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서평회와 1232차 수요집회를 보며

“박유하라는 지식인이 이런 책을 쓴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역사가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해주는 것이다. 미국에서 홀로코스트 소송을 걸어서 법정과 합의를 통해 70억불 합의금이 마련됐다. 한일합의 800만 불을 비교한다면 이건 말도 안된다. 홀로코스트 문제가 타결된 것은 재판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론을 통해 법정과 합의해서 이룬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아시아의 홀로코스트다. 이걸 국제무대에서 세계사적으로 밝혀야 한다.”(원코리아 대표 정연진씨)

▲ 사진제공 : 미국OK원코리아 정연진 대표

지난해 12월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밀실합의 파문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제국의 위안부>를 펴낸 박유하씨에 대한 여론소송이 될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의 작가들이 지난 25일 국회의원회관에 모였다.

손종업 선문대교수를 비롯해 평화어머니회 대표인 고은광순, 미국 OK원코리아 정연진 대표 등 20명의 작가가 공동집필한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할머니들에게 또 한 번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준 ‘박유하’라는 제국의 변호인에게 날리는 일종의 비판화살이다.

도쿄조형대학 교수이자 일본민주법률가협회 이사인 마에다 아키라 교수와 미국 법정에서 홀로코스트 소송을 타결한 국제인권변호사 베리 피셔의 인터뷰 글도 실렸다.

이날 20여명이 조촐하게 모인 서평회였지만, 공동 집필자이자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12.28한일 졸속 합의에 분노를 담아내며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에 어떤 내용을 담으려고 했는지 각자의 의도를 전했다.

▲ 사진제공 미국OK원코리아 정연진대표

손종업 교수는 책 제목을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로 정한 이유에 대해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이 얼마나 경솔하고 비학문적이며 어느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언어인가?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언어다”라며 박유하씨가 마이니치신문사에서 ‘아시아/태평양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수상을)사퇴하지 않는 이유'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망명을 <제국의 위안부>가 대신 해내고 있는 셈"이라고 소감을 밝혔는데, <제국의 위안부>를 읽다보면 박유하가 정신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일본국과 동지적 관계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제국의 변호인'이라고 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국의 변호인'이라는 수사는 말 그대로 일본 제국, 일본 정부, 일본 군인을 변호함을 의미하고 저자 박씨는 형식적으로는 양측에 화해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늘 일본 정부, 일본 제국의 편을 들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덧붙였다.

베리 피셔씨를 인터뷰하고 이번 서평회를 위해 미국에서 온 정연진 원코리아대표는 12.28 한일 졸속합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당사자들인 피해자들의 요구는 반영하지 않고, 피해자가 수용할 수 없는 방식과 내용으로 협의해버렸다“며 피해자 중심의 접근이라는 인권원칙이 무시됐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고 법적인 책임 또한 전혀 인정하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을 지원하려고 설립한다는 재단도 피해국인 한국 정부에 떠넘겼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미국이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는 집요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한미일 군사동맹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 문제를 여성인권의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서평회에서 발제를 맡은 고은광순씨는 ‘개같은 일본을 조심하라’했던 수운 최제우 선생의 이야기를 전하며 “19세기부터 조선을 약탈해온 일본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 군인이 필요했고 그 군인들을 위해 성노예가 필요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박유하씨는 치졸한 짓을 했다”며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제공 미국OK원코리아 정연진대표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 과거사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도폭력”이라고 규정하곤 “2차 대전 때 나치에 의한 여성의 성폭력 문제는 이제서야 유럽 여성학계에서 얘기가 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빨리 이 문제를 세계적인 이슈로 만들었고 그 배경에는 한국의 여성운동의 힘이 있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제도 폭력에서 지속될 수 있다. 여성 차별, 성폭력 등 이건 지금도 당할 수 있고 내가 (피해자가)될 수도 있다. 이 문제의 책임은 차별적 구조를 생산하고 지지하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일본이 사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과정이 중요하고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 근절할 순 없겠지만 줄일 수 있고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모두의 각성과 성찰을 원한다”며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문제이고 여성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를 펴낸 ‘도서출판 말’ 최진섭 대표는 “이 책은 박유하라는 제국의 변호인을 내세워 전쟁범죄를 부정하려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흐름을 밝혀내기 위한 책”이라며 “박씨가 어느 나라의 사람인가는 중요하지 않으며 단지 국가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 인권의 문제에 대한 진실을 전하고 싶었다“고 책 출간의 취지를 전했다.

▲25일 정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선 123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열렸다. 이날 수요집회는 일본 민간단체인 ‘헌법 9조-세계로 미래로 연락회’(9조련)가 주관했다.[사진출처 : 정대협 페이스북]

서평회 이틀 뒤인 25일 정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선 123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열렸다. 이날 수요집회는 일본 민간단체인 ‘헌법 9조-세계로 미래로 연락회’(9조련)가 주관했다.

9조련은 일본이 전후 채택한 헌법 9조(전쟁포기, 전력 및 교전권의 부인)를 지키며, 전쟁을 반대하고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그동안 일본 정부에 의한 헌법 9조 개악 시도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2008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수요시위를 직접 주관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적극 연대하고 있는 9조련은 이번 집회가 9번째 주관하는 것으로 피해자 부재의 ‘한일 합의’와 ‘평화비(소녀상)’ 철거 반대, 아베 정권에 의한 “전쟁이 가능한 국가”에 반대하며, 일본 민중의 책임과 의무로서 평화와 인권을 위한 평화헌법 9조를 수호하는 투쟁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안고 가는 두 행사는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씨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그대, 그대로 여성인가? 그대가 진정 여성이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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