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담, 자주적 중립외교로 한 발 더 나갔어야

▲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현지시간) 베를린시청 베어홀(Bear Hall)에서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연설에서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을 밝혔다. △핵과 전쟁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추구,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새로운 한반도 신경제지도, △일관성 있는 비정치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 등 ‘5대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당면실천과제로 △추석 이산가족상봉,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 행위 상호 중단 등을 제안했다. 이번 기회에 남북정상회담도 공식 제안했다. 남북관계를 풀기위한 새정부의 큰 그림을 내놓은 것이다.
제일 첫머리에 ‘6.15, 10.4선언으로 돌아가자’고 천명하고, ‘남북합의의 법제화’, ‘평화협정 체결’을 제기한 것,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리고 핵심에 ‘10.4선언의 이행’이 있다고 언명한 점, 오는 7.27을 계기로 ‘일체 적대행위를 중단’하자고 제안한 것 등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격화시켜놓은 남북대결상태를 놓고 보면 획기적인 진전이며, 의미있는 청사진임에는 틀림이 없다. 특히 지난 한미정상회담 직후 곧바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자 하는 새정부의 의지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언적 평화구상을 넘어 남북관계 개선의 보다 구체적인 계기를 마련하고, G20 정상회담 공간을 통해 한국의 주도권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외교무대로 활용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여러 군데 보인다.

우선은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변화를 예민하게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북한의 ICBM 발사성공은 사실상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관계국들에게 ‘전쟁이냐? 대화냐?’를 선택해야 하는 중대사였다. 이 계기를 통하여 전쟁과 평화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 중의 하나인 한국은 새로운 협상국면을 열어가는 지렛대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나 최후통첩성 “북한의 도발 중단”을 촉구하고, 한미일 삼각공조까지 해가면서 “감내못할 북 비핵화 유도”라는 낡은 정책을 반복하는데 앞장서기만 했다.
상황은 명백하다. 미국이 최근 중러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쌍중단(북의 미사일 발사 동결과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정도의 안을 가지고 북미협상의 입구를 열지 않고, 계속 일방적인 대북제재만 강화한다면 멀지 않은 시기에 한반도 상황은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를 것이다.
이미 북한은 ICBM 발사시험 성공 직후 “미국의 대(對)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케트를 협상탁(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편 미국은 이미 안보리에서 대북석유공급중단, 각국에서 북한 노동자들 추방, 금융제재의 강화라는 대중국 압박을 강화하고, 이것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독자행동에 나서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비록 ‘평화적’으로 비핵화를 달성한다고 전제했지만, ‘군사적 옵션’도 가능하다는 말을 잊지 않고 달았다. 이렇듯 앞으로 정세가 더욱 격화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한반도 평화구상이라는 꿈은 희망차지만 눈앞의 정세는 최고의 대결상태가 펼쳐질 것으로 예측된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이 획기적인 제안임에는 틀림없으나 한가롭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중정상회담에서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어차피 사드문제는 미중 양국 모두 환경영향평가결과를 기다리게 하면 되는 것이지만, 대북관계에서 중국의 입장을 더욱 경청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취했어야 했다. 이번 한중정상회담은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주도권을 강화하고, 길게 보면 자주적인 중립외교로 전진해 나가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또한 중국이 대북관계문제는 중국의 역할이 아니라 미국이 답을 내놓을 문제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형편에서, 중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한중관계를 강화하며, 중미간 전략대화에서 한국이 가교역할을 하겠다는 식의 접근이 되었다면, 한국정부의 발언권도 높이고, 경제보복도 완화시킬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중국에게 사드철회는 들어주지않고 미국이 요구하는 대북제재에 더욱 힘을 써 달라는 수준에 머물렀으니, 한중정상회담에서 의미있는 진전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뭐니뭐니해도 한반도 문제의 핵심당사자는 남과 북, 우리 민족이다. 전쟁을 겪어도 그 참화를 뒤집어쓰는 것은 우리민족이고, 평화가 와도 그 해택을 누리는 것은 우리 민족이다. 이 중대한 역사적 시기에 전쟁을 위한 한미동맹을 평화를 위한 한미동맹으로 전환하고, 북미관계를 평화적 관계로 전환하는 난제 중의 난제를 풀어가는 것이 쉽지않을 터이다. 그러나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파워게임의 룰도 바뀌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 딜레마적 환경과 조건을 보다 당당하고 슬기롭게 풀어가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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