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국 정상들도 비판한 트럼프 ‘막말’ 유엔연설 어이없는 칭찬일색

▲지난달 21일 오전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6.15청년학생본부 등 청년학생들이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중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 19일(현지시간) 유엔총회 ‘막말’ 연설이 지탄을 받고 있다.

그가 “미국은 엄청난 힘과 인내심을 갖고 있지만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시키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자 러시아와 중국 외교부는 물론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의 메르켈 총리까지 “완전히 부적절하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그뿐 아니다. 미국 내 보수지인 워싱턴포스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깡패 두목(a mob boss)과 같은 연설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CNN도 “어떤 미국 대통령도 세계에 대고 이렇게 말한 적은 없었다”며 “도가 지나쳤다”고 비난했다.

중국의 ‘신화통신’이 인용보도한 발스트룀 스웨덴 외교장관 발언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 연설은 명백하게 “유엔헌장 위반”이다. 유엔헌장 2조4항엔 “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관계에 있어서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해 또는 국제연합의 목적과 양립하지 않는 어떠한 기타 방식으로도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고 돼 있다. 트럼프의 연설은 ‘무력의 위협’이라고 보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그가 폭언을 쏟아낸 곳이 제 집무실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자 출범한 유엔의 총회장이었다. 우방국 정상들은 물론, 자국 언론까지 비판한 데서 보듯 외교적 결례일 뿐 아니라 안하무인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반응은 예상했던 바다.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위해 20일(현지시간) 미국을 찾은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개 짖는 소리”라며 “우리를 놀래키려 했다면 그야말로 개꿈”이라고 거칠게 비난했다. 북의 반응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지난 15일 ‘화성-12형’ 발사훈련을 지켜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국주의자들에게 우리 국가가 저들의 무제한한 제재봉쇄 속에서도 국가 핵무력 완성목표를 어떻게 달성하는가를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 이제는 그 종착점에 거의 다달은 것만큼 전 국가적인 모든 힘을 다하여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은 북을 더욱 자극할 게 뻔하다. 당연히 한반도의 긴장 도수가 전례 없이 치솟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이처럼 전쟁위기 고조의 화근이 될 트럼프의 발언을 청와대가 칭찬 하고 나선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유엔총회에 참가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19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 유엔 연설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는데 호평 일색이다. 

일단 “미국 대통령으로서 이례적으로 긴 시간을 할애해 북핵 및 북한 문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은 미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취지라고 치자. 그런데 “국제사회와 유엔이 당면한 평화와 안전 유지와 관련한 주요 문제에 대해 확고하고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본다”고까지 치켜세웠다. 세상이 다 아는 북미간 갈등상을 굳이 국제사회와 유엔이 당면한 평화와 안전 문제로까지 비약한 것은 국제사회를 미국중심으로 보는 게 아니면 미국의 눈치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 대변인은 “오늘 북한 관련 연설은 한·미 양국 정상이 그간 누차 밝힌 바 있듯이 북한의 엄중한 핵 미사일 도발에 대하여 최대한도의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만이 미래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나가도 너무 나갔다. 

청와대가 강조한 “최대한도의 제재와 압박”이 “북한을 완전히 파괴시키는 것”과 같은 말이란 것인가. 북한의 미래를 위한 유일한 길인 비핵화를 위해선 “북한을 완전히 파괴시키는 것”도 눈감아 줄 수 있다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북한이 완전히 파괴되는 순간에도 남한은 무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걸까? 

청와대의 이런 반응은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수호 발언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안 된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개혁성향 한겨레도 21일자 사설에서 문 대통령의 평화론을 국제사회에 거듭 천명하고 “고삐 풀린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정책에 끌려다니지만 말고, ‘압박과 대화’를 병행해서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기조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회원국들 앞에서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근 통일외교안보 이슈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철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대통령)옆에 있는 것 같다”며 청와대 외교안보 참모들을 질타했다고 한다. 외교안보 참모진에게만 문제가 있진 않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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