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예술로 읽다(26)

▲ 로동신문사 청사[사진=위키백과 캡처]

손석희 jtbc 사장이 밝힌 젊은 시절의 목표가 최초의 평양특파원인 것처럼, 많은 기자들이 평양 특파원으로서 북측의 생생한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통일을 견인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현장언론 민플러스에 연재를 시작한 조선신보의 노금순 사진기자는 그래서 유명하다. 재일 조선인으로서 평양을 오가며 북측의 생활상을 꾸준히 전해주고 있으며, 특히 따뜻한 시선으로 평양의 아이들을 담은 그의 사진은 통일의 염원과 민족애로 가득하다. 

2005년 6월 15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 참가한 북측 취재단의 홍일점 기자로 유명세를 탄 노 기자는, 당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의 평양 주재기자로서 북측 기자단에 동행을 했다. 그녀는 2004년 2월 서울에서 열린 제13차 장관급회담에 취재단의 일원으로, 2003년 제주에서 열린 민족평화축전 취재단의 일원으로도 활약했다. 특히 노 기자는 재일조선인 사회의 대표적인 사진작가인 김유와 전 조선신보사 사진부장 문광선의 뒤를 이어 재일 사진작가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남북의 언론이 소통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8월 남측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부터이다. 이후 8.15평양 민족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 중인 남북대표단이 19일 저녁 평양 고려호텔에서 7개 부문으로 단체별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남북 기자단체간 모임에서 남측은 남북공동의 보도준칙 마련과 기자교류, 북측 언론사 사장단의 내한 답방, 양측 통신사인 연합뉴스와 조선중앙통신사 간의 기사교류 등을 제안했다.

그 결과 2002년 연합뉴스는 북측의 조선중앙통신의 위임을 받은 총련계 회사인 조선통신사와 기사와 사진에 대한 전재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당시 연합뉴스의 천양철 상무와 조선통신 양인원 사장이 수신 계약을 체결하고, 그 해 12월10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까지 계약 갱신을 통해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인터넷언론의 경우에는 통일뉴스가 유일하다. 북측의 온라인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제작하고 있는 조선615편집사와 기사 교류와 방문 취재 등의 협력을 이어 오고 있다. 2010년 관계 단절 이후, 2017년 10월3일 통일부의 간접접촉 수리 결과 ‘북한물품 반(출)입신고’를 거쳐 기사를 게재하게 되었다. 

국내 방송의 경우에는 북측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대행 권한을 수탁 받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에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영상을 비롯한 출판·영상물 사용료로 2005년 2억4000만원을 지급한 이래 현재까지 총 22억 원 상당의 저작권료를 지급했다. 이 가운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북한 당국에 전달된 액수는 약 8억 원이며, 나머지 14억6000만원은 5.24대북 제재에 따라 법원에 공탁됐다.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과 jtbc, 채널A, MBN은 연간 2000만원을 사용료로 지불하고 있으며, 뉴스전문채널인 YTN과 연합뉴스가 각각 월 100여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지상파 3사는 지급액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베른협약과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교류·협력 부속합의서 제9조5항인 ‘남북한 쌍방 합의에 따라 상대측의 각종 저작물 권리 보호 조처를 해야 함’에 기인한 것으로서, 2005년 12월 북측의 저작권사무국과 경문협 간의 저작물 사용에 관한 계약에 기초하고 있다.

