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진보연대 창립 10주년 기념 인터뷰]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오는 16일 한국진보연대가 출범 10년을 맞는다. 지난 2007년 9월16일 창립 당시 상임의장을 맡았던 오종렬 총회 의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지난 14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주산리에 있는 ‘5.18 민족통일학교’를 찾았다. 

5.18 민족통일학교는 오 의장이 직접 발기하고, 그가 받은 ‘5.18 민주화 보상금’과 민족학교 설립 취지에 공감한 시민, 노동자들의 기부금, 그리고 이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2015년 6월 준공했다. 서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5.18민주묘역이 있고, 남쪽으로 7km 정도 가면 소쇄원이 있다. 마당 푸른 잔디 위에는 빨간 티볼리가 서 있고, 강아지, 고양이가 한가롭게 노닐면서 가을 정취를 더했다. 

오 의장은 건강을 위해 2014년부터 3년째 여기서 지내고 있다. 한 달 전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가 후유증으로 고생 중이라는 그는 간격을 두어 움직이는 것을 배웠다고 웃으며 말했다. 인터뷰는 장산곶매 액자를 뒤로 하고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높은 긍지와 성과를 위주로 기대했는데, 의외로 성찰과 교훈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인터뷰와 정리 : 현장언론 민플러스 김장호 편집국장 

 

▲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 한국진보연대가 출범 10년을 맞았습니다. 창립을 주도하신 만큼 소회도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한국진보연대는 한 가지다. ‘자주독립’, ‘평등평화’, ‘민생민주’, ‘조국통일’ 이거다. 이것을 압축해서 자주, 민주, 통일라고도 하고, 좀 풀면 그렇게 된다는 거지. 이 길을 꿋꿋하게 걸어온 우리 동지들이 그렇게 장할 수 없다. 그거하면 누가 뭐 밥을 줘, 죽을 줘, 벼슬을 줘. 이렇게 참 고귀하고 장하고 업고 댕기고 싶은 동지들이다. 

그런데 아쉬움도 있다. ‘자주독립’, ‘평등평화’, ‘민생민주’, ‘조국통일’, 이것이 우리하고 무슨 관계가 있냐. 이에 대한 대중적 합의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칭 고도로 정선된 간부라고 하는 우리가 뭔 이슈, 사건이 생기면 사람들 오라고 해가지고 목소리를 크게 외친다. 그 역할도 크기는 크지. 허나 우리의 본업은 그걸 뛰어넘어야 해. 그게 굉장히 미흡해. 우리 간부들이 모든 정력을 쏟아서라도 대중의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결국은 언어거든. 언어를 개발해야 해. 

그 다음에 대중과 발을 맞추어야 한다. ‘나를 따르라!’ 마치 지시하고 지휘하고 호령하고 이러한 폐단을 가지고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없어. 그 점에 대해서 매우 소홀했다. 그 대목이 상당히 목말라.” 

- 한국진보연대의 출범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 회고해 보신다면 어땠습니까? 

“진보연대 출발할 때, 전국연합 하다가 민중연대와 통일연대로 따로 나누어서 일했지. 세월이 좀 흐르고 보니까 조직의 생리라는 것이 있더라고. 민중문제와 민족문제가 따로 분리해서 갈 수 있는 위험성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위험성을 많은 동지들이 느꼈던 것 같애요. 당시 젊은 활동가들이랑 했는데 참 몹쓸 놈들이지. 20년 전이지. 교도소에서 막 나온 나를 끌어다가 했던 거 아냐, 모의해 가지고. 치료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자꾸 와서 고맙기는 하지만, 나중에 가만히 정상을 보니까 큰일 났어. 까닥하면 무너져 버리겠더라구. 뿔뿔이. 그렇게 요것들이 나를 끌어와 가지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공감이 이루어진 거지. 우리야 글자를 주고받거나 말을 안 해도 알만한 거는 다 알잖아. 그래서 통합전선을 해야 한다, 이렇게 진보연대가 나온건데….

참 후회스러운 게 ‘자주’를 최고의 본질로 하는 우리가 ‘평등’을 최고의 본질로 하는 속칭, 좌파 친구들 하고 못 끌어안았어. 진정으로 호소하고, 같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라도 뭘 하는 그걸 더 했어야 했어. 사실 안한 것은 아냐. 하기는 했지만, 그건 회의해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거든. 회의 이전에 깊이 개별적으로, 집단적으로 했어야 했는데. 평등파는 평등파대로 경향성들이 있거든. 이걸 무릎을 꿇고라도 했어야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냥 가버린 거 같애. 참 바로 해야겠으면 준비위원회 정도로 하든가 했어야 했는데. 사실 준비위원회도 뻔한 거 아냐. 그러면 더 뒹굴어야 하는데……. 그래도 아마 안 됐을 거야. 그러나 진심으로 그렇게 한 거 하고, 뻔히 안 될 것이니까 가는 것 하고 그건 다른 거야. 그 점에 대해서는 양심선언컨데, 참회를 합니다.”

