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경제와 서비스산업] (4)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노동
1.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경제
플랫폼이라는 용어는 기차를 타고 내리는 “발판(승강장)”에서 유래되었는데, 컴퓨터가 등장한 이후에는 “기반(윈도우 같은 운영체제)”이라는 의미로 쓰였고, 다시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매개(O2O 중개역할)”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플랫폼을 기업경영 측면에서 보면 소비자, 생산자, 공급자 등 생태계 구성원들이 모이는 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우버(택시), 에어비앤비(숙박), 네이버(검색), 이베이(쇼핑) 같은 플랫폼은 스마트폰을 통해 사이버공간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플랫폼기업은, 상품을 소유하지 않고 중개 역할만 하기 때문에 자산보유나 고용에 대한 부담이 없고, 온라인 접속만으로 거래가 가능하므로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거래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와 같이 플랫폼은 접근성, 편리성, 저렴한 가격(중개상이 없으므로) 등의 장점이 있고, 참가자가 많을수록 네트워크 효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플랫폼기업들이 급속히 오프라인 기업들을 추월해 디지털시대를 주도하고 있다.
반면 플랫폼을 누군가 선점하면 후발주자는 여간해서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 이러한 승자독식 경제에서, 애플(아이폰 앱시장), 구글(세계 온라인 검색시장의 78%), 네이버(국내 검색시장의 80%) 등 대부분의 플랫폼기업들은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시가총액 10위 기업 중 7개(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텐센트, 알리바바)가 플랫폼기업이며, 기업가치 1조원을 넘는 스타트업의 70%가 플랫폼기업이다. 즉 선도기업과 창업기업의 각 70%가 플랫폼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의 최대 플랫폼기업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인류가 16세기에는 신대륙을 발견했으나, 21세기에는 사이버 세계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20억(인터넷 사용자)의 새로운 시장이 생겼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에서 출발해 세계 10대 기업으로 성장한 알리바바는, 판로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의 제품을 세계 시장에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터넷 중개 역할을 목표로 설립했다. 현재 알리바바는 중국 온라인 거래의 80%를 차지해 매일 1천만 개의 소기업이 알리바바 플랫폼을 이용해 거래하며 200만 명이 배송에 참가하고 3천만 개의 상품을 배송한다.
나아가 알리바바는 10년 내에 세계 20억 명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중국에서는 24시간 내에, 전 세계에서는 72시간 내에 배송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중소기업 컨소시엄, 비영리기관 등이 주도하는 플랫폼을 위시로 해, 플랫폼경제는 소유에 기초한 자본주의를 넘어 협력에 기초한 공유경제를 가져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독과점 형성’, ‘조세 회피’, ‘사용주로서의 책임 회피’ 등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2. 세계적인 플랫폼노동의 확장
노동을 잘게 쪼개어 모듈단위로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은,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해 중개되는 노동, 즉 사이버공간에서 노동을 사고 파는 플랫폼노동을 출현시켰다. 이는 ‘긱 경제’, ‘온디맨드 경제’, ‘주문형 경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플랫폼노동은 크게 ‘주문형 앱노동’과 ‘크라우드워크(군중형노동)’로 구분된다.
먼저 ‘주문형 앱노동’은 디지털 플랫폼으로 중개되지만, 오프라인에서 대면접촉을 통해 이루어지는 노동으로 우버 택시, 대리운전, 홈서비스, 음식배달 등이 이에 해당된다.
다음으로 ‘크라우드워크(군중형 노동)’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중개되어 온라인에 불특정 다수의 노동자들이 참여해 이루어지는 노동으로 주로 컴퓨터 작업으로 가능하며 오프라인에서의 대면접촉은 없다. ‘번역’, SNS 글에 대한 ‘좋아요 누르기’, ‘댓글 달기’, ‘디자인’, ‘코딩’ 등 허드렛일에서 전문적인 분야까지 다양한 유형이 있다.
플랫폼노동의 규모는, 하드퍼드셔비즈니스 스쿨의 설문조사(2016년)를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다. 이 설문조사는, 자신의 노동력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개인 고객 또는 기업에 판매해 보상을 받는 개인의 규모를 조사했는데, 아래 ①, ②에 응답한 네 개 나라의 통계를 보면, 생산가능인구의 20% 이상이 플랫폼을 통해 구직활동을 했으며, 10% 이상이 플랫폼노동을 직접 수행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① 유급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한 성인 인구 비율(구직 활동)
② 유급 일자리를 위해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한 성인 인구 비율(플랫폼노동 수행)
한편 세계은행은 2020년에 플랫폼노동자가 1억 12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에서는 O2O서비스 플랫폼이 발달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유형은 아래와 같다.
산업연구원의 설문조사(2017)에서, O2O 서비스를 이용한 동기(복수 응답)는 ‘기존 대비 구매·예약 등 이용의 편리함(83%)’, ‘제품·서비스의 다양함(50%)’, ‘가격의 저렴함(49%)’, ‘새로운 방식에 대한 호기심(39%)’인 것으로 나타났다.
플랫폼노동자로는, 주로 젊은이들이 많이 참여하며 인터넷 등 디지털기기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하므로 교육수준이 평균이상이다.
먼저 특수고용종사자(특고)들이 플랫폼노동으로 전환하고 있다. 물론 플랫폼노동은 특고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특고의 현실은 자영업으로 분류돼 노동기본권이 주어지지 않는데 최근 택배 등 일정하게 노조가 인정되고 있다. 기업들이 이를 회피하기 위해 플랫폼노동을 활용할 가능성도 크다. 한국은 O2O서비스(음식배달 퀵서비스, 소화물 택배, 다양한 홈서비스, 택시호출과 대리기사 등) 외에도 다양한 노동이 플랫폼노동으로 전환되고, 또 새로 생겨나고 있다.
