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 PD 63명 “방송 정상화투쟁 동참” 선언… 기자협회는 제작거부 결의

▲고대영 KBS 사장. [사진 : 미디어오늘]

MBC에 이어 KBS에서도 ‘적폐인사’ 청산을 위한 언론인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1990년 4월 이전에 KBS에 입사한 고참 PD 63명이 지난 18일 “후배들의 방송 정상화 투쟁에 동참하겠다”며 고대영 KBS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KBS에서 ‘1990년 4월’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당시 노태우 정권의 낙하산 사장 임명에 반대해 처음으로 36일 동안이나 파업을 벌여 ‘방송민주화 투쟁’의 고고성을 울렸기 때문이다. 

63명의 고참 PD들은 이날 낸 ‘KBS 개혁을 막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란 성명에서 “왜곡된 체제를 존속시키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부당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세력들이 여전히 반성을 거부하고 있다”고 고대영 사장 체제를 비판하곤 “늦었지만 촛불의 명령에 앞장서겠다”며 고 사장 퇴진투쟁에 적극 나설 뜻을 밝혔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는 고대영 체제를 옹호하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명령불복종이든 제작거부든 가능한 모든 투쟁을 후배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16일 KBS 기자협회도 총회를 갖고 고 사장의 즉각적인 퇴진과 제작 중단 등을 결의했다. 전국의 KBS 기자 516명은 총회 직전 ‘기자들이 앞장서 고대영 체제를 끝내겠습니다’란 성명을 발표, “억압하고 짓눌렀다. 재갈을 물린 채 윽박질렀다. 징계를 남발하고 소송으로 겁박했다. 공영방송 KBS가 KBS의 기자들을 다뤄온 방식”이라며 “그 사이 KBS 뉴스는 이슈와 논쟁을 외면하고, 오로지 권력을 추종했다. 비판의 칼날은 무뎌지다 못해 닳고 닳은 채 녹슬었고, 동어반복과 여야공방으로 점철된 뉴스의 신뢰도는 급전직하했다. 공영방송의 뉴스는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 이제 모든 KBS 기자들이 행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고대영 KBS 사장은 지난해 12월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선정, 발표한 ‘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 적폐 청산을 위한 1차 부역자 명단’에 포함된 인사다. 당시 1차 부역자 명단엔 최성준 당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이인호 KBS 이사장, 그리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고영주 이사장, 안광한 당시 MBC 사장 등 10명이 올랐다.

언론노조는 이들과 관련해 “‘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의 핵심 부역자들로, 이들에 대한 시급한 청산 없이는 언론 장악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 사장에 대해선 특히 “청와대와 여당에 불리한 보도나 내부 비판에 대해 보복성 징계 남발”하고 “국민적 분노와 관심이 집중된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 ‘백남기 농민 청문회’를 생중계에서 누락시키고 세월호 특조위의 2, 3차 청문회도 생중계하지 않음으로써 정권에 불편한 국가 기관의 조사 활동을 은폐하고 물타기하는 데 앞장”섰다고 문제점을 밝혔다. 이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혹이 9월 하순부터 불거지고 기자협회와 언론노조KBS본부가 수차례 전담 취재팀 구성과 심층 보도를 요구했음에도 묵살로 일관한 끝에 국가적 대형 게이트를 낙종하는 보도 참사를 일으키고 이후 보도책임자에 대한 인사조치를 요구하는 노조의 요구도 묵살한 채 이후에도 대통령, 여당 감싸기식 불공정보도 구태를 유지”했다고 덧붙였다. 

[KBS 개혁을 막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분노와 열망이 담긴 글들이 코비스(KBS통신망)를 달구고 있습니다. 광장에서 시작된 변화의 물결이 어느새 KBS 처마 밑에서 넘실대고 있습니다. 이 도도한 흐름을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곡된 체제를 존속시키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부당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세력들이 여전히 반성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상황이 1990년 4월을 떠오르게 합니다.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지켜오던 사장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교체하려는 노태우 정권의 방송장악 의도에 맞서 36일간 싸웠던 일말입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통폐합된 구성원들의 이질성을 고려하면 KBS 최초의 대단한 투쟁이었습니다. 그 시절 일정 정도 독립성과 이를 지키려는 90년 4월 방송민주화 투쟁이 87년 6월 민주대항쟁이 준 과실이라면, 이번은 광장의 촛불시민들이 만들어 준 선물이라고 할까요.

90년 방송민주화 투쟁은 사장 교체로 막을 내렸지만 이로부터 KBS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아마 더 많은 구성원들이 KBS의 역할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고, 제작 자율성과 의사결정의 민주화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독립성에 대한 공감대가 넓게 형성되었고, ‘권력의 손에서 국민의 품으로’ 라는 당시의 구호가 언젠가는 실현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습니다. 민주화가 역행하리라 경계하지 않았던 안이함 때문인지 모릅니다. KBS 독립을 담보하는 제도적 보완을 이뤄내지 못한 나태함 탓인지도 모릅니다. 직업윤리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얕잡아 본 문제일 수도 있겠지요. 수면 아래로 사라지는 듯 보이던 줄 세우기가 슬며시 고개를 쳐들고, 자리 사냥꾼들이 미끼를 무는 사이 공영방송의 책임은 그저 허망한 말로만 남았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엔 내정된 자리에 허울뿐인 공모를 하고, 내외부의 청탁에 휘둘리며 무조건적인 복종을 담보로 한 자리 나누기가 노골적인 행태로 나타났습니다. 공영방송의 역할을 무시한 KBS는 이제 존재마저 시청자들에게서 지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결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KBS 구성원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렇습니다.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쳤든, 얄팍한 당근에 현혹되었든, 소극적 저항에 만족했든, 인간관계 때문에 뿌리치지 못했든, 우리는 우리의 존재 이유를 적극적으로 지켜내지 못했으니까요.

늦었지만 촛불의 명령에 앞장서겠습니다. 촛불은 명령합니다, 공영방송 KBS의 역할을 되찾으라고. 늘 주인이었던 시청자, 국민들의 명령입니다. 선물을 받았습니다.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 기회를 수포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저희에게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 앞잡이들이 계속 설치게 놔둘 순 없습니다. 가슴깊이 묻어 두었던 분노를 담아 다음과 같이 투쟁할 것을 선언합니다.

하나. 우리는 고대영 체제를 옹호하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 우리는 명령불복종이든 제작거부든 가능한 모든 투쟁을 후배들과 함께 할 것이다.

하나. 우리는 반개혁 세력을 끝까지 가려내어 응징할 것이다.

하나. 우리는 KBS가 공영방송의 역할을 되찾는 그 날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1990년 4월 KBS 민주항쟁 참여PD 일동(6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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