- 그런 말씀까지……

“아들 놈들이 하자해서 그랬다. 그래 가지고는 안 되는 거야. 책임은 나한테 있는 거야.” 

- 한국진보연대가 10년 동안 남긴 족적도 큰데요. 이 점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10년인데. 투쟁을 보면 참 영웅적으로 투쟁했지, 전국연합 시절에는 탄핵반대 투쟁, 국가보안법 투쟁, 대추리 투쟁 등등 이루 말할 수 없고. 한국진보연대는 한미FTA 저지투쟁, 광우병 투쟁이니 등등 모든 민생민주투쟁에서 큰일들을 많이 했지. 자주평화통일 투쟁보다도 민생민주투쟁을 실제로 더 많이 했어. 실제로. 돌이켜 봐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의 대통합은 성과를 못 냈어, 성과를 못 냈을 뿐만 아니라 당까지 분열되었지. 그것도 두 번이나 겪었단 말이야. 내 눈앞에서.”

- 그것이 못내 눈이 밟히시는 군요. 

“아암. 그건 내 생애 돌이킬 수 없는 상처야.”

- 한국진보연대의 10년 역사를 한 마디로 말씀하신다면? 

“있어야 할 때에, 있어야 할 곳에서, 있어야 할 존재가 있었다. 이거야. 진보진영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그래도 요것이 있었잖아. 아픔이 많았어도 이건 있어야 하는 거야.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 

- 최근 촛불혁명이 있었습니다. 누구는 인류사적 대사건이라고도 하고요. 촛불혁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남기를 죽인 공안탄압과 그에 맞선 민중항쟁은 ‘민중총궐기’ 아니었는가? 민중총궐기의 본성, 본질과 촛불혁명의 본성, 본질하고는 확 뚫려지게 일통하는 맥이 있어. 그것이 뭐냐? 거창한 요구 없었어. 뭣이냐? 농민은 ‘농사지어서 먹고 살 수 없다’ 이것이고, 노동자는 ‘내 일자리가 없다’, ‘있어봤자 옛날식으로 표현하면 기아임금’이다, 사람으로 제대로 존엄하게 살 수 없는 노동조건이라는 거지. 농민이나 노동자나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조건에 몰려 있어. ‘사람으로 살고 싶다!’, ‘우리는 개, 돼지가 아니다.’ 몸부림이지. 

촛불혁명은 뭐이냐. 좀 더 섬세하고 근사하게 표현들은 하고 있지만, 마찬가지야. ‘적폐청산’ 이런 거. ‘사람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거’, ‘이게 나라냐?’ ‘못 살겠다. 우리도 살고 싶다!’ 무엇으로? ‘사람! 존엄하게 살고 싶다.’ 이거거든. 

여러분들 태어나기 전에 1950년대 이승만 시절, 그때도 민중의 요구가 있었어. 1956년으로 기억하는데 민주당에서 신익희가 출마했을 때, ‘못 살겠다 갈아보자!’ 그랬어. 이승만 폭정에 못 살것다. 이렇게 민중의 요구가 맥이 이어져 온 거야. 그 사이 수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56년과 대비해 볼 때 완전히 일치해. ‘못 살것다 이게 나라냐!“ 하나의 맥이지. 

거기에 우리 동지들이 있었지. 좀 과한 것은 있어. ‘우리가 조직했다’(웃음). 누구나 끼리끼리는 할 수 있는 이야기지. 무용담이니까. 근데 누가 들으면 욕해. 촛불혁명은 민중이 한 것이고. 우리는 민중을 따라간 것이고. 때로는 안내를 했지.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위대한 거야. 앞으로도 민중의 지휘자가 되려고 하지는 말어. 

