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빈민의 삶과 투쟁(9) : 법은 왜 존재하는가?

▲ 사진제공: 뉴시스

법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을 말한다. 왕과 귀족이 국가권력을 독점했던 시대에는 법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지만 민주공화국의 법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그러나 국민들에 위임받은 권력을 마치 원래부터 자신들의 것으로 착각하는 정치인들과, 국가권력이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해진 자본권력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할 법을 자신들을 위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 사회의 법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기득권을 보호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법대로 해!”라는 말은 사실상 사회적 약자에게는 대단히 폭력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좋은 민주주의 리더십이 함께 작동되어야 한다. 같은 법을 근거로 집행하지만 강제력을 동원하는 정부가 어떤 리더십으로 선출되느냐에 따라서 그 양상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전교조 합법화?

최근 ‘합법’이란 수식어를 달고 논의되는 여러 가지 사안들이 있다. 그 중에서 합법을 일종의 프레임으로 작용되는 것이 바로 ‘전교조 합법화’이다. 합법이란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마치 지금은 전교조가 불법적인 상태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전교조는 불법적인 단체가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법적인 근거도 없는 시행령을 동원하여 '노조 아님‘ 통보를 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교조가 노동조합이 아닌 다른 성격의 단체가 될 수는 없다. 전교조의 지금 상태는 법외노조가 된 것으로, 법정단체가 아니라 임의단체가 된 것이다. 만약 고용노동부의 통보가 불법단체로 규정하는 것이라면 전교조는 단체교섭을 할 수 없다거나 이미 체결한 단체협약은 무효라거나 효력이 없어진다는 식으로 관련 법령에 규정했겠지만 그런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불법과 합법의 개념으로 나누고 합법화를 추진해야 될 과제로 설정하여 지금은 마치 불법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아가서 정부가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단체의 규약 등에 대하여 언제든 제재할 수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하고 마치 노동조합 등의 단체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되는 것처럼 이해하게 한다. 마치 집회신고를 하는데 경찰에 신고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경찰도 마치 허가를 내주는 주체인 것처럼 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누구든지 단체를 결성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와 노동3권을 근거로 하는 자주적인 노동조합 설립은 헌법이 보장하는 것으로 고용노동부는 판단할 자격이 없다. 노동조합의 설립신고는 말 그대로 신고만 하면 되는 것이고 행정관청은 그것을 받고 신고 절차에서 문제가 있는지 정도만 검토할 수 있는데 박근혜 정부는 도를 지나친 제재를 했기 때문에 이를 정치적 탄압이라고 한 것이다. 

임대업은 합법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모 언론사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목한 공직후보자의 부인이 임대료로 월 1250만원을 번다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를 두고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왜 문제가 있는 것처럼 기사를 쓰냐며 기레기(기자+쓰레기)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임대업은 ‘합법’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가. 

만약 한 건물주가 상가에 총 다섯 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고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임차상인 5명이 한 달에 1000만 원씩 매출을 올린다고 가정해보자. 한 점포당 건물주가 임대료로 300만 원, 임차상인이 400만 원, 아르바이트 노동자 둘이 각 150만 원씩 총 300만 원을 가져간다. 건물 전체로 보면 건물주 1명은 1500만 원, 임차상인 5명은 각 400만 원, 아르바이트 노동자 10명은 각 150만원을 한 달에 벌게 된다. 즉, 한 달에 건물주는 임대료만으로도 임차상인 4명이 버는 돈과 아르바이트 노동자 10명이 한 달 내내 일해서 버는 돈과 비슷한 액수를 가져가게 된다. 이것을 사회 전체로 확장해서 보면 극소수가 수만 또는 수십만 명의 이익을 차지하게 된다. 

이를 경제학적으로 지대추구행위라고 하는 것인데, 총매출에 기여한 것이 없으면서 부동산이나 기업 등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로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새로운 사업 영역을 진취적으로 개척하거나 본인의 노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지대를 확보해서 타인 생산물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이는 노동의욕을 떨어뜨리고 사회적으로 혁신과 도전의 의지들을 무너뜨린다.

한국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 건물주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꿈인 건물주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곱게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로소득이 꿈이 된 나라, 노동이 부끄러운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공직후보자라면 임대업을 하는 것에는 윤리적인 책임의식 정도는 있어야 한다.

노점상에게 합법이란

합법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사례들을 보면서 노점상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이 보는 시각은 또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교조에게 씌워진 ‘불법’이란 프레임은 노점상에게 씌워진 ‘불법’이란 굴레처럼 느껴졌고,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버는 불로소득자들인 임대업자들은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보호하지만 거리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점상들은 불법으로 내모는 현실이 서글프기도 했다.

노점상은 불법이 아니다. 길거리 위에 놓여있는 노상적치물을 도로법을 근거로 정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노상적치물에는 사람이 없지만 노점상은 사람이다. 근본적으로 ‘집행’을 통해서 치워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점상은 세금을 내지 않고 무임승차하는 탈세자들이나 불로소득자들이 아니다. 조세 관련 법령으로 면제받는 세금들이 있고 다른 간접세는 똑같이 내고 있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땀 흘려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이 노점상인가 불로소득자들인가. 자신들의 사회적, 경제적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단결한 노동자, 노점상 등 민중들이 불법인가, 단결한 민중을 불법의 프레임으로 가두어서 탄압하려고 하는 자들이 불법인가.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가는 법을 근거로 합법적인 폭력 수단인 군대, 경찰 등을 유일하게 독점한다. 그 이유는 국가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고 국민들을 내외부의 위협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노점상들은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의 국가폭력을 통해서 강제로 철거된다. 국가폭력의 목적은 위협과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인데 노점상이 어떤 위협을 가했고 위험을 제공했으며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는지 알기 어렵다.

강제철거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이 동원된다. 그 폭력이 노점을 철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도 노점상이란 사람이 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폭력은 같이 가해진다. 노점상이란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가해지는 국가폭력은 단 한 번도 스스로 불법이라고 한 적이 없다. 공무집행 중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오히려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노점상이 처벌받는다.

노점상들은 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알아주는 국가를 원한다. 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임대료에 힘겨워하는 임차상인과 저임금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지역공동체를 조성할 수 있는 국가를 원한다. 강제철거가 아니라 대화와 협의로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고, 준비도 되지 않은 제도권 내로 끌어들이기 전에 스스로의 자율질서를 존중하길 원한다. 노점상도 사람이며, 국가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주권자인 국민이자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임을 잊지 않는 국가가 존재하길 바란다. 

더 이상 국가가 법을 근거로, 합법이란 명분으로 국민들을 배제하지 않길 바란다. 

덧붙이는 말

최근 군 당국이 동성애자 군인들을 색출하여 군사재판에서 실형을 선고한 일이 발생했다. 그들의 사랑을 국가폭력은 불법이란 이름으로 처벌했다. 그들이 공동체 내외부에 어떤 위협을 가했고 위험이 되는지 알기 어렵다. 법이란 이름으로 동성애자 군인들에게 가해지는 국가폭력과 형벌은 부당하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처벌하는 군 형법 92조의6은 폐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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