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단협 요구안으로 본 학교 비정규직의 근무조건

▲ 학교비정규직노조 서울지부는 9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오는 23일 총파업을 예고하는 집회를 가졌다.

학교비정규직(학비)노동자는 오랜 투쟁 끝에 교육공무직이 되었다. 이제 교육감이 사용자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 당선이 가장 절박했던 학비노동자. 그래서 선거에도 열심히 뛰었다. 많은 진보 교육감이 탄생했고, 학비노조는 그들을 단체교섭장에서 만났다. 2016년 임단협 요구안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그런데 협상은 순조롭지 않았다. 보수 교육감이 있는 곳은 물론이고, 진보 교육감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국 각지에서 협상 타결을 요구하는 시위를 해야했고, 급기야 9일 서울에선 용순옥 지부장이 1천여 조합원들 앞에서 삭발을 했다.

노조가 얼마나 무리한 협상안을 제시했길래 진보교육감들마저 외면하는 걸까? 더욱이 여성 노동자가 삭발까지 하면서 관철하려는 요구안엔 뭔가 곡절이 있을 것 같았다. 학비노조가 전국 공통으로 준비한 임금협상 4대 요구안, 단체협상 8대 요구안 서울 사례를 살펴보기로 했다.

정기 상여금, 1년에 100만원 보장하라

지금까지 얼마였길래 100만원을 요구하는 것일까? 작년까지는 없었다. 100만원을 제시한 기준은 뭘까? 지난해 경남도 교육청이 처음으로 학교 비정규직에게도 상여금을 지불했는데 그게 100만원이다. 정규직은 평균 20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정규직에게 주는 상여금의 명목은 학교운영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럼 15만 학비노동자는 그동안 학교운영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걸까?

처우개선 수당을 전 직종에 지급하라

처후개선 수당은 급식비, 교통수당, 명절휴가보조금, 장기근속수당 등을 말한다. 그럼 학비노동자 가운데 받는 직종이 있고, 못 받는 직종이 있다는 걸까? 학비의 직종은 60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교육청 시행규칙에 따라 지난해까진 19개 직종, 올해부턴 25개 직종에게 수당이 지급된다. 그럼 이렇게 직종을 구분하는 기준는 뭘까? 없다. 스포츠강사, 시간제 돌봄, 영어회화전문강사등 필수 직종도 빠져있다. 그렇다고 수당 액수가 정규직과 같은 것도 아니다. 점심 식대만 예로 들면 정규직은 13만원, 비정규직은 4만원을 받는다. 정규직은 1만원짜리 밥을 먹고, 비정규직은 3천원짜리 밥을 먹는 걸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상적으론 모두 학교식당에서 먹는다. 그렇다면 학비노동자는 밥을 1/3공기만 먹으란 얘긴가?

장기근속수당 상한제 폐지하라

장기근속수당은 정규직에게 적용되는 호봉제의 변형이라고 보면 된다. 호봉은 1년에 3만원씩 꼬박꼬박 올라간다. 10년차 30만원, 20년차 60만원. 장기근속수당은 3년이 지나면 5만원을 받고, 이후부터 1년에 2만원씩 올라간다. 5년차 9만원, 10년차 19만원.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정규직의 호봉제와 임금격차가 발생한다. 그런데 문제는 호봉제엔 없는 연한 상한제가 있다는 것이다. 13년차 장기근속수당이 25만원인데 여기서 증액이 멈춘다. 14년차도 25만원, 20년차도 25만원. 학교비정규직은 13년 동안 근속하면 그 이듬해도 13년, 또 다음해도 13년, 계속 13년째 근무하는 걸로 보이는 걸까?

명절 상여금 70만원 인상하라

지금까진 설 때 20, 추석 때 20, 도합 4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학비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투쟁을 벌일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찾아가 증액을 요청했다. 그래서 국회 교문위는 2016년 70만원, 2017년 100만원을 약속했고, 교육부도 이에 따라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 그럼 올해 설날에 35만원을 받았을까? 지난해와 같이 20만원을 받았다. 임단협이 끝나면, 추석에 15만원을 소급해서 지급한단다. 정규직은 얼마를 받을까? 호봉에 따라 160~350만원을 받는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차례상 크기가 다른가?

희망자만 전보를 보내라

학비 노동자들이 교육공무직이 되면서 인사권이 교장에서 교육감으로 이동했다. 정규직 교사들도 5년에 한번씩 학교를 옮기는데 무엇이 문제가 될까? 징계성 전보를 우려한다. 학교장이 교육청에 전보를 요청할 경우 집에서 가까우면 모를까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려고 멀리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사를 갈 수도 없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 보내고 8시까지 출근. 퇴근하자 곧장 저녁밥 준비. 그런데 출퇴근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리면… 결국 그만두라는 말이다. 최근 과학실습, 교무행정, 전산업무를 통합시키고 있다. 10년 이상 과학실습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산업무가 맡겨지면… 이 또한 그만두라는 말이다. 교장선생님에게 잘 보이면 될까?

8시간 근무를 보장하라

학비노동자는 하루 9시간을 일한다. 점심 1시간을 근무에서 뺀다. 정규직도 마찬가질까? 아니다. 근무로 친다. 그래서 점심 시간을 포함해 8시간 일한다. 학비노동자는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조합원 교육, 방학 중 유급으로 40시간 보장하라

학비 노조의 조합원 교육은 이전 단협에서 분기별 4시간 책정했다. 모두 16시간을 유급으로 학기 중에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학기 중엔 학교에서 출장을 허용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참여할 수가 없다. 주말에 쉬지 못하고 교육을 받거나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해야 한다. 당연히 무급이다. 정규직은 어떨까? 학기 중에 교육을 하고 방학 땐 유급으로 연수도 간다. 비정규직도 유급인 만큼 방학 기간을 이용토록 하는 게 현실적이란 얘기다.   