그러니까 있어야 할 때 있어야할 곳에 있어야 할 것이 있었다. 이 말은 그 민중역사의 맥을 그대로 이어서 살려냈고, 우리도 복무했고, 그것이 끊어지지 않았다, 이거지. 한 번 하고 가불고 하는 그런 사람이 개별적으로 있었지, 고무신 거꾸로 신은 사람들도 있었고. 그런데 동지들은 민중 속에서 전국연합, 진보연대 중심에 있었어. 대단한 거지.”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넉 달이 좀 넘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상당히 신중하게 봐야한다고 봐.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에 의해서 배출한 정권이야. 그건 자타가 공인해. 자기들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자기들이 만든 정권이 아니라 촛불혁명에서 탄생한 정부다. 그 점에서 봐야한다는 거지. 

촛불혁명에서 적폐청산을 요구했는데, 아무튼 한다고 하고 있어. 근데 좀 미흡해. 우리가 여기서 봐야할 점은 문재인 정부가 사실 매우 옹색한 처지에 있다는 거야. 문재인 정부가 가지고 있는 것은 촛불혁명의 위세뿐이야, 뭐 없어. 노빠, 문빠하는데 그게 아무리 많다고 얼마나 되겠어. 결국 대중세라는 것은 촛불이야. 촛불혁명의 유산을 가지고, 촛불혁명에 의해서 탄생된 정부라는 거지. 

우리가 많은 경우에 ‘이게 나라냐’ 할 때, 뭘 가지고 나라냐 하는지 잘 모르겠어. ‘이게 나라냐’ 할 때 ‘국정농단’하고 ‘부정부패’ 있고, 요런 짓거리들 가지고 이야기할 거야. 그건 문재인 대통령이 기를 쓰고 할 거야. 그건 한다고. ‘적폐청산’ 이건 문재인 대통령이 버리지 않을 거야. 그런 신념과 양심은 가지고 있다고 봐. 

그런데 우리가 봐야할 것은 다른 데 있어. 지금 현재 뭐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이게 우익세력들에서 회자되고 있는데, 민중 속으로 많이 번지고 있거든, 심지어 우리 동지들도 많이들 그래. 난 이게 대단히 위험하다는 거야. 코리아 패싱이 어디서부터 나왔어, 문재인한테 나왔어? 그것이? 근현대사가 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왔어.” 

-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라는 거죠?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언제부터 시작했냐 하면,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를 먹으려고 할 때 갑오농민전쟁을 했잖아. 왜놈들이 와서 지랄병 안 했으면 우린 성공했어. 왜놈들이 와서 수십만 명 학살하고 실질적으로 주권을 왜놈들이 가져갔지. 청일전쟁에서 이기면서 왜놈들이 득세를 했고, 그 다음에 러일전쟁을 했잖아. 예상대로 일본이 이겼어. 일본놈들 판이 된 거야. 그런데 국제적인 문제가 생기니까… 미국 문제가 생긴 거야.

그 때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이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아저씨뻘 되지. 한 집안이야. 근데 촌수가 멀어. 1900년부터 8년까지 했을 거야. 그때가 미국의 전환시대야. 미국이 태평양을 건너서 아시아로 진출하는 시대거든. 시어도어 루스벨트 때 하와이 먹고, 쿠바 먹고, 필리핀 먹고 했지. 그런데 필리핀 먹으려고 하는데 힘이 좀 부치니까 일본하고 야합을 한 거야. 그때 국무장관이 태프트야. 일본의 카스라 총리하고 밀약을 해 가지고, “야, 필리핀은 내가 먹고, 조선은 니가 먹고” 했잖아. 거기에 코리아가 어디가 있어? 코리아는 없었어. 코리아는 먹이였지. 두 짐승이 나눠먹을 먹이였지 국가라고 하는 코리아는 없었어. 구체적으로 근대사에서 ‘패싱 코리아(Passing Korea)’가 아니라 ‘낫싱 코리아(Nothing Korea)’로 시작했어. 패싱 코리아 정도가 아니라 낫싱 코리아로 시작했다구. 

결국 미국하고 일본하고 밀월관계 하는데, 미국이 필리핀만 먹어가지고는 안 되잖아. 근데 일본이 중국을 먹으려고 한 거지. 만주사변을 일으켜 가지고 중국을 공략했고. 그렇지 않아도 미국은 공황이 터져서 죽을 둥 살 둥 하는데. 그게 절박하기도 하지만 절호의 찬스였어. 미국 입장에서는 전쟁으로 모든 것의 물꼬를 트면 되니까. 그래서 미국이 일본에 칼날을 대기 시작했지. 일본의 목을 조이기 시작하니까 일본이 독일하고 이탈리아하고 주축국 연합, 파쇼국가 연합을 한 거지. 