다만 연합뉴스의 전재료 송금과 관련해서는 비록 총련계 회사이나 일본업체와 계약으로 간주해 예외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통일부 사회문화협력과장의 언론사 인터뷰에 따르면 “대가 지급이 다이렉트로 북한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일본 회사와 계약한 것으로서, 남북교류협력과 관련된 조치 대상은 남북 간 직교역이 됐을 때 해당되는 것이라 제재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언론 간 남북교류는 통일의 과정에서 문화예술의 교류만큼이나 필요한 사안으로서 남측 기자의 평양 특파원 취재와 남측 언론사의 평양 지국 설치, 그리고 궁극적으로 남북 공동의 통신사 설립 및 운영으로 가시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평화 공존의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한편 북측에서 우리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주요 매체들이 있다. 신문은 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 정부 기관지인 민주조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기관지인 청년전위 등 3개의 중앙일간지가 대표적이며, 도당 위원회가 발행하는 지방 일간지가 있다. 그리고 TV방송으로는 '조선중앙TV', '만수대TV', '교육문화TV', '개성TV'가 있다. 라디오방송으로는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있으며 원산, 개성, 남포, 사리원 등 11개소의 지방 방송국이 있다. 1989년 1월부터는 음악을 통한 대남선전용으로 '평양 FM방송'을 시작했다. 남측과 달리 유일한 통신사로는 ‘조선중앙통신사'가 있다. 

▲ 북 주요 신문 제호[사진=뉴시스]


‘로동신문’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로 로동신문사에서 발행한다. 로동신문은 1945년 11월1일 '정로'라는 제호로 창간되어, 1946년 9월1일 현재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로동신문은 하루 평균 150만부 정도가 국내용, 국외용으로 나뉘어 발행된다. 연중무휴 조간 체제로  겉지 4면과 속지 2면, 모두 6면으로 발행한다. 최고책임자로 책임주필이 있고 그 아래에 3~5명의 부주필이 있다. 책임주필은 조선기자동맹 중앙위원장을 겸임한다. 전면 가로쓰기로 조선어 전용이며 사건사고와 광고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민주조선’은 1945년 10월15일 평안남도 인민위원회 직속 기관지인 '평양일보'로 출발하여 1946년 6월4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기관지인 ‘민주조선’으로 창간되었다. 그 후 1948년 9월부터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내각의 기관지로 발행되고 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일간으로 발행된다. 책임주필 아래에 2~3명의 부주필이 있다. 통상 4면으로 제작되고 특별한 날에는 6면으로 증면된다. 

‘청년전위’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로서 1946년 1월17일 '민주청년'이라는 제호로 창간해 1964년 5월 ‘로동청년’으로 개칭하였다가, 1996년 1월 ‘청년전위’로 명칭을 바꾸었다. 기관 명칭이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변경되어 1996년 1월19일 '청년전위'로 이름을 바뀌어 청년전위사가 발간하고 있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은 2016년 다시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4세 이상의 군인, 학생, 근로청년 등이 가입되어 있는 단체이다. 

북한에는 각 지방마다 발행하는 지방신문도 있다. 지방신문의 기사는 정책적인 면에서 당의 지도와 통제를 받고 행정적, 기술적인 면에서는 내각 출판총국의 지시를 받고 있다. 현재는 평양신문, 개성신문, 평북일보, 한남일보, 강원일보 등 12개가 있다. 특수지로는 ‘교원신문’(교육성), ‘조선인민군’(인민무력성), ‘교통신문’(철도성), ‘농업근로자’(농근맹), ‘사회안전’(사회안전성), ‘수산신문’(수산성), ‘체육신문’(체육지도위원회), ‘문학신문’(작가동맹위원회), ‘대학신문’(각 대학) 등이 있다. 영자지로 주간지 ‘평양타임스’가 있다. 지방신문의 대표격인 ‘평양신문’은 평양시 인민위원회가 발행하는 기관지로서 여타 신문과는 달리 연재소설과 만화, 날씨, 영화 및 방송 프로그램 소개 등 다양한 내용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무소속 대변지인 주간지 ‘통일신보’가 우리에게 익숙하다. 1972년 7.4공동성명 뒤에 통일에 이바지하자는 취지에서 1972년 8월6일 창간했다. 평양 소재 조국사에서 제작하고 있는 통일신보는 해외교포를 대상으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2008년 5월22일 평양 합의로 한겨레신문사가 상호 주문 및 방문 취재 등의 방식으로 기사 교류를 합의하면서, 남북 기사 직접 교류의 최초 사례로 기대를 모았으나 현재는 중단된 실정이다. 

