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정훈의 여명의 눈동자(3)

‘여명의 눈동자’ 긴 밤을 뚫고 나오는 희미한 빛. 아직은 어둠이 지배할 때 멀리 한줄기 밝음이 캄캄한 어두움을 서서히 밀어내는 황홀경. 전환의 시대 그 웅혼한 빛을 추적하는 까만 눈동자. 한국사회의 ‘전환기 여명’을 추적한다.[필자서문]

다음은 최근 북한(조선) 관련 언론보도다. ‘지금 곳곳에서 대북제재 효과’(연합뉴스), ‘북한 종업원 집단탈북 자발적… 차차 드러나는 한국정부 독자 제재효과’(동아일보), ‘유엔(UN) 대북제재로 북한의 수출 규모가 절반 수준으로 축소되는 등 북한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SBS) 보도들의 기본 내용은 대북제재로 북이 현재 심각한 타격을 입어, 이대로 간다면 제재효과로 북한 경제는 물론, 정권이 곧 쓰러질 것 같은 조짐마저 보인다는 분석이다.

실제 그런가? UN 대북제재(2077호)와 미국 대북제재(R.H.757) 등에 관한 북의 최근 반응을 보자. 북 외무성 대변인은 최근 공식 발효된 미국의 대북제재 법안에 대해 “가소로운 짓”이라고 비난했다. “제재로 우리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자강력으로 국제제재는 물거품이 된다.” 김완수 6.15북측위원회 위원장의 얘기다.

사실 제재로 북이 붕괴할 것 같다는 말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언론보도를 통해 계속 나왔다. 보도와 분석이 정확하다면 북 정권은 이미 몇 번은 붕괴되어야 했지만 그런 분석은 맞지 않았다. 현실은 거꾸로 북한(조선)이 극한 제재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경제지표는 향상되고 있다. 사실은 무엇이며, 왜 이런 분석과 보도가 반복되는 것일까?

북은 제재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북이 외부 제재를 극복하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히 근본적이고 전략적이었다. 특징을 요약하면, 제재에 대응하는 방식이 ‘일시적, 수동적’이 아니라 ‘장기적이며 국가 전략적’이란 점이다. 또 방어적이 아니라 공격적이고, 경제 일면적이 아니라 전방위적이다.

북은 ‘제재’를 단순한 일시적 경제제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의 북 정권 붕괴 전략과 연동된 대북 적대정책의 일환으로 해석한다. 한국전쟁이 종결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는 이상, 이를 고정된 상수로 보고 국가 경제정책을 구상했다. 제재에 대한 대응이 일시적으로 참고 견디는 미봉책이 아니라 북의 국가 장기발전전략과 깊게 결부시켜 공격적으로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왔다. 따라서 북한(조선)노동당이 어려운 조건에서 구상했던 목표와 그 실현을 위한 공세적 국가전략의 핵심 개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면 대북제재를 극복하는 방식을 동전의 뒷면처럼 바로 볼 수 있다.

‘새 세기 산업혁명’으로 제재를 무너뜨리다

“일심단결과 불패의 군력에 ‘새 세기 산업혁명’을 더하면 그것은 곧 사회주의 강성국가.”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012년 4월 15일 첫 대중연설에서 밝힌 내용이다. 선군정치나 북 핵문제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귀가 따갑도록 들어 익숙하지만, 북이 구상하는 ‘새 세기 산업혁명’이란 말은 생소할 것이다. ‘새 세기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북은 우리 시대를 ‘새 세기 산업혁명’ 시대라고 보고 있다는 말인데, 이 한마디 말에 북한(조선)노동당의 방대하고 대담한 미래 국가전략과 구상이 녹아있다.

