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기로에 선 제조업(3)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한국경제가 저성장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일본보다 더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해법은 무엇일까? 일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한국 제조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찾아보려 김성혁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의 ‘기로에 선 제조업’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사진 산업자원부]

50년 동안 한국경제 성장의 원천은 선진국을 모방하는 '캐치 업' 전략이었다. 한국은 선진국이 시장을 개척하면 근면한 인적자원과 정부 정책을 동원해서 빠르게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싼 가격에 내놓았다. '캐치 업' 전략은 최종재 생산에 특화된 가공조립형 산업화에 적합하여, 한국은 핵심부품과 설비를 해외에서 도입하고 수입된 기술은 엔지니어들에 의해 체현되어 고유모델 개발에 적용하였다. 이런 조건에서 대기업들은 장시간 노동과 비정규직 투입, 대립적 노사관계로 작업장 숙련을 포기하고, 자동화 설비와 로봇을 중심으로 한 유연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어 저렴한 제품을 생산했고, 이는 고환율 정책을 통해 높은 수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오늘날 삼성, 현대기아차, LG 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여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지만, 물적기반은 여전히 허약하다. 핵심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지적소유권 무역수지'는 아래 <표>와 같이 만년 적자인데 여기서 대기업의 비중이 75%이다. 이는 한국 제조업 수익성의 기반이 원천 기술과 작업자의 숙련이 아니라, 수직계열화된 납품구조와 비정규직 사용에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판매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이지만, 수익 점유율로 보면 애플이 91%를 차지하며 삼성전자는 14%에 불과하다(마이너스를 기록한 업체들도 존재한다). 세계 최대시장 중국에서 1위였던 삼성전자는 2015년 토종업체인 샤오미, 화웨이 등에 밀리어 6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나 수익점유율은 14% 불과

반도체 수출 세계 1위라는 신화도 내용은 취약하다. 반도체에는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가 있는데, 한국이 1위인 부분은 메모리반도체이다. 메모리반도체는 램, 롬 등으로 정보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반면, 시스템반도체는 컴퓨터 CPU, 스마트폰 AP 등으로 연산이나 논리와 같은 두뇌기능인 정보처리에 사용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시스템반도체가 고부가가치 최첨단 영역이며 시장의 70%를 차지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한 자리 수에 불과하다. 한국이 5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는 메모리반도체는 표준 대량생산이 가능하여 공정효율에 따른 제품의 원가 경쟁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외주와 비정규직, 3조3교대, 산업체 근무 등 수량적 유연성과 대규모 투자를 통한 비용절감으로 경쟁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반도체 원료와 고가의 제조장비, 핵심기술은 일본이나 미국에서 수입하므로 반도체 국산화율이 37%에 불과하다. 거기에다 최근 중국이 추격을 시작하였다. 작년 중국은 ‘전략적 7대 신성장 산업’으로 반도체를 선정하고 2020년까지 연간 166조원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우한에 낸드플래시 공장에 27조원이 투자되고 칭화유니그룹도 D램 공장을 설립한다.

현대자동차의 경쟁력도 숙련절약형 조립가공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최근 5년간 영업이익률이 평균 9% 수준인데 글로벌 생산 1위인 폴크스바겐보다 3%p정도 높다. 두 기업의 수익률 차이는 재료비 차이에서 기인한다. 매출액 대비 재료비가 현대차에서 폴크스바겐보다 10%정도 낮은데 이는 부품사 납품단가를 후려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삼성, LG, 현대기아차와 같은 한국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선도기업들과 같은 위치에서 경쟁하고 있으므로 많은 부분에서 더 이상 모방할 대상이 없다. 이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시장 선도자' 역할을 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시장 선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성, 창의성을 장려하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 폐쇄적인 위계질서와 수직계열화된 납품구조에서는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산업에서 창의성은,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실현할 최초의 설계도를 그려내는 개념설계 역량이다. 현재 우리 산업의 수익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은 표준화된 기술 영역에서는 중국 등 신흥국이 거의 추격하였고, 고부가가치 개념설계 영역에서는 선진기업과 격차를 좁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념설계는 제품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후속 생산 단계를 포함한 가치사슬 전반에 위치한 기업들의 전략에 영향을 미친다.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버전을 바꿀 때마다 전 세계 전자기업의 전략이 바뀌는 것을 보면 그 파급효과를 알 수 있다. 또 최근 조선산업이 대규모 적자로 위기를 맞은 것은 경기침체와 부실경영이 주 원인이지만, 기술적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면 결정적으로 해양플랜트 설계 능력의 부재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이정동 서울대학교 공과대 교수에 의하면, 이러한 개념설계 역량은 창조적 축적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 개념설계 역량은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시행착오를 축적해야 얻을 수 있다. 창의적 개념설계에 필요한 지식은 교과서나 논문, 특허 등에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지식의 영역으로, 사람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캐치 업 전략의 한계는, 한국 학생들이 학원에서 기출 문제를 모두 풀어주는 암기식 방식에 익숙하여 당면한 시험은 잘 볼 수 있지만, 자기 머리로 새로운 문제를 제출할 능력이 없고 처음 부딪히는 문제가 나오면 해결하지 못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는 시대, 한국 제조업의 '표준 대량생산체제', '수직계열화로 납품단가 후려치기'로서는 결코 개념설계 역량을 갖출 수 없다. 

▲ 김성혁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