미국이 일본의 목을 조이는데, 일본이 고무가 나와, 석유가 나와, 철이 제대로 나와? 그러니까  죽겠거든. 결국 미국을 선제공격 해버린 거지, 그게 진주만 기습이야. 나중에는 일본이 밀리게 되었지. 

이 와중에 미국은 한국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냐? 43년에 카이로 회담이 있었잖아. ‘대한민국 독립 보장했다’고 하는데 그게 다 사기야. 임시정부에서 청을 넣어가지고 장개석이 카이로 회담에 가서 제안해서 조선 독립해방을 끼어 넣었어. 근데 거길 다시 보라고. 조선의 독립을 언제하라고 되어 있는가. ‘적절한 시기’라고 했어.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한 거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전략은 조선의 독립이 아니라 신탁통치였어. 거기에 우리는 없었어. 교활한 놈이야. 

45년 2월 달에 얄타회담 했잖아. 얄타회담에서 전후관계가 거의 정리되었지. 독일이 곧 망한다. 독일이 망한 후에 3개월 이내에 소련이 극동전선으로 이동해서 대일전에 참가한다. 스탈린에게 루스벨트가 로비하고 사정해서 약속을 받아낸 거잖아. 소련의 요구로 전후 약소국가, 약소민족 해방까지 넣었어. 근데 그것을 루스벨트가 한 것처럼 넣어놨지. 

45년 7월에는 포츠담 선언을 하지. 이게 세 번째야. 포츠담 선언을 하기 시작할 무렵에 미국이 드디어 맨해튼 프로그램, 원자탄 개발에 성공한 거야. 근데 트루만이 그걸 감추고 포츠담 선언 문안작성 중인데, 7월24일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을 해버리잖아. 7월26일 예정된 포츠담 선언은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해라’ 이게 핵심이냐. 이렇게 해놓고 자기는 미리 원폭투하를 결정해 놓았지. 이게 모사야. 가령 거부했을 때 투하했다면 이야기가 돼. 근데 최후통첩도 보내기 전에 이미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해 놓았다? 이게 희대의 사기극인데 아직도 안 밝혀져. 말하는 놈이 없어, 기록에 다 있는데도 안 해. 미국의 위세에 눌려서 아무도 입을 못 벌리고 말을 안 하는 거지. 

그래 가지고 8월6일 결국 원폭이 투하되는데, 8월8일이 소련 참전일이야. 참전일 이틀 전에 원폭을 먼저 투하한 거야. 소련군이 밀고 내려오는데 감당을 못하는 상황이었지. 미국은  일본놈들 최후 저항에 빠져 시간을 잡아먹고 있는데, 소련군은 만주대륙을 휩쓸고 파죽지세로 내려와 곧 두만강을 건너오게 돼 있었어. 그래서 한 번 더 터뜨리는 거지. 일본놈들도 뭔지를 모르는 좀 센 게 터졌는갑다 하니까 겸사로 한 번 더 터뜨리지. 그래도 소련군이 소만국경을 넘어서 물밀 듯이 내려오니까 미국놈들이 다급해졌어. 국무성에 파견나와 있는 국방성 러스크 대령, 나중에 케네디 때 국무장관 했던 친구지. 그 친구하고 본스틸 대령, 나중에 주한미군 사령관 했어. 이 두 놈한테 지시해 가지고 빨리 저지선을 그어라. 느닷없이 자기 사무실에서 지도 펴 놓고 쭉 그었어. 그것이 38선이야. 그걸 소련에게 말했지. 여기까지만 와라. 소련도 더 내려오고 싶지. 근데 원폭을 본 거지. 원폭을 보니까 감히 미국과 대결해 가지고는 안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한 거야. 소련군이 38선 이남까지 내려온 경우도 있었어. 그런데 복귀를 했지. 바로 이거야. 좀 길게 이야기 했지만.

이 태프트-카쓰라 밀약이 40여년 지나서 다시 재현된 거야. 38선이라는 괴물로 다시 등장한 거지. ‘북은 소련이 먹고, 남은 미국이 먹자.’ 그 주범이 누구냐? 미국이야. 거기에 코리아가 어디에 있나? 임시정부가 있었잖아. 임시정부가 대일 선전포고를 해도 무시해버려. 왜냐 낫싱 코리아가 안 되잖아. 낫싱 코리아가 안 되니까 무시해 버린 거지. 묵살해 버린 거야. 자기들끼리 남쪽, 북쪽에 진주했지.”

