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진 AOK 대표 “통일이야말로 위안부 문제 해결할 핵심”

“12.28 한일 졸속합의에 미국이 개입돼 있다는 것을 비로소 피부로 느꼈다. 이건 한일 간의 문제로 풀 게 아니다.”

최근 출간된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에 공동 집필자로 참여한 재미동포 시민운동가 정연진 AOK(Action One Korea) 대표는 최근 민플러스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라는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12.28합의가 미국에서 종용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한일 합의를 졸속으로 맺을 수밖에 없었다”며 ‘12.28합의’의 배경에 미국이 있음을 강조했다.

정 대표는 또 “위안부 문제를 통일 문제와 연관시켜야 된다. 이번 12.28합의도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 졸속처리된 것”이라며 “한미일 동맹 강화는 분단이라는 구조 때문이다. 분단문제를 논의하지 않고는 위안부 문제도 온전하게 파악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독일 홀로코스트’ 합의를 이끌어낸 베리 피셔 변호사와 미국 내 일제 징용 한인 피해자 소송을 추진했던 정 대표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아시아 홀로코스트’로 국제 이슈화할 방법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수요집회 (사진출처 정대협 홈페이지)

- 미국에서 이뤄진 ‘홀로코스트 합의’ 내용과 성과를 설명해 달라.

“홀로코스트 소송은 나치의 전범기업, 유대인들에게 노예노동을 강요한 기업 특히 당시 보험회사들이 대상이었다. 1990년 동구권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나치수용소에 있던 유대인들의 가입 보험문서가 공개되고 당시 기업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려지면서 소송이 진행됐다.

독일 정부는 나치 범죄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배상한다는 입장인데 집단소송이 제기되면 독일 기업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독일 정부와 기업이 반반씩 보상하기로 합의한 거다.

미 국무부도 합의가 이뤄지도록 많은 힘을 썼다. 법정 재판이 아닌 합의를 통해 70억불 배상금이 조성됐고, ‘미래와 책임이 있는 재단’을 만들었다.”

- 미국에서 일제 당시 일본 기업 징용 피해자 소송을 추진했는데.

“1999년 캘리포니아 주 법정에서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소송을 할 수 있다는 징용기업을 상대로 한 한시적인 법안이 통과됐다. 유대인 소송과 별도로 진행됐는데 재미 한인 몇 명이 모여 징용당한 사람들을 모집하는 내용을 신문에 냈더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소송은 징용 기업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해야 하고, 그 기업이 어떤 형태로든 현존해야 하고, 캘리포니아에서 그 기업이 영업을 하거나 사무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조건에 맞는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났다. 징용소집 영장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정재원씨라는 분이었다. 대학생 때 학도병으로 끌려가서 ‘오노다시멘트’라는 공장에서 징용을 살았다.

그래서 ‘홀로코스트 합의’를 이끌어낸 베리 피셔 변호사에게 의뢰해 오노다시멘트, 미쯔비시 등 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오노다시멘트 상대로 1999년 가을부터 시작했고 미쯔히나 미쯔비시 소송은 2000년부터 했다. 거의 동시에 위안부 문제도 일본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소해야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000년 9월 워싱턴 연방법정에 소송을 시작했다.”

▲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비롯해 일본강점기 때 자행된 각종 강제징용문제는 '아시아 홀로코스트'라며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야 한다고 말하는 정연진 원코리아대표 (사진 제공 NGO신문 은동기)

-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게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홀로코스트 문제 해결에는 미국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아시아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입장이 다르다. 아시아의 경우 (2차 대전)전쟁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공산주의 확대를 막는다는 이유로 일본에 면죄부를 줬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인 중에도 일본에서 강제노역한 사람이 있었는데도 미국은 외교정책상 미국 법정에서 (관련 피해배상소송을)할 수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재판부에 천명한다. 그리고 소송을 기각하도록 유도했다.

캘리포니아 징용소송에서 재판부는 본심에 들어가기 전에는 우리쪽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개입하기 때문에 소송을 이기기가 어려웠다.(징용소송은 결국 재판부가 심리를 거부했다.) 오죽하면 판사가 판결문에 ‘(미국 정부는)아시아 피해자와 유대인 피해자에 대해서 입장을 달리 하느냐, 이것은 또 다른 인종차별 아니냐’고 따지기까지 했겠는가. 이 책임은 결국 일본에 면죄부를 준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어려운 게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세력이 아직도 집권하고 있다. 배경에는 미국이 있기 때문인데, 한일 간 역사청산 문제에 미국이 개입돼 있다는 걸 온전히 파악해야 한다.

