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단일팀 구성 제안 과정에서 나타난 남북의 간극
2017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전북 무주에서 24일부터 30일까지 7일간 진행 중이다. 개회식에 북한 태권도시범단의 시범공연이 펼쳐지면서 문재인 정부 이후 첫 남북 체육교류가 이뤄졌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개회사를 통해 내년 2월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북단일팀 구성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최초로 남북단일팀을 구성해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영광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다시 보고 싶다”고 밝히고, “남북선수단 동시 입장으로 세계인의 박수갈채를 받았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며 “북한 응원단도 참가해 남북 화해의 전기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단일팀 구성 제안은 대선후보 시절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것에 비해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신임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체적으로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남북단일팀 구성을 추진할 뜻을 밝힌 데 이어 일부 종목 경기를 북한에서 치르는 방안을 거론한 것 등을 감안하면, 남북스포츠교류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풀고 대화의 물꼬를 튼다는 의미에서 문 대통령의 제안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시범단을 이끌고 대회에 참가한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의 반응은 의외로 신중하다. 문 대통령이 “평화를 만들어 온 스포츠의 힘을 믿는다”고 말한 것에 대해 장웅 IOC위원은 “스포츠 위에 정치가 있다”고 대답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장 위원은 1970년 미·중 핑퐁외교를 거론하며, “정치적 지반이 다져졌기 때문에 핑퐁이라는 촉매제를 이용해서 (미·중 수교가)된 것이다. 세계는 핑퐁으로 다 됐다고 하는데 아닙니다”라며 매우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물론 “여기서 들은 것은 (북한에 가서)액면 그대로 전달하겠다”, “(단일팀 구성은)IOC가 개입해야 한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페막식날 한국에)오면 논의될 것”이라고 말해 가능성을 열어놓기는 했지만 남북 대화와 교류에 대한 북측 입장은 다른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남북 스포츠 교류는 꽉 막힌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이 처음 단일팀을 꾸려 여자 단체전 우승을 이끌고, 그해 6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도 남북 단일팀이 8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올리면서 그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 기여했다.
2002년 6월 서해교전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을 때 그해 9월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하면서 위기에 빠진 6.15공동선언의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었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북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비서 등 최고위급 인사들이 폐막식에 참석해 휴전선 지뢰사건으로 경색되어 있던 남북관계에 숨통을 틔웠다.
이러한 경험에 근거하여 문재인 정부는 정치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스포츠·문화 교류, 이산가족 상봉 등을 계기로 무너진 남북관계를 우선 회복하고, 점차 정치군사적 관계로 높여가는 접근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오는 8월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종료되는 직후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추진하고, 10.4남북정상선언 10주년 행사를 통해 남북 화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연내 남북대화 재개’를 목표로 잡고 있다는 것이 세간의 관측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진적 프로세스가 합당한지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속도를 완만하게 높여가는 식으로 남북대화를 진행할 국면도 아니고, 또 조건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정세상 가장 중요한 국면은 8월에 올 수 있다. 곧 진행될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오는 8월에 있을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오히려 가장 격렬한 긴장고조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내년 2월 평창올림픽을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계기로 보는 것은 한가한 접근일 수도 있다.
또 한미정상회담이 준비 기간 중에 “트럼프 대통령의 격노”, “사드 철수 우려”, “한미동맹 균열” 등 왜곡보도와 주장으로 나타난 수구세력들의 준동과 반격이 더 우심해지면 우심해졌지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문 대통령의 평창올림픽 단일팀 구성 제안에 장웅 위원이 신중한 반응을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 수구보수언론은 “비현실적 제안”이니, “실무적으로 촉박하다”느니, “대북제재와 단일팀은 양립할 수 없다”느니 하면서 김빼기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정상회담 이후에 보다 더 전격적이고, 공세적으로 남북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미 국민들은 지난 주말 미대사관 인간띠잇기를 통해 민심의 향방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미정상회담에 임하는 문재인 정부에 크게 힘을 실어주었다.
우선은 한미정상회담을 당당하게 임하는데 집중하되, 이후에는 촛불항쟁의 힘을 믿고, 개성공단 재개 등을 포함한 보다 전격적이고 과감한 제안을 내놓아 남북대화의 기반 조성에 속도를 더 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