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현 작가, 소설집 출간

특이한 소설집이 나왔다. 남정현 소설집 <편지한통, 미제국주의 전상서>라는 책이다. 정통 반미소설이다. 

‘편지한통- 미제국주의 전상서’, ‘신사고’, ‘분지’라는 단편 3개를 묶은 이 소설집은 짧지만 읽고 나면 대하드라마를 읽은 듯하다. 형식은 편지, 우화적이고, 해학과 풍자가 가득 담겨있어 재미 또한 쏠쏠하다. 현대적 감각보다는 홍길동전이나 구운몽 같은 옛소설을 대하는 느낌으로 읽으면 그 풍미를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남정현 작가는 <분지> 필화사건으로 유명하다. 이번 소설집에도 실렸다. <분지>는 <현대문학> 1965년 3월호에 실렸다. 이 소설이 북한 <통일전선>에 실리면서, 남정현 작가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북한의 누군가가 써서 건네준 것일 터이니 그 접선 내용을 밝히라”고 추궁을 당했고, “다시 소설을 쓰면 손목을 똑 잘라 버리겠다”고 협박을 당했다. 남정현은 반공법 위반으로 법정에 선 첫 작가가 되었다. 소설 <분지> 사건은 “문학작품 반공법 기소 제1호”라고 불린다. 

남정현은 1974년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긴급조치 해제로 석방되었다.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신경안정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편지한통- 미제국주의 전상서>는 “14년 침묵을 깨고 40일만에 써내려”간 소설이다. 2011년 계간 실천문학 봄호에 실린 것을 이번에 다시 소설집 제일 앞에 묶었다. 지금 정세가 당시 정세와 너무 흡사하니 마치 최근에 쓴 소설같다. 

"세상에 당신이 원 내게 이럴 수가 있으신가요. 그저 기회만 있으면 당신의 앞길을 가로막으려고 생발광을 떠는 북쪽의 빨갱이 집단을, 당신의 그 결정적인 역사의 장애물을 이제 완전히 제거했으니 기뻐해 달라는 그런 감동적인 소식은 전해주지 못할망정, 아니 이게 무슨 망측한 소리죠? 당신이 빨갱이 그것들과 무슨 평화협정을 맺으려고 한다니 말입니다."(남정현 소설집 <편지한통, 미제국주의 전상서>, 도서출판 말, 35쪽) 

국가보안법으로 대변되는 수구집단이 북미간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고 미제국주의 상전에 항의하는 편지 내용이 소설의 줄기이다. 정세를 잘 모르는 초보자도 북미정세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을 의인화해 놔서 재미도 있다. 

<신사고>는 70년대 <허허 선생> 연작의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허허 선생> 연작은 이땅 민중의 불행과 고통을 가하는 원흉들의 반인간적, 반민족적인 몰골과 시류에 따른 변신술을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분지>는 ‘홍길동의 10대손’인 홍만수 일가족의 이야기를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그렸다. 독립투사 아버지, 미군에 강간당한 뒤 미쳐 죽고만 어머니, 미군의 첩이 된 누이, 그리고 그 미군의 아내를 납치한 홍만수 등을 통해 한국현대사를 극적으로 그렸다. 오늘의 시선에서 보면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비평도 제기되고 있다. 

▲ <편지한통> 소설집 출간을 축하하는 만남의 자리에 소설가 문영심, 이수경, 시인 유영초 등이 함께했다. 

지난 26일 대학로에서 몇몇 지인들이 소설집 출간을 축하는 자리를 함께했다. 남정현 작가는 최근 “구술이 아니면 집필이 불가능하다”며 손도 많이 떨었다. 야만의 시대가 찍어낸 화인이 몸 곳곳에 남겨져 있지만, 눈빛은 어린 아이보다 더 맑았다. 

“문학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 작가는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적 조건과 관계에 대한 통찰이 있을 때, 인간에 대한 참된 사랑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고 자신의 문학관을 말했다. 

또한 “4.19, 6월항쟁, 촛불항쟁” 같은 것을 “인간의 최고예술”이라고 말해 그가 문학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왜 반미소설만 쓰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5.16 때 박정희가 끌고나온 탱크에 ‘U.S.A’라고 새겨져 있었다”는 말로 대신했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이렇게 평했다. “남정현의 소설은 한 시대의 갈등과 모순을 마치 전자현미경처럼 확대시켜 이를 만화풍으로 소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치 거리 조절이 잘못된 만화풍 사진처럼 남정현이 그리고 있는 현실적 모순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폭소와 당혹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내 그 황당한 이야기 속에서 날카로운 칼날을 느끼곤 섬뜩해짐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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