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민이 이 영화를 꼭 봐야한다는 책임감을 갖길 바라며

▲지난 25일 왕십리 CGV에서 열린 영화 "군함도" 시사회에서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유족 구연철(87)씨와 징용 피해자 유족인 이희자(76)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파워와 함께 사회 문화적인 소프트 파워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규정시켜주고 내면적 세계를 서서히 지배하게 되기 때문에 개인들은 인식조차 못하고 비이커의 개구리가 서서히 알코올 램프에 의해 죽어가듯 누군가의 생각에 지배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은 어떻게 나의 생각이 되었을까?’ 라는 질문은 교육의 중요성과 주체적 삶을 생각하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난 몇 년 또는 짧게는 몇 달 동안 강제징용의 가슴 시리고 아픈 역사를 알리려 노력해 왔다. 작년에는 급기야 일본의 단바 망간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하기에 이르렀고, 올해는 강제징용의 상징적 장소인 용산역에 건립을 하기 위해 지난 1차 3월1일로 추진하였으나 박근혜 정부의 적폐적 행위로 인해 무산되었고 이후 80일 동안 용산역에서 시민들과 국민들을 만나 하루도 안 빼고 1인 시위를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대중적 관심을 이끌어 내기에는 쉽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군함도 영화제작이 발표되고 개봉일이 확정되면서 여론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이런 것이 소프트 파워인 것이다. 외치고 주장하지 않아도 문화적 콘텐츠로 대중들을 움직이고 결집시킬 수 있는 힘 그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제작사의 기획으로 양대노총과 강제징용노동자상 추진위, 언론인, 피해자분들을 위한 시사회가 7월25일 개최되었다. 7시 상영예정이었으나 5시가 넘어서자 참석자들은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였으며, 이미 얼굴들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드디어 개봉 전 간단한 행사에 이어 군함도의 첫 장면이 긴장감 속에 펼쳐졌다. 모두가 숨을 죽였고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1945년 2월 이미 일본의 패망이 예상되던 그 시간에도 일본은 강제징용 노동자들을 징집하는데 더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저 취업이라 생각했던 이들도 있었고, 소개서를 보여주면 특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으나 이는 일본의 계략이었고 위장술이었다. 생전처음 기차와 화물선을 탔던 조선 강제징용자들은 구토와 멀미로 시달리다 시모노세키항에 내려 각자 애를 써 보았지만 이미 예정되어 있던 절차에 따라 기차로 후송되는 것이었다. 그 한 장면 모두가 소개를 받았다고 하면 자신만은 특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던 그 소개장들이 시모노세키 항을 부질없이 흐트러져 날리고 있었다. 앞날을 예견해 주듯이 말이다.

나가사끼 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며 그들의 눈에 처음 들어온 안개속의 군함도의 모습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그들의 운명을 복선으로 깔아놓는 듯 했다. 마치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사냥꾼처럼 일본인들은 몽둥이와 발로 도착하는 강제징용자들을 짐승처럼 구타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남녀를 구분하여 별도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충격과 공포의 시간으로 그 지옥의 섬의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상상하지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지옥의 모습을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었다. 두고 왔던 부모님, 아내, 친구들의 모습이 스칠 시간도 없는 용광로 속의 시간이었으리라.

▲ 영화 군함도

모두가 삶이었다. 다양한 모습의 삶. 살기 위한 몸부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환경에서의 생존투쟁. 

