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진의 LP로 듣는 한국현대사(31) 통일노래한마당(1992)

▲ 사진출처: 유튜브 화면캡쳐

통일을 노래하고 그 노래를 음반으로 낸다는 것이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대한민국에서 20년 전에는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사회 각층에서 쏟아져 나온 사회개혁 목소리는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에 부합하는 조직들을 만들어 나가면서 정부와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조직 규모나 세력 면에서 가장 컸던 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즉 전대협이었다. 87년 항쟁의 기폭제이자 주도체로 승리를 이끌어낸 힘은 당시 대학생들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대학생단체는 정부로서는 가장 막기 힘든 집단 중 하나였다. 대학생들이 학내에서 집회를 하면 교정에 경찰을 투입하기도 어려워 학내에서는 각종 집회가 자유롭게 열리곤 했다. 따라서 독재정권에 대한 서슴없는 비판도 가능한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88년 들어 대학가에는 새로운 관심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 ‘통일국시’ 논란에서 보듯 당시 사회적 금기의 하나였던 ‘통일’을 대학생들이 주장하고 나선 것. 특히 전대협은 남북청년학생회담 개최를 제안하고 이를 막아나선 노태우 정부와 대치함으로써 ‘통일’을 사회적 관심사로 만들었다. 실제 당시는 정부의 국가시책도 ‘통일’보다는 ‘반공’을 우선시하던 때였다. 앞서 얘기한 ‘통일국시’ 논란은 86년 야당인 신민당 소속 유성환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국시를 ‘통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게 빌미가 되어 구속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것을 일컫는다.  

이처럼 금기시돼 침묵을 강요당했던 ‘통일’을 대학생들이 나서 사회적 이슈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전대협은 그해 8월 ‘대학생 통일노래한마당’을 펼쳤다. 당시 나온 노래들은 지금도 각종 집회에서 불리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진혼곡’ 등이었다. 

88년 처음 시작된 대학생 통일노래한마당은 당시 대학가에서는 최고의 노래 경연대회였고, 이른바 운동권 가요들의 탄생의 장이 되었다. 이후 89년과 90년 등을 거치면서 매년 8월15일 대학생 통일대회는 정부의 원천봉쇄를 뚫고 전국 각 대학에서 모인 10만이 넘는 학생들이 밤새워 개최했는데 하이라이트는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학 노래패들의 경연인 통일노래한마당이었다. 특히 통일노래한마당 본선에 진출한 노래들은 광역시도 단위에서 치러진 예선을 거친 작품들이었다. 당시 예선에는 많게는 1,000여 곡의 출품작들이 경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8.15통일노래한마당은 초대형 경연대회였다. 

이렇게 매년 개최된 전국 대학생 통일노래한마당 실황은 현장에서 녹음해 카세트 테이프로 만들어져 전국 총학생회와 대학가 서점 등에서 불법(?) 유통되었다. 이렇게 제작된 노래들을 정규 음반으로 만들어 전국에 배포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92년에 ‘하나기획’에서 모험을 강행했다. 

88년 1회 대회부터 91년 4회 대회까지 진행된 대학생 통일노래한마당 입상곡들을 모아 정식 음반으로 발매한 것. 이 음반에 수록된 노래는 당시 발표된 노래와 같지만 가수는 기획사가 따로 섭외했다. 그렇다고 이런 작업을 정부가 승인해 준 것도 아니었다. 음반을 발매한 기획사 대표 역시 음반 제작 리뷰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위험한 짓을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충고를 했다”는 말로 기획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하나기획'은 대학가에서 실제 불리는 진정한 의미의 ‘대학가요’를 널리 알리겠다는 의지로 제작에 임했고 이후 나올 2집에는 1집과 같이 편집음반으로, 3집부터는 입상곡들을 중심으로 한 독자 음반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쉽게 통일노래한마당 음반은 이후 나오지 못했고, 이 앨범이 유일한 통일노래한마당 음반으로 남게 됐다. 

최현진 담쟁이기자 단국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매체인 ‘코리아포커스’ 기자로 일했으며 통일부 부설 통일교육원의 교육위원을 맡기도 한 DMZ 기행 전문해설사다. 저서는 <아하 DMZ>, <한국사의 중심 DMZ>, <DMZ는 살아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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