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노조의 비정규직 사내하청 분회 분리와 관련해

지난달 27~28일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가 비정규직인 사내하청분회 분리를 결정한 것을 두고 여러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박정환 조직국장은 이를 그저 원-하청 연대의 실패로 규정할 게 아니라 활동가 스스로 노조의 역할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박정환 조직국장은 19대 국회에서 장하나 의원의 노동정책담당 비서관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의 주장에 대한 반론 또는 관련 기고를 환영합니다. [편집자]

▲ 현대기아차그룹사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서 유명해졌지만, 고전처럼 내려오는 유명한 격언입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귀감이 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최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가 안타까운 결정을 했습니다. 기아차지부의 조합원 자격을 변경하여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합원 자격을 배제하는 것을 조합원 총투표로 의결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많은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재벌, 보수진영과 그 나팔수들이 얘기하는 귀족노조 프레임까지 끌고 와서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럴 수 있다고 이해가 될 정도로 아쉬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판은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의 조합원들에게 쏟아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정규직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고 노동조합의 질서를 해친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작년 6월8일 건강상의 이유로 끝났지만, 서울시청 앞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363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법원에서도 인정한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판결을 기아차가 받아들여서 ‘사내하청 노동자 전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면서 싸웠던 일로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가 주도했던 투쟁이었습니다. 

이 고공농성으로 광고탑을 운영하는 영세한 광고회사는 손해를 입었기 때문에 농성자들에게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청구했습니다. 사실 이 투쟁으로 노동조합 재정은 타격을 입었는데, 노동조합 지도부와 사전에 상의 없이 했다는 것으로 정규직 조합원들의 불만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최근에는 기아차지부가 2016년 11월 기아차 사용자측과 4000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가운데 1049명만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이런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당사자들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만 조합원들의 교섭권을 위임받은 기아차지부 집행부가 합의해버린 것이죠. 이 문제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재의 기아차지부 집행부를 비판하며 ‘사내하청 전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면서 독자적인 파업을 했습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인데, 1사 1노조의 원칙 아래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만 파업하는 것은 조직의 질서를 해치는 일이니 정규직 조합원들이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 않았겠죠. 

이런 대공장의 조합원일수록 노동조합의 조직운영과 생리를 잘 아는 훈련된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어용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노동조합 내의 질서를 마음대로 해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정규직 분리’라는 생각보다 ‘노동조합 조직 질서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더 많이 설득되었고 압도적인 찬성 표결은 그 이유인 것 같습니다. 

제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격언을 맨 위에 쓴 이유는 이런 기아차지부 정규직 조합원들을 탓하기는 어렵다는 점입니다. 다만, 이런 상황을 초래한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집행부들, 그리고 이 집행부의 의사에 동조하여 조합원들을 선동한 현장조직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노동운동’을 해보겠다고 현장에서 조직활동을 하는 이들이 이런 결정을 하도록 선동한 것은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기아차지부의 원-하청 노동자 1사 1노조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원-하청연대의 실패라고 규정짓는 것은 섣부른 판단인 것 같습니다. 현대차의 경우에도 사내하청노조는 정규직 지부에 가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금속노조의 질서라면 각각 금속노조 울산/전주/아산지역지부에 속해 있어야 하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현대차의 경우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단순하게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을 통해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금속 산별 내의 기업지부를 어떻게 볼 것인지, 지금의 지역지부를 중심으로 한 산별 체계의 형태를 자동차/조선/철강 등의 소산별 체계로 재편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가 싶은 고민도 듭니다. 무엇보다 기존의 원-하청연대를 평가하고 새로운 원-하청연대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 것인지도 고민해봐야 할 측면입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은 본질적으로 조합원들의 정치, 사회, 경제적 요구를 실현하는 조직입니다. 그들의 경제주의, 조합주의 경향을 비판만 한다고 해서 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 민주노총 강령의 두 번째에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명문화되어 있을까요.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을 넘어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땅의 노동자 민중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안내가 필요하고, 각자의 처지를 넘어서 하나의 계급으로 정치/경제적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세력화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노동조합과 같은 당사자들의 대중조직과 함께 그것을 정치적으로 안내하는 정치조직이라는 것은 굳이 어디 책 누구의 말이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것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진보민중운동에 대중을 탓하거나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훈장질하려는 경향이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대중운동이 일천해지니 소영웅주의나 엘리트주의적인 운동가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농부는 밭을 탓할 것이 아니라 밭을 제대로 일구지 못한 자신과 같이 밭을 일구는 동료 농부들과 머리를 싸매고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부터 돌아보고 반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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