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한미관계 이대로 좋은가?(끝) - 대미 종속경제

미국은 한국에 어떤 존재이길래 대통령에 당선되면 가장 먼저 방문할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터뜨려 우리민족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준 나라. 6.25전쟁에 참전해 이남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준 나라. 무상원조로 한국경제를 일으켜 준 나라. 군사작전권을 넘겨받아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는 나라’일까? 기획연재, ‘한미관계 이대로 좋은가?’에서는 미국 그 이면에 숨은 적폐를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재조명 해본다. [편집자]

(1) 5.18광주 학살과 5.16쿠데타의 공통점 – 미국의 국내정치 개입
(2) 맥아더 포고령, ‘일장기 대신 성조기’ – 분단과 청산하지 못한 친일
(3) 정전협정문에 대통령 이승만은 왜 이름 빠졌나? – 군작전지휘권
(4) 사드, 문재인 대통령 뜻대로 안되는 이유? – 한미상호방위조약
(5) 미군, 아직 한반도에서 전쟁 중 – 한미합동군사훈련
(6) 두 여중생의 죽음, 15년이 지난 오늘 미군은? – 주한미군 범죄와 SOFA
(7) 미국이 좋은 걸까? 무서운 걸까? – 숭미 사대주의
(8) 미국, 경제 원조에서 FTA 재협상 압력까지 – 대미 종속 경제

 

▲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공식SNS]

트럼프, “한미FTA는 불공평한 협정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한국과 바로 (재협상을)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무역적자)지속을 허락할 수 없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착수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FTA가 한미 양국 중 어느 쪽에 유리한 협정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미국의 원조로 시작한 한국경제가 미국으로부터 공정한 협정을 요구받은 사실은 역사적 아이러니라 할만하다.

▲ 미국의 원조로 경제부흥계획을 수립한 1953년, 미국 타스카 사절단이 이승만 당시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 국가기록원]

미국의 원조와 한국경제의 기형화

한국경제를 자본 도입 형태에 따라 구분하면, 1950년대는 ‘원조경제의 시기’, 1960년대 후반부터 차관이 원조보다 많아지면서 ‘차관경제의 시기’라고 부른다.[표1]

원조액에서 미국 원조가 차지하는 비중은 75%였다. 물론 유엔을 통한 원조에서도 미국의 출연금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 시기 원조의 대부분은 미국이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 <표1> 년도별 원조금액 변화. [자료 국가기록원]

문제는 원조의 형태인데, 가령 식량 증산을 위해 비료를 도입하는 것과 비료의 국내 생산을 위해 비료공장 건설에 필요한 생산재를 도입하는 것은 향후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서 엄청난 차이를 발생시킨다.

미국은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밀가루, 비료와 같은 소비재를 원조했다. 이렇게 되어 한국경제는 출발부터 중요한 기간산업을 수입에 의존하고, 내수의 2배 이상을 수출로 연명하는 기형적인 대미 종속경제로 전락해 버렸다. 

미국은 전쟁과 약탈을 통해 확보한 엄청난 양의 잉여 생산물을 한국에 무상으로 원조하여 대미 의존형 경제체제를 구축했다. 

이후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경제의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자 차관에 따른 이자 수입과 함께 막대한 투기자본을 진출시켜 가차 없이 ‘빨대질’을 시작했다. 그 빨대질이 극에 달해 일어난 사건이 바로 IMF 금융위기다. 

IMF는 수출주도형 경제가 부른 대재앙

원조와 차관으로 시작한 한국경제는 대표적인 수출주도형 경제체제다. 

한국은 외국자본을 더 많이 도입함으로써 원화 가치를 떨어트려 그 반사이익으로 수출을 증대시키는 시스템으로 굴러간다. 

그런데 90년대 말 금리를 인상한 미국의 내수가 축소되고 수입이 감소하면서, 미국으로의 수출에 의존하던 한국은 수출 길이 막히게 된다. 

생산된 물품을 판매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량으로 유치한 달러의 금리가 인상되니 미국에 갚아야 할 돈만 늘어난다. 

그 상황에서 수출을 늘리기 위해 원화 가치를 떨어트리는 순간 갚아야 할 돈이 더 크게 늘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돼버린다. 

원화 가치를 못 내리니 수출은 안 되고, 이미 계약된 수입물품의 대금을 지불해야하는 기업은 빈털터리가 된다. 

결국 쌓아둔 물건을 싼값에 팔아넘기기 시작하고, 그러고도 모자라 단기부채를 끌어오게 되면서 IMF(국제투기자본)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IMF시절 ‘부도’와 '도산' 소식이 줄을 잇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만약 해외자본(미국 달러) 유치를 적정선에서 유지하고, 수출에만 의존하지 않고 내수시장 안정화에 힘을 기울였다면 IMF라는 재앙은 오지 않았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미국이 빨대를 꼽기 위해 밀가루를 퍼줄 때 공짜라고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고, 박정희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밀어붙일 때 재앙이 잉태된 줄 몰랐고, ‘수출만이 살길이다’고 떠들어 댈 때 그 입을 막지 못했으니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미국의 경제위기와 한미FTA 

쌍둥이(무역, 재정) 적자를 이어오던 미국 경제에 예고된 파란이 일어났다. 2008년 미국에서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른 모기지론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미국이 기침만 해도 한국경제는 독감에 걸린다는 판에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고 간 초대형 사고가 터졌으니 우리 경제가 풍비박산난 것은 당연지사. 

이 와중에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 2008년 대한민국 국회에 제출돼, ‘광우병’ 파동을 일으켰다. 

극심한 반대 여론에 몰려 3년 넘게 재협상을 거듭하던 한미FTA는 2011년 이명박 한나라당의 날치기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국회의사당에 최루탄을 뿌리며 격렬히 저항했다. 

▲ FTA 재협상을 두고 ‘퍼주기’ 논란이 거센 가운데 김종훈 한국측 협상대표가 “한미 우호관계가 강화되는 것이 관세를 몇 년 더 내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FTA 재협상을 두고 ‘퍼주기’ 논란이 거센 가운데 김종훈 한국측 협상대표가 “한미 우호관계가 강화되는 것이 관세를 몇 년 더 내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해 한미FTA가 미국을 위한 협상이었음 확인시켰다. 

이처럼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 특히 군사동맹을 이유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

당장 이번 한미정상회담만 봐도, 중국의 경제보복을 감수하면서 사드를 배치해야 하고, 1조5000억 원이 넘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인상하고, 한미FTA를 미국에 더 이롭게 재협상하자는 압력을 받고 왔다. 

마치 조선시대 망해가는 명나라에 울며 겨자 먹기로 조공과 병사를 보내야 했던 광해군의 처지가 떠오른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