-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한데요, ‘낫싱 코리아’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한정이 없는데 하나만 더 하자면, 6.25때 정전협정 서명 누가 했어? 한국은 정전협정 서명자가 아니야. 제일 앞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원수, 중국의용군 총사령관 팽덕회 원수, 유엔군 총사령관 클라크 대장 요렇게만 있잖아. 

그런데 지금에 와서 문재인 더러 뭐라하고, 누구더러 뭐라하고, 이런다고 되냐고. 대중들은 많이 현혹되어있고, 극우들은 그걸 가지고 깃발 들고 나오고 이러고 있단 말이야. 이걸 진보진영 안에서도 상당수의 사람이 문재인 정부에 섭섭한 것이 있다 보니까 동조를 한다고. 근데 본질에 대해서 멀어지고 뒤집어진 것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우리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찰 없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지.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야속한데도 있고, 얄미운 점도 있지만. 참 지랄한다고 6차 핵시험하니까 왜 또 히스테리를 해?(웃음) 지금 우리 대한민국 정체성을 볼 때 어쩔 수 없어. 하루도 못 가. 국회를 보면 여소야대, 모든 재벌들은 극우와 다 연결이 되어있고 미국하고 연결이 되어 있어. 제대로 문재인 편들 놈 없어. 군대도 워낙 60년, 70년 동안 미국 가서 교육 받고 온 놈들이 간부로 박혀있어. 재판부, 검찰, 경찰 다 그래. 오로지 착한 국민대중, 위대한 촛불대중만 있을 뿐이야. 그런데 여기다 대고 과도하게 요구해서는 안 돼. 너무 심하게 욕해서는 안 돼. 

그럼 우리더러 문빠 되라는 말이냐? 그건 아니지, 이제는 우리가 촛불의 주역답게 우리가 해야 해. 문재인 더러 손가락질 하면서 너 왜 이러냐, 북핵문제 왜 이러냐, 왜 미국놈 말 듣냐, 사드 너 왜 이러냐, 이렇게 하다보면 부지불식간에 우리가 뭐가 되는가? (자유)한국당 2중대 되는 수가 있어, 똑같아져. 이걸 조심해야 돼. 

사드투쟁은 사드투쟁대로 해야지. 표적이 문제야. 표적을 누구를 잡아야 하냐? 미국을 잡아야 해. 낫싱 코리아를 만들어 놓고 낫싱 코리아를 주도해온 미국을 향해서 뭘 해야지. 아무 힘 알테기 없는 문재인 정부더러 뭐하면 어쩌란 말이야.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고 아장아장 걷고 있는데, 뭘 어쩌란 말이야. 어찌 보면 약간 비겁한 거야. 미국하고 해야지, 일본하고 하고.  

결국 민중이야. 진짜 주인인 민중이 해결할 수밖에 없어. 민중과 함께하는 우리가 나서야지. 일반적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본 것으로는 가장 많이 발전했어. 이걸 우리가 많이 이용해야 돼. 이 판을 일반적 민주주의, 보통 민주주의를 잘 이용해서 우리의 자주독립, 평등평화, 민생민주, 조국통일 설계도를 꾸려나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거지. 그 외의 것은 힘써봐야 다 소모적이야.” 

- 이 대목에서 사색이 깊으셨네요. 말씀을 많이 하시는 거 보니. 

“이것은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때도 비슷했어. 노인이 미국 가서 얻어맞았잖아. 부시가 ‘Who is this man?’ 이랬잖아. 그 이유가 뭐였냐.  알아보니 MD에 한국 들어와라. 6.15공동선언 맘에 안든다. 이건데 김대중 대통령이 MD불가입원칙하고 6.15공동선언 이행관철을 고수하니까 그렇게 모욕하고 쥐어짜고. 하도 그러니까 많이 줘버렸잖아. 6.15공동선언하고 MD 불가입하고 이거 하나 지키려고, GM코리아도 내주고 다 주고 했잖아. 

나도 평생 김대중 대통령 지원하고 온몸을 바쳐서 다 했는데, 하도 화가 나니까 내 입으로 수만 군중 앞에서 노친네 내려오라고 했지. 배달호 열사 손배·가압류로 죽었잖아. 눈이 뒤집혀 버리더라고. 민생대통령, 통일대통령 하라고 했는데 이 짓인가? 이러면서. 

