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를 읽고

잘못된 만남

이 책은 저자가 겪은 끔찍한 만남으로 시작한다.

“○○○에서는 탈북자들을 완전히 죄인 취급한다. 탈북자들은 한국 실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라 변호사나 다른 사람들과 일체 만날 수 없다. 그래서 독방에서의 고된 조사와 두려움으로 하루빨리 ○○○을 나가고 싶어 탈북자들을 간첩이라는 허위자백도 한다. 조사 중에 죽은 탈북자가 있다고 들었다. 그가 무엇 때문에 어떻게 죽었는지는 ○○○ 외에 그 누구도 모른다고 한다. ○○○은 그 탈북자가 간첩이라고 자백한 후 마음속 괴로움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다.”(27p)

책에 등장하는 ○○○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국내의 정부기관이다. 원래라면 우리나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산업스파이를 막고, 간첩을 찾아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을지 모르는 테러나 위협을 사전에 막아내는 것도 이들이 할 역할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기관은 영 엉뚱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2012년 이 기관은 조직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정치에 개입했다. 단순히 정치에 개입한 것뿐만이 아니라 차기 대통령 선거의 여론을 조작한 증거를 은폐하고 국민을 속였다. 그 당시 이 조직의 수장이었던 사람은 유죄가 인정되어 법정에서 구속되었다. 이 조직은 또한 당시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공격하기 위해 저급한 합성사진을 직접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힘들게 공무원 공채를 통과한 사람들이었을 터인데,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으며 연예인의 나체 사진이나 합성하는 업무를 맡았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김련희씨의 책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의 첫 머리에 등장한 이 조직은, 다들 짐작하시듯 바로 국정원. 다시 말해 한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다.

이 책 전반부에는 국정원이 저지른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태가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폭행과 협박, 감금으로 어쩔 수 없이 허위자백을 하게 되는 탈북자들의 사연이 등장하고, 사건을 외부에 전한 기자는 사실상의 고문수사였다고 밝힌다. 한국 정부는 흔히 탈북자들이 독재와 억압을 피해 한국으로 귀순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 온 탈북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감금과 폭행 그리고 간첩으로 조작되는 운명이었다.

저자 김련희씨는 순간의 잘못된 판단, 그리고 실수로 대한민국에 오게 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이다. 보통 바다에서 표류로 인해 남으로 오게 되는 북의 어부를 바로 송환해 보내듯이, 김련희씨도 바로 송환을 했더라면 7년간 싸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7년간 가족과 생이별하고 국정원, 경찰, 보안수사대, 보호관찰소, 교도소에서 폭행과 협박, 그리고 인권침해를 당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그토록 자랑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실은 이런 모습이었던 것일까? 자유와 인권을 수호한다던 대한민국의 국가기관의 본 모습이 실은 한 개인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괴물의 모습이었던 것일까?

‘반전의 거울’인가? ‘진실의 창’인가? 

책의 후반부에는 김련희씨가 살았던 북측의 생활들이 묘사되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의 성장과정과 학교에 다니던 이야기, 가족들과의 아파트 생활이 펼쳐진다.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북한 주민으로서의 속사정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우리가 갈 수 없는 금단의 그 땅에도 사람이 살고 서로 사랑하고 북적대고 살아가고 있었다.

“딸은 얼마나 보채고 울보였는지 보육원선생님들이 우리 딸의 별명을 ‘꽃다발’이라고 지어주었다. 하루 종일 꽃다발처럼 안고 있어야 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하다가 탁아소에 가서 딸이 젖을 먹는 모습을 바라볼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208p)

“주말마다 우리 3남매가 부모님 집에 다 모이면 10명이 북적거려 참말로 사람 사는 집 같다는 느낌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대동강맥주는 아버지의 담당이여서 10리터 받아놓고 기다리고 계시고 어머니가 명태와 낙지를 준비해 놓으신다. 우리 형제들은 몸만 가는 것도 보모님에겐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그 즐거움이 이제는 추억으로 자리 잡혀 있다.”(231p)

북측 땅에도 친구들과의 수다가 존재한다. 남녀의 사랑이 존재하고, 딸을 키우는 기쁨과 자식에게 젓을 먹이는 어머니의 사랑이 존재한다. 10명의 대가족이 주말마다 모여 맥주 한 잔 기울이는 정(情)도 존재하고, 가족 간의 사랑도 존재한다. 지구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는 따뜻한 풍경이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은 오늘도 북한을 황폐화된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실상을 거꾸로 보여주는 ‘반전의 거울’인가? 아니면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진실의 창’일까?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저히 알고 싶어도 실상을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북한의 모든 정보는 국가기관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에 입국하거나 여행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도 인터넷에 정보를 공개하고 유튜브에 자신들의 영상을 올리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볼 수 없다. 세계 각지의 외국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여행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근접할 수도 없다.

이 책이 반전거울인지 아니면 진실의 창인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책의 중간 중간에 실린 김련희씨와 대학생들의 대담은 충분히 흥미롭다. ‘북한에 PC방이 있는지’, ‘북한에 노래방이 있는지’, ‘북한에 중2병(病)이 있는지’, ‘북한 여학생도 교복 치맛단을 줄여 입는지’, ‘북한 학생들도 염색을 하는지’와 같은 다소 일상적이고 가벼운 질문부터 ‘북한에도 모텔이 있는지’, ‘젊은이들은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 ‘북한에는 직업의 자유가 있는지’, ‘북한에도 시집살이가 있는지’와 같은 질문들도 자유롭게 주고받는다.

그뿐 아니라 ‘북한에서는 가혹하게 일만 시키지는 않는지’, ‘장사가 불법은 아닌지’, ‘북한의 사회주의가 세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사상의 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지’, ‘왜 탈북자가 줄어들지 않는지’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도 대놓고 물어본다. 아마 호기심과 탐구심이 넘치는 대학생이 아니었다면 차마 묻지 못했을 질문들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내심 궁금했던 것들에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상상한다

김련희씨는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한국 땅을 밟게 된 이후 단 한 번도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꿈을 포기한 적이 없다. 다시 북에 돌아가기 위해 그는 위조여권이나 밀항도 고민하고, 스스로 간첩으로 자수하여 추방되는 상상을 실행에 옮기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가족들과 그토록 만나고 싶지만 만나지 못하게 가로막은 것은 분단이라는 우리의 원죄였다.

이제 분단이 된 지도 어언 7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1세대 이산가족들은 이미 많이 돌아가시고, 이제는 김련희씨와 같은 신종 이산가족마저 만들어지고 있다.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 가족들과 생이별시키고, 서로 만나지도 못하게 통하지도 못하게 떨어뜨려 두는 것이 과연 우리가 계속할 짓거리인가?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 노무현은 분단선을 넘어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서고 보니까 심경이 착잡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입니다. 이 장벽 때문에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고 발전이 더디 되어 왔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수고를 해서 이 선을 넘어가고 또 넘어왔습니다.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나는 상상해 본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이 분단의 선, 금단의 선을 넘는 장면을 말이다.

그렇다. 더 많은 사람이 넘나들고, 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겨레가 분단선을 베고 누워버리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구호를 들고 판문점을 자유로이 넘나들면, 그때 금단의 선은 지워지고 장벽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수백,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분단선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분단을 무력화, 무효화시키게 되는 그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남쪽에서 간 사람과 북쪽에서 온 사람이 판문점에서 춤판과 잔치판을 벌이게 되는 그런 날이 부디 우리 세대에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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