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순 화가 개인전에 다녀와서

‘안경잡이 바이올리니스트 내겐 평생 함께 자란 함께 살아온 친구가 있다. 내가 작품전을 할 때마다 연주를 해줬다. 난 그의 연주회 때마다 리플릿 그림을 그렸다.’

내가 곧 주거도 화간디 이 감동을 이 예쁘고 귀한 조성진을 안 그리고는 못배기리라. 흐흐흐 그의 연주를 듣는 저 눈을 좀 봐봐 !‘

‘쿵쿵 둥둥~ 난 베이스 연주 할 줄 모르지만 좋아합니다. 만약 악기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된다면... 그런데 너무 커서 어디에 둬야 하나? 콘트라베이스하면... 

 

케나다사람 홀리 콜이란 가수가 있습니다. 베이스와 둘이서 노랠 부르는데 어찌나 멋있던지

‘마릴린몬로가 나온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잭 레먼이 베이스 연주인인데 여장을 하고서 갱단에게 쫓기(는) 코미디가 생각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데 좋고 싫고 복잡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뻔한 일상을 퍼내듯이 그렸는데 영화 그렘린에 나오는 귀여운 모과이가 괴물로 변해 버린 걸 그렸지요 가위로 눌렸다가 깨어난 기쁨을 그림으로 말하고 싶었다.‘

아무리 생선을 좋아한다고 해도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사랑노랠 부르는 인어를 잡아보겠다는 생각으로 낚시질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인어에게서는 어떤 생선 비린내가 날까? 생각해봤습니다.’

‘과연 그 놈은 나에게 얼마나 잘해줄까? 결혼하면 애기는 몇이나 낳을까? 복권 대박은 터져 나올까? 시골집 마늘밭은 언제쯤 팔릴까? 초콜릿으로 덮힌 우리집을 마련해야겠는데 우리집에 파랑새는 있는 걸까? 일단 배고프니까. 라면 한 개 끓여먹고 다시 생각하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가나인사아트센터 6층, 김충순 화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곳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도도하면서도 화사하게 쳐다보는 그림 속 여인들과 눈이 마주쳤다. 플롯을 불기도 하고 거꾸로 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는 여인도 보였다. 머리카락인 듯 꽃잎인 듯 나뭇잎인 듯 숲의 요정 같은 그녀들에게서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 중 '꽃의 이중창'의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http://www.youtube.com/watch?v=5XWPYmFf-4s)

그 선율을 타고 들어선 전시실에는 맑고 화사한 초록과 파랑, 빨강, 노랑, 하양을 곱게 입은 그림들이 전시돼 있는데 입구에서 만났던 여인들의 눈빛과 기분 좋은 도도함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충순’이라는 이름과, 긍정적이고 한없이 행복해보이기만 한 그림 앞에서 아주 곱게 나이든 중년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 옆에 붙여진 설명서를 읽으면서 성별이 빗나갔음을 단박에 알았다. 수염이 그득히 달린 환갑의 김충순 화가는 남자다.

‘우울한 기분’을 일시에 걷어버리는 화사한 작품과는 달리, 도화지를 대충 잘라 그 위에 볼펜으로 쓴 작품 설명이라는 것이 ‘인어에게 생선 비린내가 날까, 여장을 하고서 갱단에게 쫓기(는) 코미디가 생각납니다, 너무 커서 어디에 둬야 하나? 콘트라베이스하면..., 맛있는 튀김집, 삼겹살집 이런 곳에서 머물다오면 냄새가 배어나오는데 나에게 음악냄새가 날까? 콩나물 냄새라도 ㅋㅋ’ 이런 재미난 문구로 채워져 있다. 글씨도 화가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장난기 많은 사내아이의 글씨 같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 글씨는 쓴 것이 아니라 그린 거라고 한다. 거꾸로 하나씩 장난기 많은 아이의 느낌을 가지고 그린, 또 하나의 작품이다.)

▲ 전시장에 가득 펼쳐지는 음악의 주단. 노란 색 티를 입고 춤을 추는 이가 김충순화가다. 연주단은 다름 아닌 김충순화가의 조카와 지인들이었다.

갤러리라는 공간이 주는 ‘우아한 척 해야 하는’ 부담감을 일시에 풀어주고, 속 감정을 ‘풋’하고 품게 만들면서 편안한 작품 감상을 유도한 작가의 배려가 묻어있는 듯 했다. 전시 오프닝 또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시작’이 아닌, 전시장 한 켠에서 신디사이저와 첼로와 바이올린의 삼중주가 흘러나오는 정도인데 그 연주가 수준급이어서 연주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뭔가 틀에 박힌 형식에 숨이 막혔던 전시와는 다르게 억지로 잠재적 강제성이 없는 전시오프닝은 참 오래간만이다.

