전용기 ‘참매1호’ 국내 운항 ▲만경봉92호 묵호항 입항 등은 유엔 대북제재나 미국 독자제재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과 유엔은 대북제재 무력화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모두 제재 예외조항을 적용함으로써 사실상 북의 올림픽 참가를 지원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펜스 부통령의 적대적 발언이나 군사적 긴장조성과 달리 실제로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여건조성에 이해를 같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림픽 기간 한미연합훈련 연기’와도 정치적 맥락을 같이한다.

최근 미국의 대북 메시지는 약간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북미간 조건 없는 탐색적 예비회담을 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백악관에서)코피전략은 논의도 안했다”고 북에 대한 제한적 군사공격 가능성도 일축하였다. 두 달 이상 한반도 전쟁위험의 주된 고리로서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킨 제한적 선제타격론을 ‘논의조차 안했다’고 발은 뺀 것이다. 긍정적 변화다. 그러나 문제는 “(북이)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대화할 것이다”라는 발표처럼 마치 ‘북이 원해야 대화할 수 있다’라는 식의 오만한 태도와 탐색적 대화 이후 실제 협상에서는 비핵화가 주된 의제가 되어야 하고, 북이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 최고 수위의 대북압박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내 강온파간 입장차의 산물일 수 있지만, 또 한편 북의 올림픽 참가를 자기네 ‘최대 압박의 성과’로 보는 주관적 상황인식의 결과일 수도 있다. 미국은 여전히 길을 못 찾고 있다.

반면 북한(조선)은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 “10년, 100년을 제재한다고 하여도 뚫지 못할 난관이 없다”고 대북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선신보는 “조선은 미국에 대화를 구걸할 필요가 없다”고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였다. 오히려 ‘지금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버리고 스스로 대화를 요구하도록 하기 위한 평화공세의 시점’이라고 미국이 먼저 적대정책 폐기의 구체적 조치를 취할 것을 주문하였다. 나아가 “북남 대화와 관계 개선의 흐름이 이어지는 기간 북측이 핵시험이나 탄도로켓 시험발사를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 것은 미국이 북의 핵, 미사일 시험 중지를 원한다면 남북대화를 방해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것은 북한(조선)이 북미대화의 요건으로 적대정책 폐기조치와 남북화해 방해요인의 제거를 제시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4월 예정인 한미연합훈련의 중단과 대북제재 해제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북미간 대화가 바로 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내부 대립이 심한 트럼프 정부에서 “조율된 입장이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청와대의 발언이 맞을 것이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미국만 바라볼 게 아니라 올림픽을 통해 확인된 남북화해를 향한 국민적 열망을 정책적, 제도적으로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 각종 민간교류를 활성화하여 이미 멍석을 깔아놓은 ‘개성공단 재개’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남북군사회담을 통해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함으로써 한미연합훈련 재개 명분을 없애야 한다. 남북간 화해 교류가 확대될수록 미국은 한반도 “정세완화의 흐름”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북미관계 발전을 추동하는 길이요, 분단 역사의 새로운 전기를 여는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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