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학생 릴레이 인터뷰(상)
2017년 겨울, 제주도에서 현장실습 도중 프레스 사고로 차가운 공장바닥에 쓰러진 고 이민호 군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청소년 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한편의 비극이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콜센터의 지정 콜수를 못 채워서, 두 명이 일해야 하는 기계를 혼자서 다루다가.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소년 노동자들은 저마다 수많은 사연을 가지고 죽음의 곡예를 계속하고 있다. 부산 청년민중당은 언제 자신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의 그림자를 두고만 볼 수 없었던, 당사자인 특성화고 학생들을 릴레이 인터뷰했다. |
- 왜 인터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요?
지원(가명) : 학교 앞에서 친구가 유인물을 보고 이 인터뷰를 소개해줬는데, 친구들이 처한 상황이 열 받아서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수(가명) : 제가 (부당대우를)당한 게 있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도 그런 상황이 많은데 보복 당할까 봐 말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부분을 파헤치고, 해결하고 싶어서....
정현(가명) : 제 주변에도 상업계 다녀서 실습 가는 친구들이 많은데, 부당한 일이 많아도 학교에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하거든요. 그런 현실을 보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어떻게 특성화고에 진학하게 되었나요?
지원 : 중학교 때 진학반에 다니며 게임 과학고를 지망했었는데, 거기는 못 붙고 현재 다니는 학교에 추가 합격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현수 : 인문계고에 진학할 성적은 됐지만, 선생님이 '거기서 성적 안 좋은 것보다는 특성화고에서 좋은 성적으로 빨리 취업하는 게 좋다'라고 말씀하셔서. 당시 집안 사정이 안 좋기도 했고....
정현 : 저는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웃음) 빨리 취업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어서 추천대로 들어왔어요.
- 학교에서 현장실습을 가는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요?
현수 : 보통 3학년 1학기를 마치면 학교 게시판에 취업 공고가 붙는데, 원하는 회사가 있는 학생은 지원하고, 진로부에서 검토 후에 적합한 학생들을 골라내서 면접을 보게 하고 직후 회사에 실습을 나가는 형식이에요.
- 현장실습에서 부당대우 사례들이 주변에 많은가요?
현수 : 회사에서 맞고(구타당하고), 욕 들은 친구들도 있고, 저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퇴근을 안 시켜줬었고 월급도 78만 원 떼갔죠. 당시엔 떼이는지도 모르고 회사를 나와서 뒤늦게야 알게 되었지만, 회사는 할 거 다 해줬다고 얘기하고. 대부분이 이런 상황일 거예요. 그리고 이런 적도 있었어요, 딱 한 번 있었는데 주임님이 제가 납땜하고 있었는데 보시더니 그러면 안 된다면서 뒤에서 약간 껴안는 식으로 제 볼에다가 얼굴 갖다 대고.... 그때 진짜 수치감 들었어요.
- 현장실습 이후의 진로는 보통 어떻게 되나요?
현수 : 대부분 학생 때는 실습생 신분으로 있다가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졸업하는 동시에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제일 많아요.
지원 : 회사 다니다 대학 가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현장실습을 나가기 싫어서 안 나가는 경우도 있긴 한데 이런 경우 선생님들이 취업 안 하고 뭐하냐고 비꼬는 경우가 많죠. 실습생을 많이 보낼수록 국고지원금을 많이 받기 때문에 진로부 선생님들이 실습을 강제하는 수준이죠. 거의 '대학 가면 못 버틴다.... 어차피 자퇴한다....' 등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고....
-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이 현장실습에 가면 도움이 되나요?
현수 : 극소수에요. 예로 학교에서는 납땜을 배웠는데 현장에서는 포장하는 등의 단순노동만 해요. 기술이라는 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정현 : 곧 현장실습을 갈 예정인데 얘기 들어보니 온종일 나사못만 박는다고....
지원 : 보통의 회사들은 막말로 손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을 시켜요. 적성에 맞는 계통의 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현수 :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교 1학년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을 시키죠.(웃음)
- 알바 정도의 일인데 굳이 특성화고 학생들을 쓰는 거네요.
현수 : 그렇죠. 값이 싸니까.... 그리고 학교랑 맺은 계약이 있으니 학생들이 도망친들 어쩌지도 못할 걸 아니까, 다시 잡아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고 이민호 군 사건 이후에 정부에서 현장실습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얘기가 나왔었는데 특성화고 학생들 반응이 어땠나요?