그러고 보니 그림 속 인물 대부분이 악기를 들고 있거나 연주하는 음악안인 듯하다. 입구에서 느꼈던 음악의 선율이 어쩌면 어설픈 감성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설치작품인 듯한 광목에 푸른색 실로 바느질해서 만든 여인들의 손에도 악기가 들려있는데, 그 작품 앞에서 나는 선율은 쇼팽의 야상곡처럼 무척 부드러웠다. 아무래도 흰색과 푸른색이 주는 색감 때문이리라.

2015년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우승소식에 감동하며 그린 작품 앞에서는 현란하면서도 아름답게 움직이는 조성진의 손가락 움직임에 맞춰 멋진 피아노연주곡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오페라 마술피리에서의 ‘밤의 여왕 아리아’가 조수미의 목소리로 들리고 타로점을 치는 여인 앞에서는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 선율이 들린다. 

(http://www.youtube.com/watch?v=BNp-lo2SCw4)

(http://www.youtube.com/watch?v=k_pLL278zoM)

“그래, 이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전시장을  둘러보니 피에로 같은 분장을 한 사내 하나가 “이제 알았어? 눈치 챘구나” 하며 빙그레 웃고 있다. 작가의 자화상이다.

안내데스크에 작가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니 가급적 언론보도는 안한다고 했단다. 홍보를 위한 리플릿도 만들지 않았다. 작품을 담은 엽서와 포스터 정도만 비치돼 있었다. 어렵사리 쭈뼛거리며 인터뷰 요청을 했다. 

전주 사람인 그는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과 첼로 교습을 받을 수 있을만큼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사춘기 시절에 가세가 기울면서 경제적인 힘겨움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가 쌓였단다. 고3 때부터 그린 그림 덕에 원광대를 졸업한 후 결혼축의금을 가지고 파리8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왔단다.

파란만장한 유학생활과 귀국 후 작가생활을 하면서 개인전만 30회를 한 그는 "유명작가들의 위작 논란이 많은데 대학 때부터 그림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기억 못하는 작품이 많다”며 자신의 작품이 위작논란에 휩싸인다면 작품을 위작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떤다.

생계유지용으로 그린 그의 작품이 이처럼 밝고 화사하고 음악까지 가미된 그림이 된 것은 어쩌면 고단하고 팍팍한 삶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한 또 하나의 사투였는지도 모른다. 어두운 그림보다는 밝은 그림이 더 잘 팔릴 수 있다는 생각, 하지만 그런 계산 속(?)에서도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고집을 우려내어 진심을 담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리라.

광목천에 그림을 그리고 하나하나 바느질 하고 다시 어울리는 색감으로 마무리 하는 작업이 얼마나 힘겨운 노동인지 그는 알기에, 트릭만 사용한 대충의 작품으로 작품값을 올리는 그런 화가가 아닌, 예술가로서 인생에서 배운 철학과 예술의 가치를 담아내고자 했으리라.

그가 광목천을 이용해 만든 작품이 실은 어머니의 유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의 농 깊숙이 남겨진 광목더미를 발견한 순간, 어머니의 손길과 마음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했을 그 작업이, 그의 진정성을 담보해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작품의 바느질은 아내가 했다고 한다. 그가 바느질을 가르치고 피아니스트인 아내가 남편의 작품에 시어머니의 그것처럼 한 땀씩 정성들인 작품이라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길거리에서 노랠 불러봤습니다. 인도 위에 주차하지 못하도록 가져다 놓은 돌덩이 위에 서서.. 앞에 동전을 받을 만한 모자를 준비 안해서 돈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즉흥으로 한 짓이어서 돈 받는 건 생각도 안했습니다.“

“나는 맨날 노는 일이고 일이 노는 겁니다. 어! 그런데도 몸이 늙다니, 그게 아쉽습니다. 놀아야 할 것이 아직도 많은데...”

전시물에 노란 세월호 리본을 붙이고 옷도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모습에서 마음씀이 느껴지는 김충순 개인전은 오는 14일까지 가나인사아트센타 6층에서 볼 수 있다. 노는 게 일이고 그게 그의 예술의 세계가 된 김충순 화가는 육십갑자를 돌고 다시 새로운 나이를 얻어낸 출발점에서 도를 깨우친 듯 평생 업으로 삼은 미술이라는 장르에서 즐거운 놀이를 하는 듯 보였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