유급 병가 60일을 보장하라

현행 14일까지 유급 병가를 쓸 수 있다. 정규직은 60일을 보장한다.

인사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자

5~7명으로 구성되는 인사위원회에 현재 학비노조에선 1명이 참여한다. 그래도 노사 동수 구성은 무리한 요구가 아닐까? 문제는 학비노동자가 인사위에 회부되는 경운 100% 징계 건이란 거다. 학비노동자에겐 포상이 없기 때문. 인사위에서 해고를 결정할 수도 있다. 더구나 학교의 평가만으로 판결을 한다. 학교장은 눈 밖에 난 학비노동자를 평가서만으로 해고할 수 있단 얘기다.

대체 인력, 교육청이 확보해 달라

연차, 병가 등을 낼 경우 일을 대신할 사람, 즉 대체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진 개인적으로 알아서 마련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대체시킬 수도 없다. 돌봄 교실과 급식 직종은 특히 더 그렇다. 돌봄은 보육교사자격증이 필요하고, 급식은 보건증이 있어야 한다. 모두 경력이 있어야 대체 가능하다. 그래서 대체 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연월차는 고사하고 병가도 낼 수 없다. 그래서 과로로 쓰러지기도 하고 자녀들 졸업식, 가족 경조사에 빠지기도 한다.

DB형으로 퇴직금을 증산해 달라

퇴직금 지급 방식엔 DB형(퇴직시 평균임금)과 DC형(1년단위 퇴직정산)이 있는데 20년차를 기준으로 할 때 DB형이 850만원 더 받는다. 그럼 애초에 근로계약서를 쓸 때 DB형으로 정하면 되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을 텐데지금까지 묻지도 않고 DC형으로 해왔다. 물론 정규직은 모두 DB형이다.

▲ 학비노조 용순옥 서울지부장은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임단협 투쟁 승리를 위해 삭발을 했다.

9일 서울시교육청 앞 집회에서 교섭 결렬에 항의, 삭박한 학비노조 용순옥 서울지부장을 인터뷰했다. 용 지부장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임단협 투쟁 승리를 위해 오는 23일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 삭발을 결행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결렬된 교섭을 재개하기 위해서다. 임금협상을 해야 하는데 예산담당관이 안 나왔다. 책임지고 답을 줄 사람이 빠진 거다. 참석을 요청했는데 자기가 꼭 대답할 시점이 되면 오겠다고 했다. 실랑이가 벌어졌다. 교육청측이 소란을 피운 노조측 교섭위원을 빼야 교섭에 응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3주째 결렬상태다. 노조 대표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 해당 교섭위원을 빼고 진행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

“그것은 노조 길들이기다. 다친 것도 아니고, 사과도 했다. 무엇보다 그 일이 있기 전 8개월 동안 24차에 걸친 교섭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의도적으로 교섭을 해태하고 있다.”

- 서울은 진보교육감인데도 말이 통하지 않나.

“학비노동자들은 교육감 선거에 본인을 포함해 가족, 친척 모두 매달려서 진보교육감을 뽑았다. (교육감은)이미 학비 (교섭)상황을 보고 받았을 텐데 지금까지 아무런 액션이 없다. 학비노동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우리가 터무니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교사공무원에겐 13만원 지급하는 밥값을 학비노동자에겐 4만원을 준다는게 말이 되나. 경남은 상여금을 100만원 받았는데, 우리는 한푼도 못받았다. 이런 차별을 없애자는 게 교섭 요구안이다.“

- 학비노동자가 받는 차별 중에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인격적인 모독이 가장 힘들다. ‘니가 뭘 할 줄 아는데, 너는 나보다 옷도 잘입네, 비정규직 주제에 차를 끌고다녀’ 이런 말과 눈빛 참기 힘들다. 초등학교에 있다 보니 선생님들이 나를 학생 대하듯 훈계할 때도 있다. 3, 4월에 안 하는 행동이 있는데, 머리 염색이다. 흰머리가 좀 있어야 무시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동안’을 지향하는데 우리는 ‘노안’을 선택한다.

다음으로 불합리한 차별을 강요받을 때다. 비정규직이니까, 교장 교감이 시키니까, 불응하면 관계가 틀어지고 불이익이 생기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교사가 육아휴직 중에 100일 떡을 학교에 보내왔다. 교장 선생님이 저를 보면서 ‘떡 돌려야죠?’ 한다. 별 수 없이 해야한다.”

- 교육공무직본부, 여성노조와 연대는 어떻게 추진하고 있나.

“서울에선 오는 23일 세 노조가 서울학비연대회의라는 이름으로 총파업에 돌입한다. 매주 1회 대표자들이 모인다. 힘을 합쳐도 사실 조직세가 부족하다. 뭉쳐서 싸워야 정권도, 교육청도 꺾을 수 있다.”

- 교육청이 아니라 교육부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거 아닌가.  

“교육부와 교육청이 핑퐁을 하고 있다.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긴다. 결국 피해는 노동자가 입는다. 우리의 사용주가 교육감이니 교육청과 싸우고 있다. 그래서 각 시도별로 힘이 분산돼 버렸다. 힘을 모아 교육부를 상대해야 하는데 마음뿐이지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건 인간이길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 용순옥 지부장은 인터뷰 2시간 뒤에 삭발을 했다. 임단협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 학교비정규직노조 울산지부가 울산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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