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27주년 교사대회 “불의가 법일 때 저항은 의무다”

▲ 5월28일 여의도문화공원에서 1만여명의 모여 전교조 창립 27주년 기념 전국 교사대회를 가졌다.

1989년 5월28일 참교육의 함성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출범한다. 그리고 1527명이 전교조 탈퇴를 거부하고 해직된다. 10년만인 1999년 합법화(법내노조)를 이뤄낸다. 그리고 2016년 전교조는 다시 법외노조가 된다. 현장 복귀를 거부한 7명이 해직되고 28명이 해직 대기 중이다.

민플러스는 전교조 출범 27주년 교사대회에서 1989년을 만나기로 했다. 89년 연세대 출범대회에 참석했던 박용규 (경남 밀양중)선생님,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 해직교사)선생님, 89년에 태어난 조휘연 (서울 당산초등)선생님에게 ‘2016년이 만난 1989년 참교육의 함성’을 물었다.

▲ 박용규 (경남 밀양중)선생님,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 해직교사)선생님, 89년에 태어난 조휘연 (서울 당산초등)선생님이 민플러스의 '2016년이 만난 1989년 참교육의 함성'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원래 집결지는 연세대가 아니라 한양대였어요. 들어가지도 못하고 막히자 비선(비상연락선)을 통해 YMCA로 집결하라는 거예요. 갔죠. 근데, 또 바뀐 거죠. 연세대로. 전경(전투경찰)들의 철통 경계를 뚫고 가느라 전 조금 늦게 도착했어요. 막 윤영규 위원장님이 출범선언문을 읽기 시작했죠? 1분도 채 되지않아 최루탄이 연세대를 가득 덮었죠. 짧지만 아주 강력한 출범식이었죠. 참석한 2천여 명은 모두 눈물을 펑펑 흘렸으니까요. 최루탄 때문에.(웃음)”

묻지도 않았는데… 박용규 선생님은 벌써 89년에 가 계셨다.

“출범식 직후 곧바로 탈퇴공작이 있었어요. 탈퇴를 거부한 1519명이 해직이 됐죠. 저는 그때 해직되지 않았어요. 같은 학교 선생님이 나 몰래 (전교조)탈퇴 각서를 대리해서 제출했거든요. 해직이 안 돼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해직된 선생님들을 쳐다볼 수가 없었어요. 오죽했으면 91년 강경대 열사 투쟁으로 해직됐을 때, 전교조 사무실에 가서 ‘만세’를 불렀다니까요. 그리곤 7년 해직 끝에 98년 복직했죠.”

57세의 나이와 덥수룩한 흰 수염에 어울리지 않게 박용규 선생님은 아직 20대 청춘교사처럼 말을 이어갔다.

▲ 왼쪽은 1989년 전교조 창립대회가 열린 연세대, 오른쪽은 창립 27주년 교사대회가 열린 여의도 문화공원

“‘민족민주 인간화 교육 만만세~’ 얼마나 멋진 가사예요. 전 아직도 이 노래 들으면 가슴이 뛰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99년 전교조가 탄압을 뚫고 합법화를 쟁취하는데 해직교사의 역할이 컸어요. 아마 90년대 교육운동, 아니 진보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동의 하실 걸요”

박용규 선생님은 법외노조로 전임자들이 해직된 것은 가슴 아프지만, 오히려 기회라고 했다. 7년 해직 경험자로서 현 상황을 이렇게 진단하고 있었다.

“우리가 좀 더 열심히 했다면 후배들이 이렇게(해직)까지 되지는 않았을 테데…(그의 눈시울이 불어졌다) 성(화)도 나고. 평생 민주화운동에 바쳤는데. 우리 사회가 고작 이 정돈가. 억울하죠. 하지만 새로운 각오를 해야죠. 다시 합법화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거예요. 35명 해직교사들이 있잖아요. 사실 전교조가 합법화 이후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도 사실이에요. 제2의 전교조 운동을 시작할 때가 온거죠. 87년 세대를 뛰어 넘는 21세기 참교육세대가 등장해야죠. 화를 복으로. 27년전 우리(87년세대) 해직자들이 그랬어요. 기왕 해직된 김에 ‘우리가 교육운동 책임지자, 진보운동 이끌자’했던 거죠. 잘했잖아요.(웃음)”

차세대 젊은 교사들에게 당부의 말을 부탁하자 말을 아꼈다.

“아 이거 잘못 말하면 ‘꼰대’ 소리 듣는데…(웃음) 이 친구들(젊은 교사들)이 자기개발은 잘하는데… 조직사회를 너무 몰라. 전교조 힘이 약화되면 우리 사회가 과거로 회귀하게 되거든요. 당연히 개인보단 조직이 우선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자신들(87년세대)은 치열한 투쟁과정에서 운동가로, 또 전교조 간부로 자라게 된 복받은 세대라고 했다. 반면 지금 세대들이 활동가가 되기 위해 어떤 경로를 밟아야할지 자신도 답을 찾지 못했다며 미안해 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박용규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아쉽지만 마쳐야했다.

