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조선산업 구조조정, 그것이 알고싶다(2)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한국의 조선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20여개의 중소형 조선소는 말할 것도 없고, 빅3(현대, 대우, 삼성)마저 경영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2만5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고 쫓겨난다. 민플러스가 조선업 위기의 원인과 현황을 진단하고, 인력 구조조정의 실태를 심층 분석했다. [기획]‘조선산업 구조조정, 그것이 알고싶다’ 두 번째 순서로 ‘조선산업, 정말 사양산업인가’를 알아봤다.[편집자]
▲ 사진 출처 : 산업자원부 홈페이지

한국 조선산업은 2000년 이후 일본을 앞질러 세계 1위의 자리에 오른다. 그런데 세계 수위에 오를 당시에도 조선산업이 사양산업이란 주장은 제기됐다. 문제는 그런 사양산업론이 2010년 상선건조가 아니라 해양플랜트 산업에 역량을 집중토록 분위기를 만들어 결국은 대규모 적자사태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형 조선소의 회생을 돕기보단 업체 폐업유도(신아SB)나 인수합병(성동조선해양 및 STX조선) 추진 등의 논거가 되기도 했다. 최근엔 조선산업의 위기가 사양산업론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강력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한국 조선산업이 정말 사양산업이라면 서서히 조선산업에서 철수를 준비하면 된다. 하지만 일시적인 하강국면에 편승한 과장된 주장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사양산업론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심각하게 위협하여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사내하청 및 비정규직을 확산시키고 △핵심 기술에 대한 투자를 가로막고 △숙련된 기술·기능직 인력들을 다른 산업으로 떠나게 하고 △설계기술 등에 대한 아웃소싱을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모두가 사양산업이라고 떠드는 산업에 30년 이상 일해야 할 젊은 노동력이 뛰어들 리 만무하며, 사양산업론을 근거로 임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2008년 이후 조선산업이 하강·침체의 위기국면을 맞고 있음은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산업이 위기라는 진단과 더는 소생할 가망이 없는 사양산업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올바른 처방은 명확한 진단에 기초해야 나올 수 있다. ‘조선산업 사양산업론’의 뿌리를 밝혀내고, 조선산업 위기 극복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중국에 인건비, 일본에 기술력 밀려 사양산업?

사양산업론의 첫 번째 근거는 중국에 비해 인건비 경쟁력이 떨어지고, 일본에 기술력이 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 조선산업에서 한국은 주로 중대형 탱커와 초대형 컨테이너선, LNG선, 그리고 해양플랜트 구조물 제작에서 독보적인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그림1).

중국은 벌크선 제작에서 기술 및 노하우를 축적해 가고 있지만 품질 면에선 떨어진다는 평가다. 그래서 낮은 가격이 매력을 주지 못한다. 중국 정부는 조선산업에 막대한 지원을 쏟고 있지만 숙련인력은 단기간에 확보되지 않는다. 게다가 LNG선이나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를 위해선 10년 경력 이상의 숙련 노동력이 필요한데 현재로선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은 1980년대 말 조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규정하면서 대형도크를 철수하고, 숙련된 기술·기능 인력을 퇴출시켰다. 기존 대형 중공업체들을 구조조정해 중형 조선전문기업으로 재편했다. ‘맞춤형 주문생산’과 ‘표준선’ 전략으로 조선산업은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조선산업 인력도 1970년대 16만여 명에서 2010년 5만여 명으로 급감했다(아래 표 참조).

최근 엔고를 무기로 부활을 노리고 있으나 중소형 선박 제조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현재 세계 조선 수주량의 80%는 한·중·일 3국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 밀리는 게 한국 조선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국내 조선산업의 기술 수준과 인건비 구조는 사양산업의 근거가 아니라 경쟁력의 근거임을 알 수 있다(아래 표 참조).

▲ 2010년 중국의 건조량 급증은 자국 보급용으로 생산한 중소형 벌크선 증가의 결과다.

인건비 자체가 높아서 사양산업?

한국 조선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두 번째 근거는 인건비다. 한국 조선산업이 저임금을 무기로 일본 조선산업을 추월했는데 이제 중국에 밀린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국 대형 조선소 노동자들의 임금은 2000년대 초반에 일본 조선소 노동자들의 임금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2010년대 이후 빅3(현대·삼성·대우)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크지도 않은 상황이다(아래 인건비 표 참조). 또한 일반적으로 한국의 고용경직성을 문제로 지적하는데, 현재의 조선산업은 사내하청을 활용하면서 고용이 전혀 경직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사내하청이 과도한 게 문제다.

그리고 당분간 한국 조선산업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한국 조선산업을 사양산업이라 단정하고, 그런 논리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일까? 사양산업론의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김병조 기조실장은 “하청 구조화를 통한 추가 이윤 확보와 중소형 조선소 통합을 통한 빅3의 독식을 안정화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지금껏 나타난 결과만 본다면 설득력이 없지 않은 주장이다. 또 하나 주의해서 봐야할 게 있다. 사실 조선산업뿐 아니라 한국의 제조업 전반이 곧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제조업 사양산업론이 더 일반적이다. 한국의 제조업은 모두 중국에 밀리게 되니까 금융 및 서비스산업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막연한 제조업 포기 논리가 한국산업 전반에 어떤 해악을 미치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조선산업 사양론은 정부의 산업정책에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의도된 사양산업론이 사양산업화를 실제로 촉진할 가능성마저 나타나고 있다. 사내하청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해 향후 숙련 기능직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또 상세설계 도면을 외주화하고 있는데, 이로 인한 작업일정 차질, 기술직과 기능직의 소통 단절 등으로 선박제작 공정이 퇴보할 수 있다는 현장 노동자들의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일본의 부정적인 후과를 답습해서는 길이 없다. 일본은 1990년 이후 조선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사양산업으로 규정했다. 조선산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고 기술자 및 노동자들의 전직을 유도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조선산업이 역사상 최고의 호황을 맞이했을 때 일본은 설비와 기술·기능인력 부족으로 선박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경성대 허민영 교수가 ‘조선산업 대량 감원 사태와 일자리 대책’ 토론회에서 지적한 아래의 얘기는 인력 구조조정만 밀어붙이는 조선산업 정책에 시사하는 바 크다.

“세계 조선산업의 위기가 7년째 지속되고 있다. 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조선산업의 주기적 속성상 선박교체 및 신규선박 수요 등 불황국면을 지나면 성장국면이 반드시 도래한다. 지금은 한국의 조선산업이 세계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기술력과 노동력을 유지하면서 다가올 조선산업의 성장국면을 준비해야 할 때다.”

적잖게 부풀린 측면이 있겠지만 조선3사는 최근 구조조정과 관련해 정부에 자구계획안을 제출했는데 향후 3년간 현대중공업은 연평균 156억 달러(과거 6년 평균치의 85%), 대우조선해양은 81억 달러(평균치의 66%), 삼성중공업은 55억 달러(50%)를 수주 전망치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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