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진의 LP로 듣는 한국현대사(3) 바위섬(‘예향의 젊은 선율’/1984)

▲사진 출처 : 가수 김원중씨 홈페이지

1984년 말 광주에서 자란 더벅머리 젊은이가 국내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통기타를 둘러멘 가수 김원중씨는 이듬해인 85년 대중가요 순위프로그램인 ‘가요톱10’에 출연해 ‘바위섬’이란 노래로 당시 기라성 같은 인기가수들을 뒤로 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이 노래는 젊은이들이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불렸다. 바위섬은 국내에선 처음으로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기획, 제작된 옴니버스 음반인 ‘예향의 젊은 선율’(1984)에 수록된 노래다. 가수 김원중씨는 이 음반에 막내 가수로 참여한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로 시작되는 바위섬은 서정적인 가사에 가수 김씨의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더해져 노래를 듣다보면 노을이 비낀 해질녁 바닷가에 앉아 바람을 맞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당연히 그때 청춘들의 모꼬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애창곡이 됐지만 바위섬은 이런 서정적 가사와는 다른 아픈 사연을 담은 노래였다. 그 속에 담긴 것은 80년대 우리사회의 가장 큰 아픔으로 자리 잡은 80년 5월의 광주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준비하던 김씨는 사직공원에 있는 라이브 맥주집 ‘크라운 광장’을 자주 찾다가 조선대 출신인 배창희씨를 알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배씨가 전남 소록도에 갔다가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바위섬을 들고 왔다. 고립된 섬의 모습이 마치 5.18 당시 광주처럼 느껴졌다는 것. 이렇게 바위섬은 대중들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노래 가사 중 ‘바위섬’을 ‘광주’로 바꿔 불러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바위섬(광주)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광주)에 살고 싶어라’

그랬다. 80년 광주는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친구를, 우리의 형제자매를 어처구니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곳이다. 잔인한 5월이지만 그곳 광주는 8, 90년대를 살아온 청년들에게는 절대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진 곳이었다. 그런 광주를 우리의 대중음악은 오랫동안 금기시해왔다.

그러나 우리 가수들은 그 광주를 꾸준히 노래해왔다. 김원중씨가 처음이 아니었다. 198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한양대에 재학 중이던 정오차씨는 ‘바윗돌’이란 노래로 대상을 차지했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바윗돌의 의미를 묻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광주에서 죽은 친구의 묘비”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대학가요제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금지곡이 된 대상곡으로 기록됐다.

그리고 89년 송시현씨는 당시 최고의 가수인 이선희씨에게 ‘한바탕 웃음으로’란 노래를 주어 광주를 노래하게 했다. 최백호씨도 95년 ‘들꽃처럼’이란 노래를 발표하며 광주를 얘기했다. 이 노래들은 모두 당시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은유를 사용했다. 오히려 세상 물정 모르는(?) 대학생인 정오차씨는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바람에 노래와 함께 사라졌다. 최백호씨는 광주를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시기에 좀 더 솔직하게 광주를 노래했다.

그러나 80년대 김원중씨는 은유를 택했다. 그리고 그의 은유는 통일이라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바로 문병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한 ‘직녀에게’였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고 일 년에 단 한 번 칠월칠석에 만나는 아픔을 우리 민족의 분단에 비유했다. ‘직녀에게’는 그가 처음 발매한 음반인 87년 1집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대학가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의 노래는 휴전선을 넘어 북녘의 대학가로 퍼졌다. 북의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직녀에게’가 뽑혔다. 5월의 노래로 세상에 나타난 그는 아직도 광주에서 그날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제는 통일을 노래하는 가수로 우리 곁에 있다.

 

* 최현진 담쟁이기자는 단국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매체인 ‘코리아포커스’ 기자로 일했으며 통일부 부설 통일교육원의 교육위원을 맡기도 한 DMZ 기행 전문해설사다. 저서는 <아하 DMZ>, <한국사의 중심 DMZ>, <DMZ는 살아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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