현수 : 학교 친구들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저는 (부당대우를)당해봤잖아요. 그것도 있고 선생님들께 어깨너머로 들은 이야기도 있는데.... 폐지는 절대로 될 수가 없어요.
정현 : 반응은 거의 비슷하죠, 폐지는 절대 안 될 것 같고. 이렇게 자기네들한테 좋은 제도인데.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을 바꿔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보내려고 할 거예요.
현수 : (고 이민호 군 사건 터지니까)정부에서 묻어버리려고 립서비스 한 것 같아요.
- 근로계약서 쓸 때 각 조항이 잘 지켜지나요?
현수 : 계약서 같은 경우는 쓸 때도 읽어 볼 틈이 없이 즉각적으로 사인을 하게 만들어요. 서면 교부를 하긴 하는데 현장에선 효력이 전혀 없어요. 처음 실습 갔을 때는 근무를 더 할 수 있겠느냐고 의사를 물어봤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통보도 안 하고 '이거 끝나야 집에 갈 수 있다'고 연장하고, 현장에 있다가 '일 잘하니까 사무실에서 일 좀 하자'면서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업무량을 더 늘렸어요. 그 때 사무실에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는데 A/S 현황 관리, A/S 상담 문의전화 받기, 자재 관리의 총책임자를 했었습니다.
- 총책임자는 며칠 만에 되신 거예요?
현수 : 원래 저를 사무실로 부를 때부터 총책임자로 쓰려고 했었대요. 한 일주일? 정도 일하다가 조금씩 자재 이것저것 외워라.... 식으로 시작하더니 2주 조금 안 돼서부터(총책임자가 되었죠). 입·출고 하는 것도 다 제가 했었어요.
- 혹시 현장실습 가기 전에 회사에 대해 전반적인 사항을 알려주는 시간이 있었나요?
모두 : 아뇨, 없어요....
현수 : 오히려 제가 실습 처음 나갔을 때 회사에 거의 아줌마랑 할머니뻘 되는 선배분들이 있었는데 저한테 그러셨어요, 그때 9월 말쯤에 하시는 말씀이 이 회사는 오래 있을 회사가 아니라고.... 너희가 오기 전에도 많이 사람들이 왔었는데 얼마 못 버티고 나갔다고. 우리도 최저시급 받고 일한다면서....
지원 : 진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는 현장에 가야만 그때 처음으로 아는 거죠.
- 본인이든 주변 경험이든 현장실습 중에 제일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어떤 게 있나요?
현수 : 조금 전에 제가 맞았다(구타당했다)고 한 그 친구는 로프까지 탔었대요. 걔 말로는 건물 외벽에 로프 달아서 내려왔다가 무거운 철근도 들고 있고 계단도 뛰어 올라갔다가.... 저 같은 경우는 손뼈 부러졌는데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종이상자 (더미)위에 올라가서 자재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해서 (올라가다)떨어져서 발목 돌아간 적도 있고....
- 헬멧이나 보호장구도 없이 맨몸으로 종이 상자더미에 올라간 거죠?
현수 : 네, 맨몸으로 타고 올라갔다가 확인해보고 (자재가)없다고 하니까 '그럼 내려온나' 이런 식으로 말만 하고 가시고, 내려오다가 발을 딛고 있던 종이상자가 찢어졌거든요. 그래가지고 떨어졌는데 사장님이랑 (상사들이)와가지고 눈빛에서 '아, 저 XX 또 왜 저러지?' 이런 눈빛으로 보고 막....
- 다른 친구들이 겪은 에피소드는 없을까요?
지원 : 제 친구는 호텔에 실습을 나갔었는데, 손님하고 마찰이 있어서 팔을 다쳤는데 회사에서 아무것도 안 해주고 그냥 다음날에 정상적으로 출근하라고 하고 오히려 그 친구를 혼냈던 것 같아요. 손님이랑 싸운 것도 아니고 손님이 일방적으로 때렸는데도 '그냥 아무 말 말고 맞고 있었으면 되는 거 아니냐, 왜 감히 반항을 해서 그런 식으로 일을 키우냐'면서....
- '나 이런 일 하다가 진짜 죽을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나요?
현수 : 아까 말한 로프 탄 친구랑 저랑 똑같은 말을 했어요, '내가 여기서 계속 일하다간 졸업식 날 영정사진으로 갈 것 같다'고.
* 특성화고 학생 릴레이 인터뷰 (하)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