▲ 왼쪽은 89년 전교조 창립대회과정에서 연행되는 선생님들, 오른쪽은 창립 27주년 교사대회에 참석한 선생님들

“우리 (젊은세대)선생님들은 ‘권위’, ‘규율’ 이런 데는 근본적인 반감이 있거든요. 그렇다고 조직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에요. 선배님들의 희생으로 오늘날 전교조가 있다는 것도 감사해요. 다만 시간을 두고 조곤조곤 설명을 해달라는 거예요. (87년세대)선생님들과는 살아온 경험과 받은 교육이 다르거든요. 당연히 정서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차이가 나죠. ‘이 정도도 안하면 어떻게 하냐’라고 말씀하시지만 바로 그 ‘이 정도’의 기준이 다르거든요.”

전교조와 함께 태어난 89년생, 교사 5년차인 조휘연 선생님의 애정어린 항변이다.

2011년 첫 부임한 학교에서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조휘연 선생님. 전교조가 자신에게 무엇인지 물었다.

“저는 몰랐어요. 교장 선생님이 호칭을 그렇게까지 신경 쓰시는지. ‘선생님’이라고도 하고 ‘교장선생님’이라고도 불렀죠. 그런데 어느 날 교장실로 저를 부르는 거예요. 옆에 교감 선생님까지 대동해서. 왜 교장 선생님을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냐고 따지는 거예요. 24살 2년차 왕초보 교사였는데…(웃음) 그때 전교조 선생님들의 응원이 이어진 거에요. 아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죠. 뒤에 알게 됐지만, 조퇴투쟁에 참여하지 말라고 사전에 겁 준 거였어요. 그때 알게 됐죠. 부당한 것과 싸우면, 함께 해줄 조직이 있구나. 전교조는 제 언덕인거죠”

자신과 나이가 같은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마치 위원장님처럼 대답했다.

“전교조가 수많은 해직교사와 함께 어렵게 탄생했잖아요. 이후 합법화 되면서 우리사회에 자리매김 했구요. 규모도 한때 10만까지 올랐고, 한마디로 급성장을 한 거죠. 저는 전교조가 청년기라고 생각해요. 지금 탄생 이후 첫 위기를 맞았지만 기죽지 않았잖아요. 저와 동갑이니까 28세. 위기를 맞아야 한다면 지금이 나쁘지 않아요. 20대, 일단 힘이 넘치잖아요. 의기가 있을 때고. 그러니 법외로 내몰려도 무릎 꿇지 않죠. 규약 개정 않고, 해고 동지들과 함께 하겠다 외칠 수 있는 힘. 그런 부담은 있죠. 내가 힘을 내야 하는 거구나. 내가 팔팔해야 조직도 힘을 내는 거구나”

만약 전임자였다면… 갈등은 했겠지만 ‘미복귀를 선택할 것’이라 말하는 조휘연 선생님의 눈빛에서 전교조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 1989년 5월28일 전교조 창립을 선언하는 윤영규 위원장(왼쪽)과 창립 27주년 교사대회에서 대회사를 하는 변성호 위원장

“더 큰 걸음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자. 푸른 창공을 날아 장대한 전교조로 되살아 올 것이다.”

법외노조 초대 위원장 변성호 선생님의 일성이다.

“89년 전교조 창립선언문은 ‘교사도 노동자다’, ‘참교육 실현하자’로 요약할 수 있다. 27년이 지난 오늘 전교조는 노동3권을 박탈당했고, 참교육은 절망의 벽에 부딪쳤다. 단체행동권과 교섭권은 물론이고, 단결권마저 법외로 밀려났다. 우리 아이들은 격화된 입시경쟁과 서열주의로 세계 최장 시간 학습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교과서 국정화로 친일·독재를 미화시켜야 한다. 성과급·교원평가가 교사공동체를 스스로 파괴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참교육을 위해 교직을 떠나야하는 아이러니에 전교조의 오늘이 투영되어 있다.”

미복귀자 35명 중 7번째로 해직을 통보받은 변성호 선생님에게서 ‘절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불의가 법이 될 때 저항은 의무가 된다. 거침없는 대장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해직교사들은 어깨 걸고 앞장에 섰다. 참 스승을 빼앗긴 교단으로 반드시 다시 돌아간다. 우리가 돌아가는 날 참교육이 참세상을 부등켜 안을 것이다.”

▲ '35인(미복귀자) 당신은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합니다'라는 글로 카드섹션을 하고 있다.

전교조의 두 이념인 '참교육'과 '노동자성'은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한 변성호 선생님은 진보교육감을 지나치게 공격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서도 답을 했다.

“전교조가 마치 참교육운동과 노조운동으로 양분된 것처럼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교사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외압에 휘둘리지 않고 참교육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렇게 참교육과 교사의 노동자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요. 물론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는 선생님들마다 조금씩 다르죠.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조화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에요.”

“진보교육감들이 박근혜 정부의 징계 지침을 단호하게 거부하지 못하니까,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않으니까 뿔이났죠.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잖아요.(웃음) 전교조의 주 공격방향이 박근혜 정부와 교육부라는 데는 변함이 없어요.”

11주기가 된 고 윤영규 전교조 초대 위원장을 ‘선생님의 선생님’이라고 표현한 변성호 선생님에게서 윤 위원장이 보였다. 변성호 위원장이 이끄는 전교조호는 참교육의 대하를 지나 참세상의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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