그럴 땐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구조, 그걸 봐야 돼. 특히 지도부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도리가 없는 게 있다는 거. 그래서 표적을 주범에게 돌려야지. 힘도 없는 정부를 두들겨 가지고는 결국 우리 역량만 훼손할 뿐이야. 이 아픔이 있어. 저 세상 가면 그 땐 ‘미안했어라우’ 해야지.(웃음)” 

- 북미대결 정점으로 가고 있잖아요. 어떻게 보십니까?

“정점이라는 말이 문학적 표현이라면 수용하겠는데, 전략적인 표현이라면 별로 동의 안 해. 너무 쉽게 보면 안 돼. 우리 식구들 상당수 사람들이 이제 미국이 꼼작 못할 거라고 보는데 너무 낙관적으로만 보지 말았으면 해. 철학은 낙관해야 하지만 정세를 낙천적으로만 보면 오류를 범할 수 있어. 미국이 순순히 물러날 놈들이 아냐. 

이 대목에서 북의 핵 문제를 보면 남쪽에서 우익들이 선동해 가지고 북이 핵을 가지니까 우리도 가져야한다든지, 미국 거 빌려온다든지 개발해야 한다든지 해쌌는데. 북핵의 본질을 잘 봐야 돼. 
북의 핵은 미국의 핵 공격에 대항하고 제압하기 위해서 개발한 것이지, 남쪽 동포들에게 쏘려고 개발한 것이 아니야. 근데 남쪽 정부가 자꾸 미국의 방패가 되어 가지고 앞잡이 노릇을 하니까 남쪽에다 공격적인 언사를 하는 것이지 남에 핵을 쓰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 

생각을 해 봐. 메뚜기 낯바닥만한 나라에서 북이 남에게 핵공격을 하면 북이라고 살겠어? 북이 남쪽에 핵을 쓴다는 것은 자기 집 앞마당에다 핵폭탄을 터뜨리는 거 하고 똑같지. 그거는 안되는 거거든. 그런 것을 모르고 북이 핵 가지고 뭘 한다고 하니까 미국놈 앞잡이 노릇을 하느라고 전술핵이 어떻고, 핵공유가 어떻고, 우리도 핵무장 어떻고 하는데, 이건 범죄야. 이걸 대중과 함께 깨우쳐 나가야 해. 

북미간의 핵대결을 하는데 왜 우리가 미국 앞잡이가 되어 가지고 핵벼락을 뒤집어쓰려고 하냐는 거야. 위기만 더 자초하는 거야. 미련하게. 북이 우리에게 핵공격을 한다? 또는 남이 북에게 핵 공격을 한다? 그럼 남측 우리는 살아 남것냐?  남이건 북이건. 다 죽는 거야. 이런 걸 알고 전략전술을 구사해야지. 

그러니 우리는 미국에게 싸움을 걸어야 한다 이 말이야. 미국도 미국핵 가져온다는 그런 짓거리들을 하면 안 되지. 죽으면 우리가 다 죽게 돼.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서는 미국 그놈들도 죽게 돼 있어. 이것을 우리가 외친다 해서 미국놈들이 들어주지는 않겠지만 민중은 듣거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거야. 그랬을 때 여러분들이 좋은 머리를 가지고 대중의 언어를 개발해야 돼. 우리끼리 쓰는 언어 말고. 대중의 언어.” 

- 9월25일이면 백남기 어르신 1주기인데요. 추모말씀 해주시지요.

“백남기 동지를 생각하면 처절한 투쟁의 모습보다도 미소짓던 얼굴이 먼저 떠올라. 참 다정했어. 그 다정함은 나한테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다정했고, 우리 민중에게 다정했고, 특히 농산물에게 그렇게 사랑을 주었어. 그래서 참 서럽고 아쉬워요. 하지만 그런대로 위로하고 위안받는 것은 헛되지 않았다는 거. 백남기 동지의 처절한 투쟁이 촛불대항쟁, 촛불대혁명의 거대한 불씨가 되어주고 동력이 되어 주었다는 거. 이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대로 위로를 받습니다. 아무쪼록 하늘나라 가서라도 편히 쉬시길 바라고, 동지들은 결코 백남기 동지를 잊지 않을 것을 굳게 믿습니다.” 

- 10살을 맞이한 한국진보연대가 앞으로 갈 길에 대해 격려 말씀 부탁합니다.

“10살이니까 짜박짜박 걸을 때를 지났습니다. 담박질을 할 정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우리가 생명으로 여겼던 우리 대강령, ‘자주독립, 평등평화, 민생민주, 조국통일’ 대강령을 우리만의 생명이 아니라 전민족의 생명으로 만드는데 한 번 더 떨쳐나서기를 바랍니다. 동지들은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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