새로운 산업혁명에 관한 담론은, 현 인류의 산업 기술과 생산력이 어디쯤 와있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관한 문제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제기되는 거대 담론이다. 어찌 보면 막연하고 추상적인 거대 담론을 지금 심각하게 논하는 이유가 있다. 지금 인류와 세계가 미지의 새로운 산업혁명 전야에 서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1차 산업혁명은 농업이었다. 인류 문명을 수렵에서 정착으로 바꿨다. 다음으로 인류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18세기 후반 시작된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의 틀과 방향이 오늘날 현대 사회구조와 생산 및 소비방식을 만들었다. 앨빈 토플러, 제러미 러프킨 등 미래학자들은 다가오는 새로운 산업사회를 제3의 물결, 3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렀으나, 내용이 부분적이고 충분치 못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새 시대를 정보통신과 로봇, 인공지능이 결합된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지식기반 경제시대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그만 섬나라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성장한 것은 산업혁명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300여년 만에 과학기술과 지식기반 경제에 기초한 새로운 산업혁명이 인류 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누가 어떻게 주도하느냐에 따라 21세기의 경제강국 지도가 바뀌고 국가흥망이 결정되는 시기가 임박했다는 말이다.

새로운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과학기술혁명이다. 인류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 전야에 와있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비상히 빨라져 바이오기술로 인간복제가 가능하고 인공지능으로 무인기계화 시대가 열리며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던 로봇이 인간과 결합되는 사이보그가 가까운 미래에 실현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주도하는 분야가 인터넷 통신기술(IT), 생명공학(BT), 나노테크놀로지(NT), 소재공학(MT), 우주공학, 핵과 에너지 공학, 융합기계공학 등이다.

용어가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주요 선진국, 특히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미래 국가전략과 연계해 각기 특별기구를 두고, 경쟁적으로 심혈을 기울이며 투자하여 세계의 차세대 주도권을 쥐려하고 있다. 국가간 경쟁뿐 아니라 그를 성공시키는 체제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에 따라 미래 세계의 체제경쟁도 판가름 나게 되어있다. 2012년 4.15연설과 지난달 있은 7차 당대회 결정서에는 북한(조선)도 새로운 산업혁명시대를 여러 강대국과 어께를 겨루며 선도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새 세기 산업혁명, 우주공학과 핵공학으로 시작

북에서 ‘새 세기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최근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 지식기반 경제에 기초한 과학기술혁명 정책은 오래 전부터 구상, 진행되어 왔다. 남한도 2000년대 초반 IT분야에서 지식기반 경제를 제창했으나 주로 IT분야에 한정되어 일시적 유행으로 끝났다. 북은 90년대 김정일 위원장 시절부터 지식기반경제와 다가오는 새로운 산업혁명 대비전략을 국가생존과 부흥전략으로 삼아 공격적으로 추진하였다. 그것을 7차 당대회를 통해 다시 정리한 것이다.

북은 “새 세기 산업혁명은 본질에 있어서 과학기술혁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럼 북은 과학기술혁명을 어떤 분야에서 어떤 방식으로 본격 시작했을까? 그것은 핵공학과 우주공학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안받침할 수 있는 CNC 공작기계 제작 분야였다. 왜 핵과 우주공학부터 시작한 것일까? 90년대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 이후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 북은 여전히 미국과 전쟁상태, 적대관계에 있어서였다. 미국과 교전 중인 상태에서 만약 북이 이라크처럼 된다면 산업혁명이고 경제발전이고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인터넷, 인공위성 등은 모두 미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다 산업용으로 전환한 것이다. 북은 과학기술혁명을 국가방어전략과 긴밀히 연관시켜 진행하였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도 미래 우주산업의 시장가치를 알고 크게 투자하며 추진하였지만, 국가 존망의 위기라는 북한(조선) 과학자들의 긴장된 처지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북의 90년대는 단순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고난의 행군’을 넘어 국가의 미래가 걸린 새로운 산업혁명의 기초를 닦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첨단 핵과 인공위성, 전략 미사일을 잇따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겉보기에는 국방분야의 성과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추진한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의 첫 가시적 성과물’이기도 하다.

