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빈민의 삶과 투쟁(7) : 더 이상 엘리트들에게 빈민의 운명을 위임할 수 없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에 기대가 없는 것처럼 보일까?

1700만 촛불이 만든 조기 대선이 끝났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선거 역대 최대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그는 개혁과 통합을 국정목표로 하겠다고 한다. 박수를 치고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도시 빈민들은 걱정이 앞선다. 노점상, 철거민은 대선 기간이라 잠잠했던 강제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그 강제철거에 가장 앞장서고 있다. 

가난을 회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비참한 처지의 사람들은 대선에서 쏟아졌던 복지공약들이 서서히 후퇴하리란 것도 알고 있다. 잘 흐르는 강물을 가두어서 썩게 만드는데 수십조의 예산을 퍼부어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쓰는 복지예산은 온갖 핑계를 대며 아까워하는 것이 이 나라 정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홈리스, 장애인 등 여러 형태로 존재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권력이 바뀐다고 자신의 삶이 당장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바꾸지 못 하는 정치에 기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민중이 정치의 주인이 되지 않고서는 삶을 바꿀 수 없다

그렇다고 노점상, 철거민, 장애인, 홈리스, 쪽방촌 주민, 복지수급자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도시 빈민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정치 공간에서 도시 빈민은 주인이 될 수가 없었고,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태도는 냉소적이었던 것이다. 

정치라는 것은 똑똑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우리가 할 수 없는 특별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그 똑똑한 정치인들은 도시 빈민을 신경 쓰지 않고 배제하기 바빴으며,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면 적당히 그 불만을 들어주는 식으로 관리했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마저 보장받기 힘들었던 것이 현실이다.

더 이상 기존의 정치시스템이 익숙한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권한을 대리하고 위임했던 정치로는 우리의 삶을 바꾸지 못 한다는 것을 도시 빈민 스스로 깨닫고 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가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누구에 맡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치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결심하고 있다. 그래서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을 실현하겠다는 것을 함께 토론하고 결정했다.

<빈민해방실천연대 대선 및 정치방침>

1. 2017년 대선과 이후 정치일정에서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복무한다.

2. 2017년 대선에서 촛불항쟁을 계승하여, 적폐를 청산하고 민중생존권 보장을 위해 함께 할 진보진영 후보를 지지한다.

3. 2017년 대선에서 노점상, 철거민 등 도시빈민의 생존권 보장과 권리 증진을 위한 법 개정과 도시개발 과정의 부동산 및 주택정책 관련 의제를 제시하고 공론화한다.

4.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활동할 빈민해방실천연대 내 정치위원회를 10인 내외로 구성한다.

기존의 보수정치와 진보정치는 위임정치, 대리정치라는 공통점이 있다

진보정치인들은 보수정당과는 다르게 민중들의 투쟁에 함께 했다. 그들은 선거 때만 찾아와서 손을 내밀고 선거가 끝나면 탄압하고 배제하는 기존 정치인들과는 달리 우리의 옆 자리에 앉았고 마주보고 앉아서 우리의 얘기를 들었다. 광주 상무금요시장을 폐쇄하려는 서구청의 탄압, 이수역 앞 노점상에 대한 동작구청의 강제철거, 마포구청의 아현포차 강제철거 등 도시 빈민의 삶을 무너뜨리는 국가폭력의 현장에 정의당, 민중연합당, 노동당, 녹색당 동지들이 함께 했다. 

진보정당 동지들에게 고맙지만 아쉬운 마음도 크다. 민중들이 보기에 진보정당의 정치인들이라고 해서 보수정당의 정치인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대선 후보로 출마하여 진보정당 대선 후보로는 역대 최다 득표를 한 심상정 의원이나 달변가인 노회찬 의원, 박근혜 정권의 탄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전 대표, 민중연합당의 대선 후보였던 김선동 전 의원 등만 봐도 공통점이 있다. ‘좋은 대학 나와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며 한 생을 헌신해온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그들의 공통점이다. 사심 없이 민중을 위해 헌신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민중의 삶과는 분리해서 생각하는 측면이 강하다.

민중들은 굳이 소수정당인 진보정당에게 자신의 삶을 위임하고 대리하기보다 좀 더 힘이 있는 기존 보수정치인에게 기대를 하면서 다시 표를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의 진보정당이 노동자, 농민들이나 도시 빈민 등의 기층 민중들에게는 득표가 떨어지고 오히려 ‘대도시 거주/사무직/대졸 이상’ 등의 유권자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것은 민중 스스로가 당의 주인이 되고 방향과 진로를 결정하고 후보로도 출마해야 하는데 진보정당의 중심에 민중들이 없었기 때문인 측면도 있지 않나 싶다. 진보정치에서 민중이 주인이 될 수가 없는데 어찌 민중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겠는가.

도시 빈민을 비롯한 민중의 정치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집중하는 진보정당,

민중 스스로가 주인이어서 당의 진로와 방향을 결정하는 진보정당,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결심한 민중이 운명을 걸고 함께 할 진보정당,

민중의 직접 정치로 세상의 주인이 되는 정치권력의 전복을 위한 진보정당.

이것이 바로 기존 소수 정치엘리트 중심의 정치를 타파하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진보정치를 위해서 새롭게 건설되어야 할 진보정당의 모습이다.

도시빈민들이 꿈꾸는 진보정치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공동체’이다

현존하는 법과 제도로 보호받기 어려운 도시 빈민들에게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삶터이자 일터인 지역사회에서 존중받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도시 빈민에게 지역사회는 일상적인 삶터이자 일터이며 정치활동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

일례로 노점상의 단속 권한을 가진 것도 철거민을 만들어 내는 재개발, 재건축 승인을 해주는 기초자치단체이다. 장애인이나 홈리스 및 쪽방촌 주민, 복지수급자 등에게도 기초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자원과 수단이 많이 존재한다. 이런 기초자치단체가 도시 빈민을 단속하고 색출하고 입을 막기 위한 것에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상황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도시 빈민의 삶이 바뀔 수 있다. 진보정치가 지역사회의 정치공동체로 활동하고 도시 빈민이 그 정치공동체에 함께 한다면 말이다. 나아가서 기초자치단체장을 민중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만드는 정치공동체에서 맡아서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빈곤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도시 빈민이란 개념은 사라져야 할 개념이다. 가난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위해서 진보정치가 해야 할 것은 썩어빠진 ‘돈 세상’을 갈아엎고 ‘사람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 사회를 더 이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으로, 배고픔과 서러움이 없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도시 빈민 스스로가 정치공간에서 권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 민중들은 촛불항쟁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조기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권교체는 시작이다. 민중의 직접 참여 의지가 고양된 지금이야말로 민중의 직접 정치로 민중이 주인인 진보정당을 건설하여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이뤄내기 가장 적합한 시기이다. 

민중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위해서, 도시 빈민이 없는 세상을 위해서, 진보정치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전복하여 틀어쥐기 위해서는 도시 빈민을 비롯한 민중들이 그 중심에 서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지금과 다른 세상은 꿈속에나 존재할 뿐 결코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