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여명의 눈동자(24)

1. 문재인 정부의 가능성

문재인 정부의 출발이 순조롭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취임 후 국민의 81.6%가 문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취임 첫 주 지지도가 이명박 76%, 박근혜 54.8%에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이며, 역대 최고 지지도를 보였던 문민정부 김영삼 대통령의 초기 지지도보다 높다. 안철수를 지지했던 사람들과 문재인에 반대한 사람들도 부분적으로 문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취임 첫 주 청와대 비서진 인선과 검찰, 주요 내각 후보 인선이 국민들의 적폐청산과 개혁 열망에 부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선거기간 동안 약점으로 비쳐졌던 문 대통령의 결단력 부족이 거꾸로 인간미와 진정성으로 다시 보는 계기로 바뀌었고, 낮은 행보로 소통하려는 서민 대통령 이미지로 개선된 결과일 것이다. 불과 2주 만에 불통과 ‘혼’이 비정상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반대 이미지를 형성했는데, 이는 단지 이미지가 아니라 문 대통령의 장점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차범근 전 감독이 “문 대통령 인기 때문에 국민들이 축구에 관심이 없고 U-20 월드컵이 가려져있다”고 토로할 정도다. 당장 국민의당도 지지율이 8%대로 추락하며 위기이다. 호남에 기반을 둔 옛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불거진 민주당과의 합당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이다. 갤럽의 5월 셋째 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의 지지율 고공행진(48%) 탓에 정의당과 바른정당의 지지율도 소폭 하락했다. 민중연합당,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국민들의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전폭적 지지의 배경은 무엇인가? 과거 DJ정부가 일부 수구세력과 손잡는 DJP연합으로 가까스로 집권은 했으나, 출발부터 수구보수의 눈치를 보며 한계를 드러냈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개편기에 한나라당이라는 강력한 수구보수정당과 힘겹게 싸우며 기사회생의 ‘개인기’로 간신히 선거에서 이겼으나, 처음부터 진보와 보수로부터 양면공격을 받다가 결국 한나라당과 연정을 제안하며 개혁을 접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분열된 수구보수세력의 몰락과 일어서는 거국적 촛불혁명의 힘으로 당선되었다. 대통령 개인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시대와 환경이 개혁에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과거 실패로부터 얻은 국정 경험과 교훈이 민주당의 고질적 한계와 혼선을 메우며 임기 초반에 개혁 기치를 들고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2. 문재인 정부의 예상되는 한계(1) 노동·경제 개혁

그럼 앞으로도 문재인 정부는 계속 순항할 것인가? 답은 전적으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국민과 민중과 함께 하는가에 달려있다. 문재인 정부는 혁명정부가 아니며 중도 좌파정부조차 아니다. 평가하자면 중도적 개혁정권이다. 옛 새누리당과 이명박근혜 정권의 민주주의 역주행을 되돌리고, 누적된 적폐를 청산하는 개혁을 적극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또 그것이 국민들이 원하는 가장 시급한 일차적 과제이다. 상식과 정의, 초보적 민주주의, 초보적 복지의 기반을 복원하는 과제에 충실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박근혜 정권의 후안무치한 기형적 통치행태와 역주행만 바로잡아도 국민들은 환호하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문 대통령이 제1공약으로 내세우고 청와대에서 매일 점검하겠다는 ‘일자리 공약’은 과연 충분히 실현될 수 있을까? 일자리 문제의 본질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부분적으로 늘리는 양적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적폐인 민간부분의 나쁘고 값싼, 차별적인 일자리 양산 문제를 해결하는 법·제도 개혁의 문제이다. 즉 비정규직 철폐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 문제로 결국 좁혀진다.