굉음과 함께 쇠줄 하나에 매달려 막장으로 향하는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지하 1000미터의 막장으로 내던져졌다.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몸 하나 누워 들어가기조차 작은 막장으로 처넣기 시작했다. 뜨거운 증기와 가스가 분출하고 곳곳에서 새어 나오는 해저 침출수 속에서 팬티 하나 걸치고 오로지 석탄을 캐는 도구로 전락해버린 강제 징용자들의 모습이 생생이 재현되자 이내 곳곳에서 한숨과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옆에 계셨던 피해자 분께서는 귀에 대고 “저렇게들 지냈어”하시며 가슴을 쓸어 내리셨다. 쥐들이 뛰어다니는 배식 모습, 가스 분출 폭발사고로 어린 소년이 사망하는 모습, 급기야 석탄을 실은 무개화차 사고로 갱도가 폭발하는 모습이 엄청난 음향과 함께 극장 안을 가득 채우자 관객들은 몸을 움츠리며 마치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을 느끼는 듯했다. 그랬다. 군함도에서는 수없이 많은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마치 노예와 같이 그 시간을 보냈고 지금까지 잊혀져 있었던 것이었다. 관객들을 더 흥분하게 하고 분노하게 했던 건 또 있었다. 

군함도에 도착하여 작업에 투입되는 모습과 함께 일본 노무계의 방송이 그것이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오는 모든 일정의 교통비, 식사비 그리고 군함도에서 지급되는 모든 비품과 숙소사용비등 모든 비용은 이미 그들에게 빚으로 책정되어 있었고, 쥐꼬리 만도 못한 임금에서 삭제해 나가고 부족하면 그 다음 월급에서 공제한다는 것이었고, 그 임금마저도 일방적으로 자신들이 관리하거나 연금 등에 출연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노동착취였고 임금 강탈이었던 것이었다.

아픔은 더 가중되어 갔고 그 아픔을 가중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이었고 그 사람이 같은 동포인 조선인이었다. 여주인공인 오말년(이정현)은 최칠성(소지섭)에게 오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말을 남긴다. ‘나를 이런 일을 하게 만든 것도 조선인이고, 나를 섬으로 팔아넘긴 포주도 조선인이다.’ 식민지배의 전쟁하에서 당할 수밖에 없는 민간인들의 처절하고 참혹한 삶이 민낯으로 우리 앞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정치인들과 기성세대의 과오로 국가를 잃은 나약한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은 고난과 고통뿐이었다. 이것으로도 아픔은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무거운 추 하나를 더 달게 한다. 

역시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탈출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이었다. 민중의 단결 모습에서 촛불혁명의 불길을 느낄 수 있었고 카타르시스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민중은 하나로 단결될 때 무엇이든 해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기꺼이 그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치열한 전투 장면과 탈출 장면에서는 어떻게든 내가 못 나가면 누구라도 나가야 한다는 절실함과 처절함이 녹아나며 군함도가 얼마나 강제징용 노동자들에게는 지옥의 섬이었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도 탈출하고 싶어했던 곳인가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함께 할 수 있고,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사랑의 가치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국가도 개인의 행복한 삶을 파괴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다. 

그렇게 죽어갔다. 수없이 많은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조차 모르게 죽어갔다. 그 죽음의 현장, 지옥의 현장에 조선의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고 살아있는 역사인 것이다. 우리가 몰랐다고 일본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진실이 사라지거나 바뀌지 않는다. 

군함도는 말한다. 화려한 휴가의 여주인공이 광주의 뒷골목을 방송차로 다니며 외쳤듯이 “우리들을 잊지 말아 주세요!” 라고. 
 
이제 군함도 영화가 막이 올랐다. 많은 국민들이 이 영화를 꼭 보길 바란다. 아니 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말하지 않았을 때 몰랐다면 보여줄 때 보고 느끼고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죽은 양심이다’란 말이 있듯이 알고 깨닫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역사를 밝혀내고 명예를 회복시키고, 그 만행을 저질렀던 전범기업들을 심판하고 일본이 사죄하도록 해야 하며 늦었지만 실질적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군함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단결했던 그 절실한 마음으로 함께 했으면 좋겠다. 또한 이러한 역사가 잊혀지지 않고 왜곡되지 않도록 우리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올바른 교육이 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진상조사를 실시함은 물론 교육과정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잊혀진 역사를 무덤에서 깨어나게 한 영화관계자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힘들게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모든 강제징용 노동자분들과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과 용기 내시라는 말씀을 드린다. 많은 국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용기를 가지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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