다음으로 컴퓨터·에어컨 등 가전제품 수리기사들이다. 현재 컴퓨터 수리업체 또는 대행업체들은 기사와 고객을 연결시켜주는 중개역할만 하고 있다. 고용관계도 아니고 기사는 자영업자로 계약해 콜에 따른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또한 현재의 하청, 외주, 도급, 파견 등을 플랫폼 대행업체를 통해 처리할 수 있다. 일감을 찾는 노동자와 실제 사업주 사이에서 매칭 대행 역할이 플랫폼이므로, 인력파견업체가 온라인 연결로 작업하면 바로 플랫폼노동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간병인협회 소속 업체들, 가사도우미 파견업체, 애견돌보기 중개업체 등은 언제든지 플랫폼기업으로 바뀔 수 있다. 물론 플랫폼 유형에 따라 작업지시 정도가 다르므로 플랫폼노동의 기준에 대한 첨예한 논란이 있을 것이다.
3. 21세기 프롤레타리아 플랫폼노동
급격히 확장되고 있는 플랫폼경제와 플랫폼노동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협력적 공유사회를 가져오는 등의 장점도 있지만, 기술적 신자유주의를 강화시켜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단점도 있다. 이대로 방치되면 노동유연화와 저임금 그리고 자유로운 해고를 선호하는 기업들의 악용으로, 플랫폼노동은 4차 산업혁명의 프롤레타리아가 될 수도 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양극화에 대한 반성으로 주요 국가들은 ‘포용적 성장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윤주도·부채주도성장이 촛불혁명 이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소위 4차 산업혁명이 출현해 ‘기술혁신과 규제혁파’, ‘정규고용의 해체’ 등을 촉진하고 있어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활이 염려된다. 1980년 신자유주의 이후 불안정노동의 증가로 표준고용형태(정규직, 8시간근무)가 해체되어 왔는데, 플랫폼노동은 이 연장선에 있다.
사실 인건비와 복지 등을 줄이고자 하는 기업의 관심이 플랫폼노동의 동인으로 작용한다. 플랫폼기업들은 업무 위임자와 플랫폼노동자 사이의 중개자로서 기능하면서 오직 인프라만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고용주가 플랫폼의 모습을 띄고 있는 경우, 직접적으로 대면해 업무지시나 평가,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노동법으로 고용관계를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사용자들은 과거 오프라인에서는 ‘직접 지시’로 노동자를 통제했지만, 플랫폼에서는 ‘고객리뷰’, ‘온라인 평가’ 등에 기반해 수수료와 재계약(플랫폼에서 퇴출)을 결정한다. 이를 의식한 플랫폼노동자들은 스스로 사용자의 요구에 맞게 움직인다. 결국 ‘평판시스템’은 대리운전, 호출노동에서 “미소짓는 서비스”를 강제하는 징계 메카니즘으로 작동한다.
많은 플랫폼노동자들은 대부분, 근로시간, 근로장소, 근로내용을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변경하지 못하는 종속노동을 하는 자율성이 없는 가짜 자영업자들이다. 플랫폼기업은 노동자 대신 프리랜서(자영업자)를 고용하므로 사회보험, 퇴직금, 직업훈련, 노동법의 보호권 등의 의무가 사라지며 해고 등이 자유롭다.
플랫폼노동이 이전의 한시적 고용과 결정적인 차이는 ‘속도’다. 이전에는 십분 만에 고용하고, 십분 만에 해고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디지털 플랫폼은 이를 가능케 한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과정을 요하는 ‘법제도’는 여기에 따라오지 못하고 상당기간이 지나야 관련 제도를 정비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가 정비되는 수년 동안 플랫폼노동자들의 고통은 가중된다. 부실한 장비를 가지고 부적절한 근무환경에서 장기간 일하고 있지만, 직업적인 건강악화는 개인의 책임이다. 부적절한 도구나 안전장비, 위험한 근무환경, 훈련 및 감독 부족 등에 의한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일의 불안정성 및 예측 불가능성은 스트레스를 증대시킨다. 퇴근해서도 디지털 기기로 작업을 해야 하고 늘 호출을 대기해야 하므로,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못해 심리사회적 위기에 빠진다. 마감은 분 단위이며 임금은 최저수준이나 무한한 경쟁자가 일감을 빼앗아가므로 쉴 시간이 없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은 쉽게 단결해 권리를 찾을 수 있지만, 인터넷으로 분산되어 노동하는 플랫폼노동자들은 개인으로 존재하므로 단결하기 어렵다. 거기다가 노동조합 가입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다. 현재 이들을 대변해 주는 어떠한 법도, 어떠한 정치단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플랫폼경제는 협력적 공유사회를 실현할 수도 있고, 새로운 노예노동을 초래할 수도 있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결정한다. 한국에서는 정부의 대응도 너무 느리므로(아직 특고 문제도 해결하지 못함) 노동조합,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이 플랫폼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의 폭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만약 진보세력들이 대응하지 못하고, 보수언론과 경제인들이 플랫폼경제를 주도하게 되면, 기술혁신과 이윤을 위해 복지와 노동권에 대한 규제가 사라진 그들만의 세상이 올 것이다. 그 사회에서 수백만 플랫폼노동자들의 위치는 가장 밑바닥이 될 것이다.
플랫폼노동에 대한 대안으로 ‘기본소득’, ‘노동기본권과 사회보장 부여’, ‘정부와 지자체가 플랫폼 소유·운영’,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플랫폼 소유·운영’, ‘플랫폼 노동조합’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프랑스 등 일부 나라에서는 플랫폼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각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다르므로 한국에서 제도화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