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 교수의 ‘한국문학의 필화사건’

해방 이후 80년대 5공화국까지 독재정권은 정권 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많은 작가와 시인들을 고문하고 구속했다. 국제인권법을 강의하는 채형복 경북대 교수가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한국문학 필화사건들의 전모와 진실을 본격적으로 밝힌다. .[편집자]

1. 사건 원인과 경과

남정현(南廷賢)은 <현대문학> 1965년 3월호에 단편소설 <분지(糞地)>를 실었다. 처음 실렸을 때만해도 이 소설은 세인들의 특별한 주목받지 못했다. 이 소설이 갑자기 문제가 된 것은 그해 5월 8일자로 북한이 발간한 <통일전선>에 실리면서였다.

그해 7월9일 중앙정보부는 단편소설 <분지(糞地)>가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소설가 남정현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가 있기 전인 5월 어느 날 남정현은 이미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심문을 당하였다. 중앙정보부는 남정현에게 “북한의 누군가가 써서 건네준 것일 터이니 그 접선 내용을 밝히라”고 추궁했다. 7월7일 남정현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공식 구속되었다. 이러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은 남정현이 구속된 다음날 <조국통일> 7월8일자에 또다시 <분지>를 실어 남한 당국을 자극하였다.

백낙청은 7월13일자 조선일보에 남정현의 구속에 항의하는 글을 실었다. 이 기사로 백낙청과 원고를 청탁한 조선일보 문화부장 남재희도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현대문학>은 8월호에 “본지 지난 3월호에 발표된 남정현씨의 소설 <분지>는 본지의 부주의로 인해 게재된 것으로서 이로 인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정중히 사과하는 바이다”라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남정현은 7월23일 구속적부심사를 거쳐 풀려났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6년 7월23일 검찰은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로 인해 남정현은 반공법 위반으로 법정에 선 첫 작가가 되었다. 소설 <분지> 사건이 “문학작품 반공법 기소 제1호”라고 불리는 이유다.

1심 공판은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검찰은 남정현에게 법정 최고형인 7년 징역에 7년 자격정지를 구형했다. 1967년 6월28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법원은 남정현에게 반공법 제4조, 제16조와 국가보안법 제11조, 형법 제57조를 적용해 징역 6월에 자격정지 6월로 낮추고 선고유예판결을 내렸다.

1심판결에 대해 피고인 남정현과 검사는 각각 항소했다. 1970년 4월7일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원심판결이 정당하고 검사와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음이 명백하므로 각각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남정현은 상고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담당 변호사 한승헌은 이렇게 술회한다.

“나는 남선생과 상의한 끝에 상고를 하지 않기로 했다. 1, 2심의 유죄야 도저히 승복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대법원이 원판결을 뒤집고 공정한 재판을 해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승복할 수 없는 판결에 상고를 하지 않고 확정시켜 버리는 것은 논리상으로는 모순이지만, 그 만큼 당시 대법원에 대한 불신도 컸던 것이다.”

필화사건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1974년 남정현은 대통령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소위 ‘민청학련사건’)로 다시 구속되었으나 그 해 9월 긴급조치 해제로 석방된다.

이 사건들을 전후하여 남정현은 몇 권의 소설을 썼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다. 그러다가<분지>와 함께 그의 이름이 문단에 재등장한 것은 <현대문학>이 1998년 10월호에 다시 <분지>를 실었기 때문이다. 1심판결이 내려진 때로부터 무려 33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2. 작품 줄거리

- 이 필화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당시 특별검사 김태현이 작성한 “북괴의 적화전략에 동조말라”는 제목의 공소장에 실린 작품 줄거리를 그대로 인용한다. 이 공소장은 다음 문헌에 실려 있다. 작가연구위원회 편, 『남정현문학전집 3』, 국학자료원, 2002, 299-303쪽.

 

활빈당의 수령으로서 양반계급제도의 타파, 부패한 조정의 무리들을 신출귀몰하는 둔갑술로서 혼비백산케 하고 비천한 대중들을 구제한 홍길동의 비법과 정신을 이어받은 10대손인 홍만수(洪萬壽)는 어머니와 여동생 분이와 함께 8․15해방을 맞이하였다.

아버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분이라고 어머니로부터 들었으나 만수는 나이가 어려서 독립이니 해방이니 하는 의미도 몰랐다. 다만 아버지가 왜놈에게 결단나지 않고 이제 돌아 오신다기에 어머니와 무한히 기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밤 새우고 만든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우고 무슨 환영대회에 나갔던 날 미군한테 강간을 당하여 정신적 충격을 받고 미군을 저주하면서 미쳐 죽었다. 만수와 분이는 아무리 아빠를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가난한 외가에 가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6․25동란을 만나 피난길에서 가족과 뿔뿔이 헤어진 만수는 군에 입대하였다. 고된 군의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만수의 앞에는 걸식과 방황이 기다리고 있을 뿐 살 길이 막막하였다.

어느 날 우연히 누이동생 분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 때 분이는 미군 ‘스피드’ 상사의 첩 노릇을 하면서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만수는 그것을 알고 어머니를 부르며 목 놓아 울었다.

