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미부통령, “북과 대화” 말해도 한미연합훈련 등 ‘암초’ 여전
미국은 진짜 북한(조선)과 대결국면을 대화로 풀 의사가 있는 걸까?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씨와 한 인터뷰에서 “북한(조선)이 대화를 원하면 하겠다”고 말해 미국의 대북 태도변화 여부가 관심을 모았다. 지난 11일(현지시각) 공개된 인터뷰에서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정부의 종전 대북 입장과는 다른 몇 가지를 언급했다.
우선 대북 압박을 진행하는 동시에 ‘조건 없이’ 북과 첫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펜스 부통령은 “최대 압박과 관여를 동시에(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at the same time)”라고 표현했다(<뉴스프로> 번역 인용). 이는 로긴씨 설명대로 “이전 미국 입장에서 중요한 변화”로, 미국의 기존 입장은 “북한(조선)이 진정으로 굴복할 때까지 최대 압박을 가하고 그 후에야 김정은 정권과 직접 대화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펜스 부통령이 말한 대화는, 로긴씨 해설에 따르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꺼냈다가 백악관 내부 반발에 거둬들인 ‘전제 조건 없는 초기 대화’, ‘대화에 관한 대화(“talks about talks”)’이다. 그런데 인터뷰칼럼 전문엔 펜스 부통령이 이를 직접 언급한 대목이 없다. 대신 이집트를 방문 중인 틸러슨 장관이 이튿날 펜스 발언에 관해 질문 받고 “(북과)협상 이전에 일종의 예비적 논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부연한 데서 ‘전제 조건 없는 초기 대화’ 입장이 트럼프 정부의 정리된 입장임을 확인하게 된다. 펜스 부통령은 아시아 방문기간 동안 매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로 의논했다고 한다.
다음은 문재인 대통령과 두 번의 회담에서 한미 양국 정부가 북과 더 많은 교류(처음은 한국, 그 다음 잠정적으로 미국)를 갖기로 합의한 점이다. 이는 지금껏 ‘최대 압박’ 중심의 한미동맹 기조와 다른 모습이다. 남북대화를 ‘전제 조건 없는 초기 대화’의 징검돌 또는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김여정 특사의 방북 초청을 포함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 행보를 인정하겠다는 뜻도 읽혀서다.
펜스 부통령은 8일 첫 번째 회동에선 문 대통령과 견해가 갈렸지만 두 번째 회동(10일 저녁)에서 문 대통령이 “대화를 하는 것으로 북한(조선)이 경제적 외교적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고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경우에만 이런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북에 분명히 말하겠다”고 ‘확언’해 남북의 올림픽 이후 대화 교류를 지지했다고 한다. 조건부 남북대화 지지론인데 올림픽 이후 남북관계에서 최대 화두는 역시 정상회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의 합의가 있었기에 김여정 특사의 방북 초청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변 수위가 달라진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 특사가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처음 방북 초청할 당시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11일 저녁 삼지연관현악단의 서울 공연 직전 북측 고위급대표단과 환담하면서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거듭 초청 의사를 전하자 문 대통령은 “만남의 불씨를 키워서 횃불이 될 수 있게 협력하자”고 적극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바로 이 사이에 10일 저녁 펜스 부통령과의 2차 회동과 합의가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미관계 역시 해빙기를 맞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직전인 지난 7일 아베 일본 총리와 회담한 직후 회견에서 “전례 없이 강력하고 공격적인 대북제재를 곧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방한해 문 대통령과 회동한 뒤 대북 대화 입장을 표명했지만 “최대 압박과 관여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명목으로 최강의 대북제재 방침을 밝힐 경우 북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대화에 관한 대화’를 시도조차 못할 수 있다. 대화하자면서 등뒤에 몽둥이를 숨기는 행태에 줄곧 반발해온 북이다.
또 북의 입장을 대변해 온 조선신보는 12일 <민족사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대통령 방북초청>이란 기사에서 “조선은 미국에 대화를 구걸할 필요가 없다”면서 “지금은 미국이 시대착오적인 적대시정책을 버리고 스스로 대화를 요구하도록 하기 위해 조선이 강력한 핵전쟁 억제력에 의해 담보된 평화공세를 펼치며 트럼프 행정부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공세는 여전히 북이 가하고 있다는 정세관이다. 설사 ‘대화에 관한 대화’가 시작된다 해도 북은 적대정책 폐기 요구를 거둘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북이 강경 일변도만으로 흐를 거 같진 않다. 조선신보는 같은 기사에서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의 흐름이 이어지는 기간 북측이 핵시험이나 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은 론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타당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화 기류가 지속될지는 한미 군당국이 오는 4월20일께로 예고한 한미연합군사훈련(키리졸브-독수리연습) 실시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선신보는 “미남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여 북남의 관계개선 노력을 파탄시켜도 조선의 다발적, 련발적 핵무력 강화조치의 재개를 촉구할 뿐이라면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로선 결과적으로 북미대결을 더 심화할 게 뻔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해서 얻을 게 없단 얘기다. 훈련을 강행하면 북은 공언한대로 남북관계 개선 흐름을 깨려는 의도로 판단, 핵·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할 것이다. 결국 ‘대화에 관한 대화’든 ‘전제조건 없는 대화’든 여건조성은 여전히 미국의 몫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