이는 단순한 일자리 확장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 규제와 외국계 기업의 이익률 하락 문제로 이어진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의 전근대적인 ‘착취하는 노동문화’를 바꾸고, 생활임금에 기반한 경제구조로 향후 전환하는 근본문제와 관련돼있다. 이것을 대기업들과 지금까지 단맛을 본 외국계 자본이 그냥 놔둘 리가 없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적인 행정집행 의지를 보여주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하고 경제개혁을 하려면 이들 기득권세력과 대립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을 등지거나 노사정 협의로 무마하는 과거방식으로는 일자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자리 문제를 국민복지와 ‘일할 권리’의 핵심 문제로 두고 노동법을 전면 개정해 노동자의 기본권과 노동조합을 확대하고 이를 개혁의 기본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오히려 노동운동을 탄압하며 결국 비정규직이 사실상 노동인구 의 절반에 육박하는 ‘헬조선’으로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 한계를 넘을 의지가 있을까?

3. 문재인 정부의 예상되는 한계(2) 대미 외교, 대북 통일 정책

두 번째 문제는 ‘대미 자주노선’의 문제이다. 굴욕적 한미관계를 청산하고 당당한 한미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당면해서는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한중관계의 최대 장애물인 사드배치를 철회하는 문제이다. 문재인 정부는 홍석현 대미 특사를 통해 사드배치 문제 처리에서 한국 국회논의가 필요하다고 전달하였다. 비판 여론의 부담을 일단 넘겼으나 미국이 이를 철회하거나 미국이 대한민국 국회의 결정을 따를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또 미연방 국방예산에는 한국 사드배치 비용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럼 한국은 ‘봉’인 셈이다. 사드를 한국이 구매해 배치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계획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미국은 과거 노무현 정부를 압박하듯이 문재인 정부를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식 ‘압박’이 잘 통하는 곳은 사실 북한(조선)이 아니라 남한 정부이다. 민주당이 차후 사드문제 국회 논의를 유야무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성주, 김천을 조기에 방문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음으로 중요한 당면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대북정책인 ‘최대의 압박과 관여’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초기 대북정책은 본질적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취한 대북 적대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여명의 눈동자23 참조).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대미 추종정책을 폐기하고, 민족상생 차원의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새로 수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압박과 봉쇄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는 남북 화해협력 정책과 정면충돌한다. 미국은 현재 북미관계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남한이 미국과 엇박자를 내는 햇볕정책의 재현을 결코 원치 않는다. 당장 올해 6.15공동선언 행사를 민관이 합동으로 추진하는 문제, 대북특사를 조기에 보내는 문제, 5.24조치를 해제하는 문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문제, 전민족대회를 민관이 합동으로 규모 있게 실시하는 문제, 남북 고위급회담을 재개하는 문제 등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미 문재인 정부 내각 후보들 사이에서도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5.24조치 재정비(해제)를 주장하고, 이낙연 총리 후보는 해제 반대 입장이다. 시원한 조치는 없고 미국과 수구보수세력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역대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다른 특이점은,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요동치는 북미관계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민주정부라는 점이다. 내치도 중요하지만, 대외정책 방향과 결단이 국민의 안위와 남북 민족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국면에 서있다. 문재인 정부는 8.15해방정국 이래 다시 도래하는 격동하는 국제정세에서 과연 민족상생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외세와 수구보수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할 것인가?

4. 문재인 정부와 진보의 길 

문재인 정부와 진보정당의 관계설정 문제는 차후 한국 진보의 주요 관심사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말로를 재현할지, 통일코리아의 길을 여는 역사적인 첫 정부가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한국 진보의 다양한 성향이 앞으로 문재인 정부를 대하는 태도와 입장으로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 방향은 문재인 정부가 대미 자주의 외교방향, 남북 교류협력과 통일의 방향, 복지국가와 생활임금 보장, 노동존중 국가로 간다면 한국의 주류 진보는 이를 적극 지지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지 않고 그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한국 진보는 문재인 정부와도 격렬하게 싸울 수밖에 없다.

한국 진보는 현재 대략 3가지 정치노선을 가지고 있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정치노선을 표방하는 진보가 있다. 정의당이 이 노선에 가깝다. 과거 사회주의를 주장하던 이른바 ‘PD계열(민중민주주의혁명)’은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 혁명이나 변혁을 접고 현실적 사회민주주의자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들이 민주당 개혁세력과 협력하여 공동정부에 참여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논쟁이 있을 것이다. 정의당이 현재 진보세력이 추진하려는, 다양한 급진적 정치노선을 포함하는 새로운 ‘진보대통합’에 큰 관심이 없음은 물론이다.

