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삽을 들고 더 넓고 더 깊게 파자

▲사진 : 뉴시스 

촛불혁명, 광장의 힘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1주일째를 맞았다.

문재인호의 출항은 순조로운 듯하다. ‘재수에 강하다’는 문재인호는 과거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적폐청산과 민주개혁을 위한 준비를 많이 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취임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을 잘할 것’이라고 답한 응답률이 75%에 이를 만큼 민심의 기대 역시 높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방식이다. 취임식에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 광화문 대토론회 천명, 출근시민들과의 셀카, 인사에 대한 직접 설명, 비서진들과 산책과 격의 없는 토론, 기자들과의 산행, 청와대 기술직 공무원들과 식사, 청와대 비서동 여민관 입주, 인천공항공사 노동자 방문, 양천구 은정초등학교 방문, 세월호 가족에 대한 ‘문변’ 댓글 등 일련의 행보는 소통에 목말랐던 국민들에게 큰 힐링과 희망을 주고 있다. 광장의 정신, 시대정신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소통행보가 집권기간 내내 이어져 소통과 공감, 집단지성이 현실정치에서 꽃피는 격이 높은 민주공화국으로의 도약을 기대해본다.

대통령 업무지시를 통해 개혁드라이브를 가동한 것 역시 평가할 만하다. 취임 첫날 업무지시 1호 일자리위원회 신설, 2호 국정교과서 폐지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곡 지정, 3호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응급대책으로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일시 가동 중단(셧다운)', 4호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2명의 순직 인정 지시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졌고, 이런 개혁드라이브는 골든타임인 취임 100일 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파면 이후 장기 국정공백을 메워야 하고, 인수위원회 과정 없이 곧바로 국정에 착수했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 상당히 준비돼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행보였으며, 특히 공약이행과 적폐청산, 개혁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긍정적이다. 

적폐청산과 민주개혁은 관행과 구태 청산과 개혁, 인적 청산과 개혁, 제도적 청산과 개혁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 일단 대통령 명령권과 정부 권력을 동원하여 청산과 개혁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사가 받쳐주어야 하고 속도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낙연 호남 국무총리 지명을 두고 ‘신의 한수’라는 평가가 나오고, 50대 임종석 비서실장 임명과 국가정보원 개혁의지가 높은 서훈 원장, 검찰개혁 의지가 뚜렷한 조국 민정수석 임명은 파격으로 인정받고 있다. 인사와 업무지시 행보에서 나타난 속도 역시 ‘결단력이 없다’던 과거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무색케 하고 있다.

협치를 위한 노력 역시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물론 50%에 못 미치는 지지율, 여소야대 국회를 볼 때 협치와 연정의 성사여부가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가를 중대변수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가 협치의 출발점을 탕평인사와 통합운영으로 잡은 것은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이낙연 전남지사의 국무총리 지명, 전남 장흥 출신 임종석 비서실장, 전북 전주 출신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의 임명은 호남 홀대론을 일거에 불식시켰다. 당내 경선 당시 안희정 충남지사쪽 대변인이었던 박수현 전 의원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하고 이재명 캠프쪽 인사도 등용하겠다고 밝힌 것, 총무비서관에 정통 공무원인 이정도 기획재정부 심의관을 낙점한 것 등의 인사조치는 실력과 통합에 근거한 탕평인사정책이 향후 장관을 포함한 여러 인사에서도 일관될 것임을 예고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친문 핵심으로 ‘복심’이라 불리던 양정철 전 캠프 비서실 부실장, 이호철 전 민정수석, 최재성 전 의원 등이 2선 후퇴를 선언하면서 탕평과 통합, 협치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인사가 만사이고, 패권과 계파갈등으로 점철된 야권의 과거사를 돌아볼 때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룬 단결이 집권 이후 확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촛불을 근거로 한 개혁동력을 더 크게 확대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의 열쇠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동정부나 연정 수준의 협치를 고려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공동정책에 대한 합의 없는 자리 나눠먹기식 연정은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정의당 모두 부정적이란 점에서 가능하지도 않고 또 좋아 보이지도 않다. 개혁연정은 필요해 보이나 여건이 아직 성숙되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지금은 당청이 합심해 대국회 관계를 잘 풀어내는 방식의 협치일 텐데 여건이 만만치 않다는 게 가장 큰 우려사항이다. 민생, 경제, 안보, 통일 관련 주요 정책 집행과 입법 과정에서 갈등과 격돌이 가시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정당과 국회, 행정·경제 관료, 검경·국정원, 군부, 재벌, 언론, 사학, 종교에 이르기까지 청산해야할 적폐는 많고, 저항 역시 만만치 않아 호시탐탐 반격의 기회만 노리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호칭 같은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인사 문제, 경제민주화, 비정규직 해소, 민생복지, 한미동맹, 대북정책 등 굵직한 쟁점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정부와 진보진영,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와 다른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 이견이 발생할 사안들이 수두룩하다. 학교비정규직의 공무직 입법화 문제에서 비정규직 당사자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층 사이의 이견,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식에 관한 정부와 민주노총 사이의 이견, 최저임금 1만원 실행로드맵에 대한 이견 등 벌써 여러 사안이 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예측하지 못한 영역에서조차 이견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사드배치, 한미FTA, 한미동맹, 북한 핵·미사일 문제 등에 대한 입장, 속도와 방식, 수위를 놓고 넘어야 할 고비가 한둘이 아니다. 더욱이 이런 이견과 갈등의 약한 고리를 비집고 적폐세력의 반격이 시도될 것인 만큼 문재인 정부의 성공여부는 이런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는데 달려 있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내적인 시행착오로 좌우협공에 시달린 사례가 있음을 볼 때 문재인 정부는 이를 뛰어넘을 정치력을 보여주어야 할 엄중한 숙제를 안고 있다.