그러나 삶에 지쳐서 우선 뭘 먹고 한잠 푹 자고 싶은 욕망에만 사로잡혀 있는 만수는 누구를 원망하고 책망할 기력도 없었다. 만수는 너무 원통하고 불쾌했지만 ‘스피드’ 상사 집에 의탁하여 미군물품 장사를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만수는 어머니가 생전에 그렇게도 칭찬하던 옥이며 숙이도 미군들의 호적에 파고 못 들어 병객처럼 되어 있고 대학 출신의 친구도 미군을 매부로 삼은 만수에게 미국에 통하는 길을 열어 달라고 호소하는 형편이니 미군 첩 노릇을 하고 있는 분이를 어머니 마음처럼 박살낼 수도 없다고 어머니의 영혼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수는 이러한 세대에 의분을 느끼고 홀로 주먹을 쥐고 썩어빠진 국회며 정부는 미국에게 한민족을 진정 살리기 위한 원조를 하라고 신세계를 향하여 데모할 동의가 없느냐고 열변을 토해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스피드’ 상사는 밤마다 별다른 결함도 없는 분이를 본국에 있는 본처에 비하면서 입에도 담지 못할 욕설과 폭언으로 못 견디게 학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수는 도대체 ‘스피드’ 상사의 본처는 얼마나 그 육체가 황홀하게 잘 생겼는가 하는 의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자 다행하게도 ‘비취’란 애칭을 가진 ‘스피드’ 상사의 부인이 남편을 찾아 한국을 방문해 준 것이었다. 만수는 의심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기뻐하였다.

만수는 곧 제 조국의 산하를 안내하여 주겠다고 ‘비취’ 여사를 향미산(向美山)으로 유인하였다. 그리고 조국의 산하를 설명하기에 앞서 반만년의 역사에 빛나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여사에게 한 가지 청을 하였다. 얼마나 여사의 몸이 아름다워서 제 누이동생의 몸이 그렇게 학대와 곤욕을 받는지 여사의 몸을 잠깐 보여 달라고 간청하자 여사는 당황하여 만수의 뺨을 치면서 반항을 하는 것이었다.

만수는 의심을 풀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것 같아서 당황하다가 ‘비취’ 여사의 몸을 강제로 눕히고 겁탈하고 말았다. ‘비취’ 여사는 비명을 울리면서 정신없이 향미산을 뛰어 내려갔다. 이것을 알게 된 ‘펜타곤’ 당국은 격분하여 미군 부인을 강간한 홍만수를 주살하기 위하여 3억불을 들여 만수가 숨어 있는 향미산의 주위를 1만 여의 각종 포문과 미사일, 그리고 전 미군 중에서도 가장 정예사단이 포위하였다.

향미산의 바위틈에 숨은 지 3일, 드디어 ‘펜타곤’ 당국은 만수를 악마가 토해낸 오물이며 인간 최대의 적이라 판정하고 만수를 폭살한다고 세계의 이목을 이 향미산에 집중시켰다. 그리하여 향미산 주변 직경 수 천리 이내의 주민들은 폭파 직전에 있어서 친지와 가산과 석별의 눈물을 흘리면서 지층 깊은 곳에 몸을 처박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었다.

당황한 만수는 자기 출신구 민의원을 찾아가서 솔직히 고백하고 구원을 얻으려 하였으나 그 민의원은 벌써 ‘스피드’ 상사의 상관을 찾아가서 자기 출신구에 그 따위 악의 종자가 존재하였다는 데 대하여 몇 번이나 사과를 하고 국회에서 그런 오물을 사전에 적발 처단하지 못한 사직 당국의 무능과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약속을 하러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아무도 의지할 곳이 없게 되자 정말 오물처럼 미국인들이 흘린 오줌과 똥물만을 주식으로 하여 살아오면서 긴 한에 맺혀 이대로 죽을 수가 없는 딱한 형편에 놓여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만수는 무덤에 있는 어머니의 영혼에 대하여 향미산에 숨어 있는 사연과 살아온 사정을 호소하게 된다.

만수는 먼저 어머니가 20년간 누워있던 유택자리에도 미국인의 몇몇 고관 그리고 그들과 단짝이 된 자본가들만 출입할 수 있는 많은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이럴수록 우리의 생활은 점점 참담하여 가고 이러한 것을 구체적으로 말할 자유도 없는 이 나라에서는 민중을 위해서 행정․입법이 민첩하게 돌아가는 이런 세상에서 만수와 같은 비천한 몸이 굶어 죽지 않고 연명을 하자니 뒤를 돌아다보거나 어머니의 유택을 찾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어머니에게 호소한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저승에 계신 어느 유공자에게 부탁하여 홍길동의 혈액을 이어받은 만수를 미래를 창조하는 역사의 대열에 참가케 하여 달라고 애원도 한다. 이러는 중에 향미산의 폭발 시각은 임박하여 온다.

‘펜타곤’ 당국이 만천하에 천명한 대로 기계의 점검이 끝나는 7분 후면 홍만수를 폭살하는 작업은 위대한 폭음과 함께 이 향미산은 불덩어리가 되어 흩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홍길동의 정신과 비방을 가진 홍만수는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 이제 남은 10초. 만수는 한 폭의 깃발을 만들어 구름을 타고 제가 맛본 그 위대한 대륙에 누워 양부인들의 배꼽 위에 이 깃발을 꽂아 예수의 기적밖에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선조 홍길동의 그 엄청난 기적을 재연하여 그들의 심령을 뿌리 채 흔들어 놓겠다고 어머니에게 동정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 작가 남정현은 1933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서산 농림학교를 졸업한다. 1958년 단편 <경고구역> 및 <굴뚝 밑의 유산>으로 안수길의 추천을 받아 <자유문학>지를 통하여 등단하고, 1961년 <너는 뭐냐>로 제6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다. 1965년 <현대문학>에 단편 <분지>를 발표하였으나 이 소설이 반공법에 저촉되었다는 이유로 필화를 겪는다. 필화사건 후 <허허선생>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한다. 

 

 

채형복 교수는 프랑스 엑스 마르세유 3대학에서 ‘유럽공동체법’을 전공했다. 이와 관련된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으며 시인이기도 하다.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 <저승꽃>, <우리는 늘 혼자다> 등의 시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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