‘조선중앙방송’은 북한의 가장 대표적인 방송으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내 방송이다. 1945년 10월 개국한 평양TV방송국을 모체로 출발하여, 1970년 4월 ‘조선중앙TV’로 명칭을 바꾸었다. 1967년 12월 제1중앙방송(대내)과 제2중앙방송(대남 및 대외)으로 분리했다가 1972년 11월 제1중앙방송은 ‘조선중앙방송’으로, 그리고 제2중앙방송은 ‘평양방송’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4년 4월 김일성 주석의 62회 생일을 기해 컬러방송을 시작했다. 평양시 모란봉구역 전승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파 9채널, 단파 6채널로 하루 22시간씩 PAL 방식으로 송출하고 있다. ‘교육문화 TV방송’은 1997년 2월16일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을 기해 신설한 방송으로 평양 일원을 가시청권으로 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교육, 과학과 일반상식, 사회문화와 생활, 체육, 공연, 영화 등이다. 

‘조선중앙통신사’는 북한의 유일한 통신사로 노동당과 정부의 공식 대변기관이다. 1946년 1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직속으로 ‘북조선통신사’를 설립, 1948년 10월 내각의 직속기관으로 조직체계를 바꾸고 현재 명칭으로 개칭했다. 평상시 모란봉 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노동당 및 정부의 입장을 대내외에 선전하는 것이 주요 임무이며, 여타 매체와 동일하게 정치적으로 조직지도부, 일반적으로 선전선동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아시아태평양통신사기구' 회원인 ‘조선중앙통신’은 1949년 9월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첫 기사교류협정을 맺은 뒤 러시아 ‘이타르타스’, 미국 ‘AP’, 일본 ‘교도통신’, 프랑스 ‘AFP’ 등 46개 통신사와 보도 분야 협정을 체결하고 러시아어, 영어, 불어, 서반아어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사는 일간으로 조선중앙통신, 사진통신, 영문통신, 러시아어통신, 프랑스어통신, 서반아어통신 등을 제작하며, ‘조선중앙연감’을 발행하고 있다. 

그래서 북측에서는 "당의 미더운 종군 나팔수답게, 조국의 방방곡곡을 종횡무진하면서 전투적인 취재집필 활동으로 대중을 당의 사상관철전, 당정책옹위전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고 70년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2017년 7월18일에는 남북언론 교류와 관련해서 유의미한 선언이 있었다. 한국기자협회가 기존의 남북통일분과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남북언론인교류특별추진단’을 출범시킨 것. 2009년 단절된 언론인 교류를 재개하겠다는 뜻으로,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 남북 언론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자각한 결과이다. 

북측의 월간지 ‘금수강산’(8월호)이 밝힌 2000년 언론사 사장단 방북 기간에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8월12일 오찬 중에 김정일 위원장이 남측의 언론사 사장에게 “기자 생활을 몇 년간 했는가”라고 묻자, 질문을 받은 사장은 “30년 간”이라고 답을 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80%는 반북 선전을 해왔겠구만”이라며 “손에 든 술잔을 속죄의 술로 마시라”며 호탕하게 웃었다는 일화이다. 역설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겠지만 여기서 남북언론 교류 필요성의 단초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간의 편향된 시각으로 다루어진 보도를 반성하며, 정보 독점으로 생긴 폐해를 극복하고 나아가 상호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민족관계를 회복하는 데 복무하는 언론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우리는 남북 언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을 위한 뉴스를 송출 송고하는 그 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gEwEvRw-NfE

2015년 제20회 러시아 톨리야티 국제청소년 피아노 콩클 박건의 우승

https://www.youtube.com/watch?v=giUC4hhquTg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 문경진 은하수 관현악단장

https://www.youtube.com/watch?v=h5j9mYwOxR8

뉴욕필 평양공연 오프닝 / 로린 마젤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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