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이성근 선생 민족통일장 엄수

지난 6일 87세로 타계한 비전향 장기수 이성근 선생을 기리는 ‘통일애국열사 이성근 선생 민족통일장’ 추도식이 7일 저녁 서울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서 200여 추도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통일광장과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가 주관한 추도식에선 호상인사와 공동장례위원장의 대표 분향, 애국의례와 약력보고, 각계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또 추모영상 상영과 추모시 낭송, 범민련 북측본부·해외본부의 추도사와 추모 노래에 이어 유족인사와 합동 헌화 순으로 시종 엄숙하게 거행됐다.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의 추도사. [사진 : 류경완 실행위원장]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의 추도사

통일광장 권낙기 대표는 추도사에서 “19살에 어려운 결단을 했던 선생은 평생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회고하고, “우리 민족끼리 단결해 조국 통일을 앞당겨나가 그 영광을 빠른 시일 안에 선생 앞에 올리겠다”고 추도했다. 

이어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은 “바야흐로 분단과 예속을 강요해 온 민족의 숙적 미국과의 대결을 청산하는 최종 단계에 와 있다”고 현 정세를 진단하고, “이 시대 참다운 애국자를 떠나보내지만 기개를 높이 세워 자주의 정신으로 민족사의 새 시대를 열겠다”며 12년 간 범민련 감사로 복무한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과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도 ‘항상 단정한 모습에 잔잔한 목소리, 작은 몸짓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고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고, “평생 통일에 헌신한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분단 적폐를 청산하고 통일 실현의 불바람을 일으켜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범민련 북측본부와 해외본부에서도 추도사를 보내와 고인의 삶을 추모하고 유족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故 이성근 선생 걸어온 길>

1931년 9월 17일 전북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 325번지에서 부친 이영호 님, 모친 강종성 님의 4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

1950년 7월 학도병 출정 반대로 정읍농업학교 5년 중퇴

1950년 8월 순창군 쌍치면당 선전부에서 로동신문 발췌사업

1950년 9월 28일 순창군 쌍치면 유격대 결성에 참여, 화선 입당

1950년 12월 말 정치군사학원 로령학원 1기 수료(회문산 안시내)

1951년 1월 초 전북인민유격대사령부 보위병단 소속 특공대 문화부 소대장(회문산)

1951년 1월 초 전북 정읍 소재 칠보발전소 전투 참여

1951년 5월 전북인민유격대가 5.1병단으로 개편

1951년 6월 5.1병단 해체 후 남원군인민유격대로 전속, 중대 정치지도원(지리산)

1951년 7월 남원군 산내면 해방작전 참여

1951년 12월 31일 12월 대공세로 전북 장수 장안산에서 체포

1952년 전주지법에서 1심 15년 선고

1967년 1월 대전교도소에서 비전향 만기 출소, 한덕순 님과 결혼, 슬하에 1남 1녀를 둠

1968년 (~88년) 전북 김제 소재 후생의원에서 임상병리사로 생활, 서울에서 건축현장, 고시원, 독서실 운영 등으로 생활

1996년 남북공동의학연구를 위해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기증

2000년 통일광장 가입

2002년 2월 19일 (~현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고문

(~2014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사업감사

2003년 12월 이라크 파병저지 단식농성 참가

2004년 12월 국가보안법 철폐 단식농성 참가

2005년 1월 1일 (~현재) 온라인 블로그 활동(민중의 소리, 오마이뉴스)

2012년 10월 9일 서울경찰청 보안3과 압수수색

2017년 11월 6일 경기도 파주보람요양병원에서 향년 87세로 영면

(자료제공 – 범민련남측본부)

☞ 이성근 선생 관련 기사 ‘민족 자주의 한 길로’

▲노래극단 <희망새>의 ‘심장에 남는 사람’ 추모 공연
▲통일광장 임방규 전 대표의 호상 인사
▲유족 인사
▲합동 헌화
▲8일 아침 영결식에서 영결사를 하는 통일광장 권낙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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