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재인 정부 신년기자회견에 부쳐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8 무술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든 출입 기자를 지명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롭고, 더 안전하고, 더 행복한 삶”을 약속하면서, 올해 정부의 국정 방향으로 ▲좋은 일자리를 통한 소득주도 성장과 서민 복지 확대 ▲국정 혁신을 통한 적폐청산과 개헌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평화정착을 제시했다.

문재인정부의 이같은 정책은 ‘노무현 2.0 버전’이라 불릴만 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과 노선을 계승하되 실패를 교훈삼아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부가 되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는 노무현정부의 실패로부터 어떤 교훈을 찾았으며, 성공한 정부를 위해 어떤 전략을 펼치려 하는가?

문재인정부는 노무현정부의 실수를 1) 역량의 준비도 없이 섣부른 동북아균형자론 등으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점. 2) 수구세력을 제압하지 않고 낭만적으로 우왕좌왕하다 역공을 자초했다는 점. 3) 신자유주의정책으로 비정규직양산 등 양극화가 심화되고 서민층의 지지를 잃었다는 점에서 찾았다.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정부의 전략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우선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며 길게 보고 힘을 기른다. 2)적폐 수구세력은 제압, 시민사회중도진영은 포섭, 민중진영은 배제한다. 3)소득주도 성장론을 바탕으로 한 경제성공과 서민층의 지지확보다.

아울러 문재인정부는 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집권 플랜을 마련하고 있다.

노무현의 ‘동북아균형자론’과 문재인의 ‘운전대론’

노무현 정부는 2002년 효순이·미선이의 반미촛불로 탄생했다. 그러나 이라크파병, 주한미군전략적 유연성 동의, 용산미군기지 평택이전 비용(약12조 8000억원)의 93%부담, 한미FTA 등 미국의 전략적 요구에 굴복함으로써, 지지세력이자 우군이었던 시민사회와 진보민중진영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신 군사전작권 환수에 주력했고, 미국의 MD참여를 거부하면서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를 고수했다. 이를 ‘친미자주’노선이라고 불렀으며,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사이에 끼여 샌드위치가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주국방’을 바탕으로 동북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자처했다. 이 ‘동북아 균형자론’은 미국과 친미수구세력에게 ‘탈미친중’노선이라며 뭇매를 맞아야 했다.

반면 문재인정부는 자신을 ‘제2의 노무현’으로 보는 미국의 의구심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용적으로 큰 차이 없는 ‘동북아균형자론’ 대신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 주도하겠다는 ‘운전대론’으로 이름 지은 것도 이같은 고뇌의 반영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의 ‘운전대론’은 본질에서 미국에 대한 공포에서 출발했다. 미국이 북핵을 인정할리 없고 전쟁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공포심은 미국에게 대북정책의 운전대를 맡겨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운전대는 지금까지는 대북제재와 위협에만 앞장섰다. “우리가 앞장서서 (북을) 압박할테니 미국은 우리를 믿고 운전대를 맡기라”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실시된 미군의 가공할 전쟁연습에 가담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은 있을 수 없다”는 모순된 입장을 내놓게 된 속사정이 여기에 있다.

사드배치가 MD참여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데도 대통령에 취임하기 무섭게 황급히 사드를 배치한 것에서 문재인정부가 얼마나 미국을 의식했는지 알 수 있다. 자칫 머뭇거리다 정권초기에 미국 안에서 반문 기류가 형성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공포의 학습효과다.

대신 문재인정부는 중국을 지렛대로 미국의 한미일동맹 드라이브에 이른바 ‘3NO정책’으로 저지선을 쳤다. 사드추가배치, MD참여, 한미일동맹은 안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밀어붙이는 한미일동맹에 참여하면 NATO와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편입되게 되고 동북아 신냉전질서의 포로가 된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또한 한미일동맹 참여할 경우 반일감정이 높은 자기의 지지자와 우군이 등을 돌리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고 봐야한다.

한일 위안부합의와 한미일동맹

문제는 한미일동맹 거부에 대해 미국을 설득시킬 명분이 문재인정부에게 없다는 데 있다. 결국 문재인정부는 박근혜가 팔아먹은 한일위안부합의 수용불가 카드를 빼들었다. 아베는 ‘낙장불입’을 외치고 미국은 일본의 손을 들었지만, 반일 정서에 박근혜 적폐라는 사실까지 부각되면서 위안부합의는  한미일 동맹 불참 명분으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문재인정부가 본격화된 트럼프정권의 압력을 버티면서 3NO를 고수하는 것은 쉬운일은 아니다. 한일동맹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남북관계전환, 세계적 범위에서 미국 힘의 약화가 동반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주국방을 명분으로 군사력 증강

노무현정부나 문재인정부가 미국에게 굴종하면서도 받아 내려하는 것은 전작권환수다. 전작권환수가 미국이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한반도에서 전쟁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자주국방의 출발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작권 환수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미국퍼주기’ 밖에 없다는데 있다. 문재인정부가 ‘힘에 의한 평화’를 말하면서 국방예산을 대폭증액하고 팔려는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첨단무기 도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평화공존론’은 ‘2국가체제론’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에 비해 평화우선주의 입장을 더 견지해 왔다. 6.15공동선언이 통일방안 등을 다루는 반면 10.4선언은 평화에 방점이 찍혀있다. 문재인은 노무현을 계승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에 평화만 등장하고 ‘통일‘이라는 단어는 없고, 신년회견에서도 “저는 당장의 통일을 원하지 않습니다”는 발언이 이를 증명해 준다.

노무현정부의 정책이 ‘선평화 후 통일론’에 가까웠다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평화공존론’에 가까워보인다. 북이 핵을 가진 조건 북미사이 타협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바람직한가에 대한 회의적인 논의가 문정부 주변의 논자들 사이에서 번져나가면서 ‘2국가체제론’이 본격 거론되고 있다.

핵을 둘러싼 북미대결이 해결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된 조건에서 남과 북이 하나의 국가로서가 아니라 두 개의 국가연합이 현실적이지 않은가하는 것이다. 물론 이를 영속적인 체제로 말하지는 않지만 통일을 매우 긴 과정 또는 정책밖의 영역에 놓아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발상은 한미동맹이 대북적대동맹이 아닌 ‘글로벌동맹’으로 전환되어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깔고 있으며, 일각에서 거론되는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큰 그림’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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