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시민운동 회고와 2018년 전망

2018년을 맞아 진보진영 주요 부문의 2017년 회고와 새해 전망을 연재한다.

촛불항쟁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2017년을 넘어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실현하고, 첨예한 북미 대치 속에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야 하는 2018년이다. 진보진영의 새해 진단과 구상을 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노동, 농민, 빈민, 청년, 여성, 시민, 통일 등 분야에서 활동하는 주요 인사들이 글을 보내주셨다. 게재순서는 무순이다. 바쁜 가운데 글을 보내준 분들께 감사드린다.[편집자]

2017년, 우리는 욕망의 금도를 넘어선 부패한 권력을 몰아냈다. 헌법적 가치 질서를 가볍게 비웃고, 국민 위에 군림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그가 시키는 일이라면 입안의 혀처럼 굴며 국정농단의 공동정범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저열한 세력들에게 강하게 연결된 시민의 힘으로 통쾌한 반격을 가하였다. 침몰해가는 대한민국을 건져 올렸고, 사라져 버린 줄로만 알았던 진실과 정의가 아직 우리 곁에 있음을 모두의 힘으로 확인하였다. ‘이게 나라냐’ 라는 촛불광장 초기의 외침을 ‘이게 나라지’ 라는 안도와 함께 미래를 향한 희망의 기운으로 되살려 내었다.
그것도 무려 1700만 명이나 참여한 23차례의 집회를 사고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하며 말이다. 방식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완성도가 높았다. 스물세 차례에 걸친 촛불집회의 과정을 다시 복기해 보면,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은 현대 사회 국가적 헌법 체계 내에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 질서를 중심에 두고 적절한 시점에, 정확한 대상에게, 명확한 내용으로 엄중한 경고를 전달하였다. 국민의 의사가 광장 촛불을 통해 충분히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내리기를 주저했던 정치권을 움직이게 하였다.
이는 대한민국을 넘어서서 신자유주의 말기의 퇴행을 겪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박근혜 탄핵으로 조기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 또한 촛불 정부임을 자임하며 촛불 시민혁명의 완수를 위해 개혁을 늦추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광장에서의 성취는 국민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야말로 참여민주주의의 승리였다.
 
2017년, 우리 사회는 반칙과 특권을 비롯한 낡은 관행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을 성취하였다. 하지만 힘겹게 지켜낸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또다시 장기적인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광장의 성취가 제도 개혁과 나아가 국가 개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지난 1년은 기존의 체제가 상당한 정도로 변화될 수 있는 결정적 국면이었으며 그 기회가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누구도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정치권과 시민 사회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대중들이 다시금 생활의 영역에서 기존 질서에 타협하게 되어 지금의 이 기회를 놓쳐버린다면 촛불 시민혁명은 다시금 역사 속에서 ‘미완’이라는 수식어를 떼지 못하고 지난겨울의 건설적인 분노는 다음 단계로 비상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1년을 되돌아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광장의 촛불 시민들이 만들어준 결과는 정치권은 물론이고, 시민단체 들에도 다시 못 올 소중한 기회이다. 하지만 긍정적 기대나 막연한 낙관과는 달리 촛불 이후 시민사회가 마주한 현실은 냉정했다. 여전히 광장 촛불의 자장 안에 머물러 있지만, 조건과 환경은 아주 달랐다. 기득권의 힘은 여전히 강했고, 국정농단세력이라는 ‘거악’ 앞의 아름다운 연대가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개혁의 과정에서는 그 방향과 속도 면에서 다양한 이견을 두고 갈등과 대립을 반복하였다. 여러 가지 의제에 대응하는 손길은 여전히 분주했지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커진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것에는 역부족이었다. 과거의 경험과 비교해볼 때 이런 정도 규모의 사회적 성과 이후에도 시민단체의 회원증가가 변변치 않음 또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관련해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가 진행되는 과정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과 시민참여단의 최종적인 결론이 시민운동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은 형평성 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노출되긴 하였지만, 참여와 숙의민주주의의 방식(어찌 되었건 외형적으로는)을 거쳐 도출된 결론은 보수진영의 주장과 같았다. 민주적 의사결정, 숙의, 참여 등등의 단어가 우리의 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운동의 주체들은 적잖이 당황했고, 이후 정부의 의사결정 방식에 유사하게 도입될 가능성이 커짐 앞에 막막했다.

다양한 정치세력의 참여를 보장하는 정치구조 개편, 직접민주주의 제도 강화를 포함하여 시대적 변화에 조응하는 헌법개정, 온갖 악행과 비리의 근원지인 국정원 개혁,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사법기관을 위한 개혁 등등 광장에서 터져 나왔던 요구들을 대하는 시민들은 시선은 새로이 위임된 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변해 있으며 이를 위해 새 정부에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이를 위한 시민운동진영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부에 대한 그것과는 아주 다르다.        

당분간 지난 광장 촛불의 기운은 좀 더 가겠지만 시민운동은 이제 촛불광장의 자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운동진영에서 먼저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달라진 조건과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시민운동에 있어 사회변화와 운동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분석작업은 중요하다. 역동성과 불안정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특성을 고려하며 운동의 성과(혹은 성과로 간주한 결과)를 냉정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둘째, 다양한 방식을 매개로 하여 나름대로 조직된 대중의 등장을 비롯한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된 효율적인 운동을 위해서는 대상과 동력에 대한 새로운 분석 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뜨겁게 모이고 쿨하게 이별하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시민운동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녹여내는 비상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할 수 있다. ‘깃발을 들 것인가? 깃발 든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을 조성할 것인가?’ 에 대한 시민운동 내부의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셋째, 팟캐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대안 미디어가 가지는 의제의 확장성과 시민운동 단체들이 가지는 의제의 지속가능성을 적절하게 결합하여 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는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각 시민운동영역에 적용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넷째, ‘참여’와 ‘협력’이 다름을 올바르게 인식하여야 한다. 시민운동의 성과를 자발적인 시민들의 참여에서 구하던 다소 형식적인 기존의 방식을 넘어서서 참여가 실질적이고 능동적인 협력으로까지 전환되는 방식을 모델화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운동 주체를 발굴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고 성장을 위한 고민을 그들과 함께 시작하는 일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그 문제가 만들어졌을 때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지금의 한국사회는 광장의 분노가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넘어 구체적 다음 단계로 전환하기 위하여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부디 시민운동이 깊은 성찰에 기반을 둔 분석과 고민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다음 단계로 인도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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