12.28 한일 졸속합의에도 미국이 개입돼 있다는 것을 비로소 피부로 느꼈다. 이건 한일 간의 문제로 풀 게 아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라는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12.28합의가 미국에서 종용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한일 합의를 졸속으로 맺을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가 한일관계 수립 50년 안에 업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응하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안다.

“미국에서 많은 동포들이 국내 문제에 공감하고 동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동포들의 끊임없는 활동 덕분에 미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나왔고 다른 나라 의회에서도 비슷한 결의안이 통과됐다. 위안부활동 관련단체들은 글렌데일시에 소녀상을 세우고 뉴욕 주 등에서도 기림비운동을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중국계 주도로 소녀상을 세우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에는 캘리포니아에서 교과서에 위안부 문제를 넣어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있었고 꽤 성공적으로 몇 천 명의 서명을 받아 캘리포니아 주 교육부에 냈다.”

▲ 위안부문제 촉구를 위한 해외집회 (사진출처 정대협 홈페이지)

- 동포로서 역사청산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한다고 생각하나.

“미국의 활동가들도 사실 미국에 직접적인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미국의 역할을 우리가 드러내야 하고, 그래서 미국 동포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일제강점기에 징용과 징병, 근로정신대, 위안부 등으로 한반도 인구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엄청난 사람들이 끌려갔다. 나치의 전쟁범죄는 홀로코스트라는 이름으로 역사책에도 기록하고 독일 정부가 폴란드에 갈 때마다 사죄한다. 계속 역사청산을 잘 이루고 있다. 왜 일본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유럽에 홀로코스트가 있었던 것처럼 아시아에도 홀로코스트가 있었다는 것을 모른다. 남한의 재야 사학자는 650만 명이 끌려갔다고 하고 북한 측은 850만이 끌려갔다고 한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에 끌려갔는데, 아시아에도 홀로코스트가 있었다는 것을 역사책에 기록하지 않아 너무 모른다는 거다. 세계사적인 차원에서 유럽에서 홀로코스트 문제가 해결됐듯이 아시아에서도 홀로코스트가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지구촌의 여론을 만들어 가야 한다.”

- 12.28 한일 합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국가 간의 합의는 문서로 남겨야 하는데 문서로 나온 건 없다고 들었다. 국가 간의 완전한 협정이라기보다는 외교부장관 합의이기 때문에 완전한 합의로 볼 수 없다.

독일 홀로코스트 타결은 여론의 힘이 컸다. 합의가 나오려면 여론을 통하는 게 가장 좋다. 미국인들이 아시아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여론을 움직여야 한다. 여론을 조성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 미국이 가볍게 간과해버릴 수 없게 해야 한다. 국내 상황에서는 안 된다고 본다. 아시아연대를 통해서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 과거 청산을 위해서는 통일만이 답이라고 말하는 정연진씨는 각 나라말로 '평화'라고 쓰여진 스카프를 펼치며 통일이 곧 평화라고 강조했다. (사진출처 정대협 홈페이지)

-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공동 집필에 참여했다. 위안부 문제를 옳게 해결하는 방법은.

“위안부 문제를 통일 문제와 연관시켜야 된다. 이번 12.28합의도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 졸속처리된 것이라고 본다. 한미일 동맹 강화는 분단이라는 구조 때문인데 미국은 일본, 한국과 동맹이고,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동맹 관계에 있다. 이런 배치 때문에 분단문제를 논의하지 않고는 위안부 문제도 온전하게 파악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 당시 온전한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외세가 개입되면서 독립정부를 수립하지 못했다. 위안부 문제도 이런 분단 구조 속에서 파악해야 하고 널리 알려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분단이라는 시스템이 내재돼 버렸다. 편 가르기 문화가 내재돼 버렸다. 남북의 등 돌리는 모습이 아니라 해외동포가 오작교가 돼서 남북의 장점들을 서로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통일이야말로 위안부 문제 등 한국사회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다. 통일은 시대정신이다. 통일을 국시로 하는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국내외 동포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합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재외국민 선거였다. 세월호(참사) 문제도 넓게 봤을 때 결국 분단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당면과제를 분단문제로 직시하면서 풀어가는 것이 한국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우리 겨레의 역사에서 70년이라는 분단 역사는 아주 짧은 거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시각을 심어주는 게 통일을 위한 시민운동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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