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진의 LP로 듣는 한국현대사(34) 양희은 : 아름다운 것들(1972)

▲사진 : 유튜브 캡처

1970년 공화당의 박정희는 3선 개헌을 통해 무리하게 정권을 연장하기로 한다. 이에 맞선 신민당은 ‘40대 기수론’을 앞세운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이 경선을 벌였는데 김대중이 대선 후보로 뽑혔다. 이듬해인 1971년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는 박정희에게 아깝게 패하지만 7대 대통령 선거는 당시 부정행위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른바 지역감정을 자극해 영호남 갈등을 촉발시킨 문제의 선거로 남아 있다.

이렇게 어렵게 선거에서 승리한 박정희는 남북관계에서 갑작스런 유화정책으로 남북 적십자회담을 진행하고 1972년 ‘7.4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한반도를 통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끌어 오르게 만들었다. 박정희 정권은 겉으로는 이렇게 통일 분위기를 띄워 국민의 눈길을 돌리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자신의 대통령 종신제를 보장할 유신헌법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어 박정희는 일사천리로 영구집권 시나리오는 실행하였다. 8월 ‘경제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제15호'를 발표, 10월 유신 비상계엄 선포, 11월 유신헌법 국민투표 통과, 12월 간선제 기구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 단독 출마 100% 지지 당선으로 박정희는 8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이렇게 되기까지 유화 국면에서 국내 대중가요계에는 청년들 저항음악의 상징인 포크와 록음악이 매우 빠르게 퍼져나갔다. 포크에서는 한대수, 김민기, 서유석 등이 활동하였고, 록음악에서는 신중현, 키보이스, HE6 등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렇게 남성 중심의 음악계에서 여성 포크 가수로 데뷔한 가수가 바로 양희은이었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YWCA ‘청개구리의 집’ 등에서 일찍부터 노래를 시작한 양희은은 재수시절 만난 김민기와 함께 대학 1학년 때인 1971년 김민기의 자작곡과 외국 번안곡 등을 묶어 첫 음반을 발표했다. 1972년에는 대부분 김민기의 곡으로 꾸민 정규 2집 앨범을 발표했다.

이 음반에는 대학가 포크음악의 거장들이 대거 참여한다. ‘아름다운 것들’은 이화여대 출신의 국내 1호 싱어송라이터인 방의경이 작사하였으며, ‘세노야, 세노야’를 작곡한 서울대 김광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개그맨으로 알고 있는 고영수씨, 현재 대형연예기획사인 SM의 대표인 이수만, 그리고 당시 기타의 귀재였던 김근식 등이 참여했다. 여기에 재즈음악인인 정성조까지 합세해 만들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이 음반에 수록된 ‘인형’이란 곡에서 나오는 휘파람 소리를 조영남이 맡아 불렀다는 것이다.

당대 재주꾼들이 모여 만든 양희은의 2집은 산업화 시기의 척박함을 서정성과 포크 특유의 감성인 저항성에 적절히 버무린 것으로 평가 받은 한국 포크음악의 걸작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걸작은 얼마가지 못해 대중들과 격리되어야 했다. 이 음반에 실린 곡들 대부분이 유신의 시작과 함께 ‘금지곡’이라는 철퇴를 맞은 것이다.

다른 곡들은 이유라도 있지만 ‘작은 연못’은 이유도 없었다. 무조건 금지곡이 된 것이다. ‘작은 연못’이 금지곡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그저 억측만 난무할 뿐이다.

'작은 연못에 살던 붕어 두 마리가 싸우다 한마리가 죽어 물이 썩어 결국엔 모두가 죽었다'는 것을 줄거리로 한 가사에 등장하는 ‘붕어 두 마리’가 남한과 북한, 또는 당시 대권 라이벌이던 박정희와 김대중, 아니면 박정희 정권 2인자 자리를 두고 암투를 벌인 김종필과 이후락을 연상시킨다는 이유였다는 소문만 돌았다. 양희은 2집 음반에 실린 대부분의 노래들은 1987년 해금되기 전까지 4반세기 가량을 대중과 접촉이 차단된 채 대학가에서만 구전되어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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