다음으로 전통적으로 자주, 민주, 통일을 한국사회 당면과제로 규정하는 이른바 ‘자주파 계열’의 진보가 있다. 자주파의 입장은 우리나라가 산업화돼도 유럽 나라들과는 갈 길이 많이 다르다는 일종의 ‘한국형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분단으로 인해 외세의 개입과 지배력이 너무 강하고, 미국과 결탁한 극보수세력의 영향력도 강해 초보적 민주주의 구현도 쉽지 않은 특수성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유럽식 복지국가를 구현하려 해도 분단문제와 대미종속이란 특수문제를 해결할 근본대안 없이는 수준 높은 복지국가 실현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진척과 함께 한미동맹 해체와 연합연방제통일 등 특수한 한국사회의 근본문제가 근본적으로 풀려야 진정한 복지국가와 평등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소련식 사회주의를 비판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민주적 사회주의를 구현하려는 전통적인 좌파성향의 진보가 있다. 또 녹색당과 같은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이 있다. 물론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진보의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기회주의적 자유주의 우파정부로 규정하고 공격할 것이다.

5. 진보의 근본문제, 철학과 대중관

한국 진보정당이 왜소화되고 사분오열 상태가 지속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정권의 탄압 때문일까? 상이한 정치노선이 문제인가? 한국진보의 분열 문제는 정치노선상 차이나 신념 부족의 문제와는 별개로 사람의 사업방식 문제와 정파주의가 매우 심각한 데 따른 것이다. 정권의 탄압이나 정치노선보다 진보의 ‘대중관과 운동철학’에 더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

같은 정치노선 내부에 만연한 작은 정파의 끝없는 사분오열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최고의 정파는 대의에 헌신하는 정파이다. 최고의 정파는 정치노선이 유사한 다른 정파들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정파이다. 단결은 머릿수와 실리적인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철학으로 하는 것이다. 불리한 처지를 감수하고 높은 자리는 내주며 바닥에서부터 대중의 지지를 모아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그렇게 단결된 힘으로 끝내는 정치노선이 다른 정파들과도 더 크고 넓게 단결하여 공동의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다. 사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진보가 단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개혁과 변혁이 성공한 나라의 지도 정파와 지도자들이 걸었던 길은 이러했다.

정파의 역할은 먼저 고민하여 방향을 제시하고 이에 봉사 헌신하는 것이지, 수적 우세로 세도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 세도경쟁이 시작되면 모든 정파가 따라하고 결국 그런 당은 망한다. 정파가 먼저 결정해도, 당원과 주인인 대중이 다르게 판단하면 애초의 자기 결정을 수정하고 이에 따르는 것이 단결이다. 내가 중심이고 우리 정파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면 조직이기주의로 흐르고 대중주체 군중노선은 쉽게 무너진다. 단결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은, 비록 상대가 한계가 있더라도 그 사람과 그 정파, 나아가 대중의 판단과 자주성을 존중하는 철학으로부터 나온다.

소련 사회주의가 망한 큰 이유와 중국 사회주의가 부실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관료주의다. 집권당의 대중관과 철학이 잘못되면 결국 어렵게 세운 국가도, 진보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무너진다는 게 세계진보운동 역사의 교훈이다. 한국 진보에게 집권은 산 넘어 산이지만, 설사 집권한다 해도 이런 이기적인 정파주의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대중의 지지를 오래 받지 못할 것이다. 정파는 다양한 활동가의 봉사자이며 민중의 봉사자이다. 다양한 노선을 가진 선도적 정파나 정치그룹들은 “부분은 전체를 위하여, 각 정파는 전체를 위하여!”란 구호를 다시 새겨야 할 것 같다. 다가오는 새 시대의 일대변혁기를 준비하는 제대로 된, 철학이 바로선 한국 진보정당을 준비하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