이런 중대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비책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진보세력과 개혁세력이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의 길에서 크게 공조, 연대하는 것이다. 적폐청산의 길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적폐청산을 위한 공동투쟁 속에서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이 동반성장했다는 것은 뚜렷한 역사의 교훈이다. 물론 상호비판과 견제가 과도한 편 가르기와 제로섬 게임으로 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자신이 해결해야할 과제를 문재인 정부에게 조급하고 무리하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혁명적 개혁까지는 못 가더라도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은 최대한 높은 수준에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것만이 진보세력과 집권 개혁세력이 적폐청산과 민주개혁을 위해 공조할 수 있는 길이다. 공조와 연대는 차이를 존중하고 공동의 과제 해결을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다. 문재인 진영은 진보진영의 원칙적 입장, 우려와 비판을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경청할 수 있어야 하고, 진보진영은 문재인 정부의 부족점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문재인 정부는 더 대담하게 국민의 힘을 조직하고 개혁의 동력을 크게 비축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 해소, 일자리 창출, 각종 민생복지 정책들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향식의 정책적, 시혜적 조치만으로는 개혁정책이 제도적 질서로 자리 잡기는 힘들다. 노동조합을 강화하고, 농민, 빈민, 여성, 청년, 통일, 평화 등 각계각층이 스스로 조직하여 자기의 이해, 자기 주권을 실현하는 대중적 공간을 여는 게 개혁동력 확보의 핵심이다. 4.19혁명 이후 대중적 진출이 폭증했고, 6월 항쟁은 7~9월 노동자대투쟁을 열었다. 이런 힘들이 역사를 만들었고, 오늘의 촛불혁명으로 성장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집회, 시위, 파업 등 대중의 직접행동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노동, 농민, 빈민, 여성, 청년, 소수자들이 자기조직을 만들고 스스로 정치의 주인, 자기 삶을 결정하는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공간을 여는데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촛불이 조기 대선을 만든 것처럼 광장의 민중들의 조직된 힘이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완성한다는 굳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난관에 부딪힐 때 문재인 정부가 믿을 것은 촛불의 힘, 국민밖에 없다. 어려운 일이 발생할수록 서운한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국민에게 물어보고, 힘이 들면 들수록 촛불에 호소해야 한다. 촛불민중은 기꺼이 적폐청산과 개혁의 완성을 위해 나설 것이다. 

셋째, 코리아 퍼스트, 민족의 힘을 키워야 한다. 이미 미국에서 트럼프부터 아메리카 퍼스트, 자국 우선주의를 하고 있다. 대선 기간 ‘코리아 패싱’이 난무했다. 중국 역시 자국 이익이 우선이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대한문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세력, 분단적폐 세력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아직 충분한 개혁동력, 평화동력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정상회담부터 해야 하는 어려움 역시 존재한다. 아베와의 통화에서 원칙적 입장을 밝히고, 미, 중, 일, 러 특사들에게 ‘피플 파워’를 거론토록 한 것은 옳은 일이다. 복잡한 협상일수록 원칙과 국민의 힘에 근거해야 협상의 지렛대가 생긴다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 

특히 한미전쟁동맹을 평화동맹, 수평적 동맹으로 전환해가는 평화와 통일 프로세스를 치밀하고 신중하게 가동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북의 핵·미사일 문제와 남북관계 회복을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 북의 핵·미사일 문제는 근본적으로 남북간, 민족내부 문제가 아니라 북미간의 문제이다. 북미간의 문제를 남북문제로 치환하려는 세력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세력들밖에 없다. 당장은 적폐세력의 공격을 받더라도 길게 보면 미국의 선택 역시 북미관계 정상화 말고는 다른 길이 없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친미수구보수집단은 이제 정치, 평화, 생명, 통일문제뿐 아니라 유일하게 자임해 왔던 경제 문제에서도 해결 능력이 없는 경제적폐세력임이 뚜렷해졌다. 국제적인 저성장시대, 청년실업, 초고령화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겨내는 굵은 줄기 역시 통일경제, 북방경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금융적 약탈과 재벌독식, 1대99의 초양극화 시대를 가져온 미국발 신자유주의를 끊어내려면 경제분야에서 내수의 힘과 민족적 힘을 함께 키워야 한다. 

시작이 좋은 만큼 문재인 정부는 개혁의 동력, 평화와 통일의 동력을 촛불의 삽을 들고 보다 넓고 깊게 파가는 훌륭한 농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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