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 동결하면 미국은 무엇을 할지가 없어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문제 해결방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이른바 2단계 해법이다. 당장 북한의 비핵화가 어려우니 중간 단계로 핵동결 단계를 설정하여 추가적인 핵 개발을 저지하고, 긴장완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북한의 비핵화로 나간다는 구상이다. 핵동결로 나가기 위한 입구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면 한미군사훈련을 축소하여 대화의 계기로 삼자는 방안도 문정인 특보를 통하여 일단 공론화하였다. 이전 적폐정권들의 무조건적인 북 비핵화와 적대적 주장보다는 현실을 반영한 방안이다. 

하지만 조선일보 등 수구언론들은 웜비어의 사망으로 북미간 정상회담은 더 멀어졌고, 미 의회 역시 북에 대한 강경대응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접근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폄하한다. 미국은 북에 대한 적대적 제재를 더 강화하는 판인데 문 대통령은 미국의 의중과 동떨어진 대화 주장이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일부 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외교안보 라인을 ‘자주파’로” 채우고 “남북대화의 조건을 미묘하게 바꾸는 등 조급증을 보이다가는 더 큰 안보 위협을 자초”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마저 놓았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자주파가 아닌 게 더 큰 문제임을 이들은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수구보수언론들은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북의 선비핵화, 대북 제재와 압박 외에 다른 말은 할 줄을 아예 모르는 것 같다. 

한반도 문제의 2단계 해법은 이미 미국에서 제시된 방안이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나 지그프리트 해커 전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소장 등은 일찌감치 북과의 핵 동결 협상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뉴욕타임스나 CNN 역시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트럼프 정부보다 앞서 현실적 대화를 제안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북의 ICBM 시험발사 중단과 한미연합훈련의 연기 내지 조정 제안을 담은 칼럼을 게재하였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스승”이라고 한 미 외교협회(CFR) 리처드 하스 회장 역시 지난 20일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주최한 강연에서 북의 비핵화를 “비현실적 목표”라 규정하고는 “북한 핵 능력을 동결하거나 상한선을 그어놓고 (북한 핵시설에 대해)핵사찰하는 것을 두고 외교적 협상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해 핵 폐기 이전 단계로서 핵 동결 협상을 국내에서도 공론화시켰다. 그는 이미 지난 3월 미 외교협회 웹사이트에 <북한에 대해 시간이 다 되었다(Out of Time in North Korea)>는 제목의 칼럼과 이달 포린 어페어스에 게재한 <여기서 어디로 갈 것인가 (Where to Go From Here)>라는 칼럼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중간 합의”를 제안한 바 있다. 이렇듯 2단계 해법은 미국 내 정파를 불문하고 한반도 문제의 현실적 해결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2단계 해법은 문 대통령과 하스 회장의 면담에서도 읽혀지듯이 한미간 사전협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2단계 해법에는 아직 핵심이 빠져있다. 즉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면 미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 북한이 핵을 동결하면 미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아직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것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며칠 전 인도주재 북한대사가 미국이 한미합동훈련을 중단하면 북도 핵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할 수 있다고 밝히자 미 국무부는 양자는 연계시킬 사안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거부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향한 진정성 있고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하고 추가 도발을 자제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2단계 해법은커녕 그 기초가 되는 대화 입구 제안조차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우려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새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말한 점이다. 한마디로 독자적인 대북정책은 없다는 얘기다. 한반도 문제는 북미간 문제이자 남북문제이다. 양자는 연관되어 있지만 또한 독자적이기도 하다. 남북화해와 교류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한다고 해서 진행 못할 사안이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북은 핵과 미사일 시험을 하였지만 남북은 흔들리지 않고 관계 발전을 도모하였다. 그런 노력이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고 북미관계도 대화로 견인하였음을 문 대통령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독자적인 대북화해 정책을 세우지 않고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편승하려는 것은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종속시키는 것이요, 외교적으로는 끌려가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대북 제재와 압박을 계속한다면 문재인 정부도 대북 적대를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이럴 경우 2단계 해법의 성공은커녕 남북관계 발전마저 더 요원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적폐정권의 유산을 제대로 벗겨내지 못하는 영역이 바로 대북정책이다. 문정인 특보가 한미공동훈련 중단도 아닌 축소 발언을 했다고 수구언론이 호들갑 떠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새 정부의 고위관료들이 나서서 개인적 발언으로 폄하하고 미국 눈치나 살피는 태도는 최소한의 자주적 시각도 없는 모습이다. 게다가 촛불민심에 역행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좀 더 대담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독자적인 남북관계 개선 정책이야말로 트럼프 정부에게 대화의 장으로 나올 명분을 줄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제재와 압박정책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고 한반도를 상시적인 긴장상태에 머물게 할 뿐이다. 이를 타개할 유일한 주체는 문재인 정부뿐이다. 2단계 해법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대담하게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제안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통하여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한다. 이것이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쥐는 길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담대한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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