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노점상도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 받아야
5․18 정신계승, 정의가 승리하는 대한민국
1980년 이후 서른일곱 번째 5월18일이다. 5.18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이고 부채감이다. 그리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군사독재정권의 은폐와 조작으로 여전히 ‘광주사태’라고 부르는 국민들이 있다. 5.18광주민중항쟁을 폄하하는 극우세력의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과 학살자 전두환의 파렴치한 발언 등은 생채기 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다시 할퀴고 있다. 최초 발포 명령자와 무차별 헬기 기총사격 문제, 행방불명된 사람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구(舊) 전남도청의 복원 문제 등 남아있는 과제들도 많다.
어처구니없게도 군사독재의 잔재와 지역주의를 조장하여 연명하는 정치세력들로 인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5.18관련 자료가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18광주민중항쟁은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한 기념사는 매우 훌륭했다. 광주의 영령들 앞에서 한 대통령 취임사처럼 들리기도 했던 기념사는 한국 사회의 위대한 민주화운동의 역사이자 상식과 정의의 이름으로 5.18광주민중항쟁을 호명하고 그것을 폄하하고 왜곡하려는 자들을 엄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보여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5.18광주민중항쟁과 노점상
5.18광주민중항쟁을 얘기하는 중에는 해방 광주의 대동정신이 빠지지 않는다.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이 물러난 자리에 부상자들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가하고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만들어서 나르는 우애와 협동이 대신한 것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감동을 한다. 그러나 평범한 민중들의 저항과 자치에 대한 잠재력을 보여준 그 해방 광주에 노점상들도 함께 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5.18 당시 주먹밥을 만들었던 이들은 양동시장의 노점상들이었다. 그들은 1980년 5월, 시장 안으로 쫓겨 온 학생들을 돕다가 5·18광주민중항쟁의 물결 속으로 뛰어들었다. 양동시장 노점상 120명이 처음엔 쌀을 거두다가 나중에는 없는 주머니 사정에 2천 원씩을 거두어서 노점을 접고 주먹밥을 만들어 도청으로 들여보냈다. 지금이야 별다른 일 같아 보이지 않지만 당시에는 소문이 새나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노점상도 광주시민이고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서는 민중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끝까지 항쟁에 참여했다. 양동시장 외에도 대인사장, 계림시장, 서방시장, 남광주시장 등에 있던 노점상들도 시장 내에 쌓여있던 생필품들을 너나 할 것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시민군에게 지원했다.
1986년에는 노점상들의 조직이 생겨나고 1987년 전국적인 노점상 조직이 결성되면서는 5.18광주민중항쟁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과 군사독재정권을 반대하는 투쟁,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것처럼 굴었지만 광주학살을 승인하고 방조한 미국을 반대하는 투쟁에도 함께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전두환, 노태우 광주 학살자 처벌 투쟁’을 통해 전두환과 노태우를 심판의 법정에 세워냈다.
5.18광주민중항쟁에 함께 했던 양동시장 노점상들이 1987년과 88년에 전국적 차원의 노점상 조직을 처음으로 만든 주역들이다. 당시 주먹밥 만들어 나른 사람 중 가장 어렸다던 곽미순씨는 현재 민주노련 광주지역연합 지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촛불혁명과 노점상
지난해 10월29일 처음 시작되어 2017년 봄까지 이어진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집회’에도 노점상들은 함께 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의 공동대표를 맡은 단체 중 하나였던 빈민해방실천연대(민주노련, 전철연)는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가 시작된 2016년 11월5일부터 여성위원회 주도로 푸드카를 운영하였고 그 수익을 퇴진행동측에 보태었다. 자신의 생계인 장사를 접고 광장에 나와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었지만 추운 겨울 광장에 나온 촛불시민들에게 따뜻한 국물과 마음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많은 회원들이 번갈아가면서 함께 했다.
무엇보다 100만 촛불의 시작이 되었던 2016년 11월12일 민중총궐기와 박근혜 탄핵 선고를 앞둔 2017년 2월25일에는 전국의 1만 노점상들이 장사를 접고 모두 광화문으로 모여 박근혜 퇴진 투쟁에 함께 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양초와 LED초 등이나 액세서리를 들고 나와 스스로 노점상이 되기도 했고 사람 많은 곳에 항상 있는 먹거리 노점도 펼쳐졌다. 그리고 장사를 접고 광장으로 나온 노점상들은 촛불을 들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역할을 다 했다.
그런데 촛불집회가 이어지는 광화문광장 주변에서도 종로구청은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개별 노점상들을 단속하고 협박하며, 마차들을 엎어버리고 물품들을 압수해 실어갔다. 집회 주최측이 다 준비하기 힘든 초나 촛불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상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거리를 파는 노점들에 대해서만 용역깡패들을 앞세워서 단속하는 것을 보면서 기준도 없이 자기 편의대로 단속하는 공무원들이 한심하기도 했지만, 국민주권을 얘기하고 불공정과 불평등을 얘기하는 촛불집회에 자기 나름대로 참석한 노점상을 과연 시민으로, 국민으로 보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노점상도 역사를 바꾸어온 민중들이다
비상식과 불의에 항거하는 민중들의 투쟁에 노점상을 비롯한 도시 빈민들은 언제나 함께 해왔다. 스스로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 이외에도 과거에는 민주화 투쟁을 함께 했었고 현재에도 사드배치 반대 투쟁과 통일운동, 최저임금 1만원 운동과 청년/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농민들의 밥쌀용 쌀 수입 반대 투쟁과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투쟁에도 함께 연대하고 있다. 빼앗기는 사람들의 처지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도 하지만 노점상과 도시 빈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나은 한국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들의 단결과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과 학습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적인 민중항쟁에 함께 해온 노점상과 도시 빈민들이지만 여전히 국민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큰 문제다. 무엇보다 국가가 독점해야 할 합법적인 폭력을 민간에게 위임하여 탄생한 용역깡패라는 전 세계에서 유래 없는 존재들은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생존권 문제를 떼쓰는 것으로 취급해 버리는 정치권력과 언론환경도 변해야 한다.
앞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한국 사회에서 노점상 조직운동은 올해로 30년이 된다. 그동안 노점상들은 변해가는 거리와 상가 및 주택에 어울릴 수 있도록 계속 변화해 왔다. 그럼에도 지금은 다른 노점을 갈취하는 기업형 노점상, TV프로인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명물 노점상, 재래시장에서 직접 생산한 농산물이나 산에서 캔 나물들을 파는 할머니, 수십 년간 평생을 모아서 기부를 하는 노점상 등 특정 몇 가지 이미지로만 고정되어 있다. 게다가 그 이미지들은 대단히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것부터가 투쟁인 노점상들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을 하는 역사의 주인이자 변화의 주체인 민중이란 점을 기억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