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한미관계 이대로 좋은가?(1) - 미국의 국내정치 개입
미국은 한국에 어떤 존재이길래 대통령에 당선되면 가장 먼저 방문할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터뜨려 우리민족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준 나라. 6.25전쟁에 참전해 이남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준 나라. 무상원조로 한국경제를 일으켜 준 나라. 군사작전권을 넘겨받아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는 나라’일까? 기획연재, ‘한미관계 이대로 좋은가?’에서는 미국 그 이면에 숨은 적폐를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재조명 해본다. [편집자]
(1) 5.18광주 학살과 5.16쿠데타의 공통점 – 미국의 국내정치 개입
(2) 맥아더 포고령, ‘일장기 대신 성조기’ – 분단과 청산하지 못한 친일
(3) 정전협정문에 대통령 이승만은 왜 이름 빠졌나? – 군작전지휘권
(4) 사드, 문재인 대통령 뜻대로 안되는 이유? – 한미상호방위조약
(5) 미군, 아직 한반도에서 전쟁 중 – 한미합동군사훈련
(6) 두 여중생의 죽음, 15년이 지난 오늘 미군은? – 주한미군 범죄와 SOFA
(7) 미국이 좋은 걸까? 무서운 걸까? – 숭미 사대주의
(8) 미국, 경제 원조에서 FTA 재협상 압력까지 – 대미 종속 경제
5.18광주 학살과 5.16쿠데타의 공통점은? 미국의 사주
1961년 박정희가 권력을 찬탈한 5.16 군사쿠데타와 1980년 전두환 군부의 5.18 광주 학살이 갖는 공통점은 미국의 사주를 받았다는 점이다.
두 사건 모두 미 CIA를 통해 사전에 기획이 보고됐으며, 한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을 가진 주한미군 사령관의 관할 하에 전개됐다.
5.16 한달 전 미국은 쿠데타 모의 알았다
미 CIA가 1961년 5.16쿠데타 발발 약 한달전 ‘박정희가 쿠데타를 모의중’이라는 정보를 입수, 모두 8차례에 걸쳐 이를 케네디 당시 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또한 4월24일 매그루더 주한미군 사령관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쿠데타 당일 10시30분 한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을 가진 매그루더 사령관은 청와대에 들렀지만 반란군 진압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5.16쿠데타, CIA의 가장 성공한 해외 활동”
1964년 덜레스 CIA 국장은 BBC 인터뷰에서, “재임 중 CIA의 해외 활동으로서 가장 성공을 거둔 것은 5.16 군사 정변이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전쟁을 방어하는데 성공한 친미 이승만 대통령을 물리적 폭력시위로 강제로 내쫓은 4.19 혁명을 반미혁명으로 판단해, 조속히 친미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당시 발발한 반미 쿠바혁명 때문에, 쿠바혁명을 모방한 반미혁명이 전세계로 유행처럼 퍼져나가는 것을 크게 우려했으며, 4.19 혁명도 이러한 제2의 제3의 쿠바혁명으로 판단, 시간이 더 지나서 혁명이 공고해져 쿠바처럼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이전에, 서둘러 친미혁명을 일으켜 반미정부를 전복시켜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
5월 광주 특전사 투입, 미국은 미리 알았다
5월 광주항쟁에 대한 유혈진압과 관련, 가장 중요한 문서중 하나가 1980년 5월7일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미 국무부로 타전한 비밀전문이다.
지난 1993년 비밀해제 된 이 전문에는 주한미군 사령관이 5.18 당시 2개 특전여단과 해병대 1사단의 이동과 투입에 동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5월 항쟁 진압에 특전사 병력이 투입된다는 것을 미국은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주한미군은 특전사 투입의 명령권자임을 의미한다.
이 같은 주한미군의 역할은 5.18광주보다 5개월 앞서 일어난 전두환 군부의 12.12 군사 반란에서도 마찬가지다.
12.12 전두환 쿠데타, 미국은 묵인 방조
전두환 군부가 정권을 찬탈한 1979년 12.12 쿠데타 발생 직후, 미국은 ‘한국상황보고’라는 비밀전문 4건을 작성했다.
이 전문은 한국시간 13일 새벽2시까지의 상황이며 ‘초기단계의 쿠데타가 서울에서 진행중’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또한 “노재현 국방부장관과 김종환 합참의장이 (전두환 군부가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는 하극상을 일으킨) 그 시각 용산의 유엔사령부 벙크에서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 워컴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새벽까지 군지휘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고 적고 있다.
당시 한국군 작전 지휘권을 가진 워컴 사령관은 벙크에서 전두환 군부의 쿠데타를 실시간으로 보고 받았으며, 그들에 대한 진압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이는 미국이 전두환 군부가 자행한 12.12 군사 쿠데타를 묵인 방조했음을 의미한다.
주한미대사, 주한미군사령관, CIA지국장, 그리고 한국 현대사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3대 대선부터다. 그 이전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진 27년 쿠데타 정권은 미국의 사주로 창출됐다.
주한미 대사와 군사령관 그리고 CIA지국장으로 짜여진 막강한 미국의 힘은 87년 이후에도 대한민국 정치사에 깊숙히 개입해왔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과 87년 대선, 92년 ‘3당합당’과 이듬해 대선, 97년 IMF위기와 15대 대선, 2002년 정몽준의 노무현 지지 철회와 대선, 2007년 BBK사건 졸속처리와 이명박 당선, 2012년 대선 부정선거 의혹, 그리고 2017년 촛불대선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알박기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미국의 비밀문서가 해지된 87년 이전까지만 입증이 가능하다. 하지만 87년 이전의 의혹이 비밀전문에서 사실로 드러나듯 87년 이후에 제기된 미국의 정치개입 의혹도 언젠가는 백일하에 드러날 터.
그때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주권자인 국민들은 지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미관계 이대로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