북이 동구 사회주의 붕괴 흐름과 극심한 자연재해에 겹친 제재 속에서도 과학기술혁명과 새 세기 산업혁명의 기조를 놓지 않은 것은 북한(조선)노동당 스스로 평하듯 기적이었다. 더구나 지식기반 경제와 과학기술혁명을 선도적 국방공업과 연관시켜 개발한 것은 대단한 지략이었다.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장기발전 전망을 동시에 풀 열쇠를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마련해 둔 것이다.

지식기반 경제 전변과 중·러 대북제재의 이중성

현재 북에는 세계적 최첨단 기술로 구성된 선진산업과 과거의 낙후한 재래산업이 공존하고 있다. 국방공업 중심으로 여러 분야에서 핵심 첨단 과학기술을 확보하였지만, 이를 민간산업 분야로 돌리는 데 제약이 따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7차 당대회에서 새로 채택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이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인 셈이다. 핵무기를 보유해 과거 과다 지출로 문제가 되었던 국방비를 민간부문으로 본격적으로 돌리겠다는 것이고, 이미 확보된 다양한 분야의 최첨단 기술력으로 낙후분야를 속도감 있게 정리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지하자원 개발과 산업 도로, 철도, 항만 인프라 구축에 큰 자금이 들어가는데 이것을 중국과 러시아 자본과 합작하여 현재 추진 중이다. 이런 사업들은 6.15와 10.4선언이 유지되었다면 남북 합작사업으로 진행될 아쉬운 것들이다.

7차 당대회에서 결정된 과학기술 부문에 관한 방대한 사항은 이런 전략과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북은 실제 전 사회를 새 세기 산업혁명에 조응하는 교육체계로 정비하고 있는 중이다. 북에 무진장한 석유와 희토류 등 지하지원이 있다는 것은 이제 소문이 아니라 정설이다. 그런데도 북은 자원개발에 의존하지 않고 과학기술과 최첨단 두뇌전에 기반한 지식기반 경제를 우선시하며 국가전략을 짜고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 결과 러시아나 중국이 탐내는 것은 이제 북의 지하자원만이 아니다. 이미 자력으로 상당 수준과 큰 성장 잠재력을 갖춘 북한(조선)이 이후 중·러의 산업 파트너로 절실히 필요해진 것이다.

러시아는 푸틴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동방정책과 맞물려 북-러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고, 중국은 동북3성 개발전략과 맞물려 북·중·러는 서로에게 절실한 경제파트너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 말대로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 대북제재는 물거품이다. 그런데 중국조차도 시간이 갈수록 제재가 아니라 지하자원과 미래 시장, 그리고 동북 개발을 위한 북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핵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재 강화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제재를 약화시키고 있다.

제재로 북 핵 제거한다는 환상 버려야

북이 제재에 대응하는 방식은 이처럼 공격적이고 미래지향적인데 반해 미국이 UN을 앞세우고 한국, 일본과 합동해 추진하는 제재는 여전히 낡았다. 90년대 북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나 통할 방식을 아직도 쓰고 있다.

“나를 회의론자라고 불러도 좋아요. 중국이 제재를 충실히 이행한다거나, 우리가 원하는 정도의 더욱 더 강력한 제재에 합의할 일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이 말은 미국의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자누지가 지난 3월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 한 말이다.

북한(조선) 붕괴의 허망한 공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현실을 인정한 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미국의 실패한 정책을 따라가는 한국 정부도 이제라도 대북정책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 개성공단 폐쇄가 제재가 아니라 자해 행위인 이유다. 손해 보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며 남한이다. 비현실적 제재와 북한(조선)이 제재를 극복하는 방식에 대해 한국의 진보든 보수든, 이제는 이념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파악해야한다.

* 이정훈 위원은 1985년 고려대 광주학살원흉 처단투쟁위원회 위원장, 삼민투 위원장을 지냈다.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으로 3년 옥고를 치른 뒤 오산과 수원에서 노동자회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런던대 아시아태평양 지역학 석사과정,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통합진보당 교육위원, 경실련 하이텔정보교육원 이사, 사람과 사상 소리클럽 출판사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민플러스 편집기획위원으로 국제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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